책방지기에게 책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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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에게 책이란 무엇일까?
  • 홍지연
  • 승인 2020.07.20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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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그 너머의 기록]
(17) 홍지연 / ‘책방 산책’ 책방지기

 

책방산책 탄생기

책방을 준비하며 책방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고민이라고 하자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한 두 개씩 이름을 지어와 알려주고 가곤 했다. 안녕 책방, 어서와 책방, 반가워 책방, 환영해 책방, 또 와 책방, 매일 와 책방, 또 만나 책방, 또 봐 책방, 책 사 책방, 또 사 책방……. 동네에 책방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해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오가는 아이들에게 장난처럼 던진 질문은 아이들이 답을 가져오자 책방지기에게 진짜 고민이 되고 말았다. 매일 이름이 바뀌는 책방이라고 간판을 걸고 아이들이 생각해온 이름으로 책방 이름을 주기적으로 바꿔볼까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생각해온 이름을 다이어리에 하나씩 적어두고 아이들에게 책과 책방이란 만나면 좋은, 환영과 환대의 느낌이구나 싶어 기쁘기도 했다. 아직도 4년 전 다이어리엔 아이들이 알려주고 간 책방 이름들이 가지런히 적혀 있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 책방은 ‘책방 산책’이 되었을까. 책방 산책은 우리 집 어린이가 다섯 살 때 한 이야기 속에서 나온 이름이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심심한 주말엔 “엄마, 계양산 산책 가자.”하곤 했는데, 어느 날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책방으로 산책 가자.” 했다. 자신이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엄마가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해서 처음 한 말로 기억한다. 뭉클했다.

어릴 적부터 놀이터 옆 도서관을 다녔다. 부평 살 때는 부평기적의도서관, 계양에 와서는 계양도서관을 다녔다. 도서관에서 책을 한두 권 읽고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 도서관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 뽑아 마시고 동네 한 바퀴를 걷다 도서관 옆에 책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물론 이미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옆구리에 딱 붙어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책방에 들러 책을 한두 권 사가지고 가면 금상첨화일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해엔 꼭 도서관 옆에 책방을 내야지 꿈을 꾸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도서관이 있는데 누가 책방에서 책을 사겠느냐고 웃음 섞인 타박을 했지만 자고로 ‘책의 유혹’이 가장 강렬한 곳에서 책을 파는 것 만한 일은 없다고 답했다. 놀이터와 도서관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놀이터가 있는 곳에 책방을 냈으니 꿈은 제대로 이룬 셈이다. 가끔 책방을 내고 싶은 분들이 책방에 찾아오셔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시는데 다이어리에 적힌 책방 이름과 책방을 낼만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큰 마음 먹고 공개한다. 하하하.

 

책방지기의 책방의 추억

어릴 적 배다리에서 자랐다. 배다리는 놀 것이 없던 어린 시절 커다란 놀이터였다. 지금은 헌책방 거리가 되었지만 그 당시 배다리는 헌책과 새 책의 집결지였다. 지금 헌책방 거리가 있는 맞은편 텅 빈 상가들은 단행본, 잡지, 참고서 등을 다루는 새 책 총판(도매상)이 즐비했다. 네 살 때부터 그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랐으니 책방을 해야 할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글자를 읽기 시작하고부터는 헌책방 좁은 서가에서 책을 뽑아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읽었다. 운 좋게 그림이 있는 책을 만나면 그림을 들여다보며 종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헌책방 주인이 책을 가져가서 읽으라고 그냥 내게 주었다. 그 책이 롱펠로우의 ‘에반젤린’이었는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인지 앨렌 파커의 ‘작은 사랑의 멜로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을 오래도록 읽고 또 읽었다. 새 책 총판을 드나들며 잡지 파본도 꽤 얻어 읽었다.

책을 돈 주고 사서 읽는 것인지 모르는 시절을 지나 용돈이라는 것이 생기고부터는 돈이 생기면 가는 곳이 책방과 만화방이었다. 배다리와 동인천 대한서림, 동인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들여다보고 사서 읽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근처에 책방이 세 군데나 있었는데 책방 세 군데엔 저마다 다른 책이 나를 유혹했고 그 중 한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받는 날엔 또 책을 사 제껴 읽었다.(엄마는 ‘책 좀 그만 사제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어릴 때는 책 많이 읽어서 좋다고 했는데, 하하하.) 운 좋게도 학창시절이나 직장을 다닐 때나 어디든 발길 닿는 곳에 책방이 있었으니 세상 심심할 일이 없었고 닥치는 대로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 생각해보면 이만큼 축복받은 인생도 없다.

 

우리에게 책이란

얼마 전 책방과 직거래하는 출판사 ‘그림책공작소’에서 ‘우리에게 책이란’이란 질문을 던졌다. 직거래하는 전국 61개 동네책방에 던진 질문이었다. 딱 떠오른 말은 ‘숨구멍’이었다. 나를 숨 쉬게 해준 책, 나에겐 ‘숨구멍’이지만, 책방산책을 찾는 독자들에게 책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고 썼다 지우기 며칠. 숨구멍, 벗, 친구, 모험… 삶길에서 늘 함께 해준 책! 하면 떠오르는 말들. 책방산책에게 책이란 <찬란한 모험이다>라고 답했다. 찬란하다-다채롭고 번쩍여서 눈부시고 아름답다- 어느 누구의 삶도 찬란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삶의 길도 있을 것이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설레임 또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 모험길로 우리를 살포시 안내해주는 책.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독자님께 책이란? 전국 61개 동네책방의 답이 궁금하신 분들은 지금 바로 동네책방으로 달려가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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