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못하는 당신의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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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못하는 당신의 아기
  • 이성은
  • 승인 2011.05.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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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이성은 경인여대 교수 / 간호과

-우리사회 낙태 문제에 관하여-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는 현실과는 정반대 현상으로, 여성들의 낙태 또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의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에도 한 해 태어나는 신생아 수의 2배 이상에 달하는 100만 건을 훌쩍 넘는 인공유산 건수가 추정되는 게 아이러니한 실상이다. 실제로 필자가 학생들의 임상실습 지도를 위해 병원현장에 나가 보면 1-2회 인공임신중절의 경험을 가진 기혼여성은 물론 미혼여성들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7-8회 유산을 한 여성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들도 있다. 현실적으로 아이를 낳아 기를 준비가 되지 않은 여성에게 ‘임신’이라는 것은 기쁨이 아닌 커다란 ‘근심’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낙태’에 관한 도움을 얻고자 하는 미혼여성의 절박한 글과 불법적인 낙태를 조장하는 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여성들은 ‘인공유산’이나 혹은 ‘낙태’라는 용어를 많이 접하지만, 이러한 용어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예기치 않았던 임신으로 인해서 소위 ‘낙태’라고 일컫는 행위를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엄연히 불법으로 ‘낙태죄’가 성립된다. 흔히 ‘인공유산’이라고도 부르는 ‘인공임신중절’은 치료적 근거나 산모의 건강이나 생명을 구하는 등의 합법적인 이유로 정당화할 수 있는 반면, ‘낙태’는 ‘불법 인공임신중절’이다. ‘낙태’는 의학적 근거가 아닌 산모의 선택에 의한 ‘고의성’이 매우 강하며, 이로 인해 태아의 생명을 살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 법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한 예는 유전학적 정신질환이나 심각한 기형 등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질환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낙태도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등 일부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은 ‘낙태죄’가 성립된다. 따라서 이에 동의한 여성 본인은 물론 수행한 의료인이나 기타의 사람도 범죄행위로 처벌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원하지 않는 또, 현실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임신을 한 많은 여성들은 임신지속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범죄 아닌 범죄의 사각지대로 몰리게 된다. 실제 여성들의 절박한 요구에 의해서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비밀리에 낙태를 행하고 있다. 불법행위 단속에도 점점 음성화하여가다 보니 시술도 점차 고비용이다. 심지어는 국내법의 단속을 피해서 낙태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한 외국으로 ‘원정낙태’를 하러 가는 세태마저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여기서 여성의 몸에서 자라난 ‘태아 생명’의 인간적 존엄성과 자신의 몸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논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필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그것이 불법이든 적법이든 간에 낙태로 인하여 여성이 겪게 될 건강상의 위해성이며,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수태물 즉, 태아를 제거해 내기 위한 과정에서 자궁경부나 자궁내막에 있을 수 있는 손상, 감염 등의 위험성은 명확하다. 미혼 여성의 경우 낙태 후 진정으로 원해서 아이를 가지고자 했을 경우 불임, 자궁경관무력증이나 자궁외임신과 같은 후유장애의 발생가능성도 높으나, 많은 여성들이 이 부분까지 미처 생각지는 못한다. 더욱이 임신 후 갈등하는 시기를 거쳐 임신주수가 상당히 경과한 뒤에 낙태를 할 경우 생식건강에 매우 커다란 손상이 발생될 가능성이 있다. 또 실제 죽음을 맞이한 태아의 모습은 크기만 작을 뿐 인간의 모습과 전혀 다름이 없어 매우 충격적이며, 우리를 정말 슬프게 하는 일이다.

‘낙태’가 남의 일일 때에는 비교적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일이 되거나 만약에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내 자식의 문제가 되었다면 아무도 쉽게 그 결정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없을 터이다. 특히, 인터넷에 판치는 각종 음란물 속에서 성범죄가 증가하고 청소년 낙태가 매년 증가하는 현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초중고교에서 단계에 맞는 성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피임이라는 것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며 경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미혼뿐 아니라 기혼인 특히, 출산 후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출산 직후 아직 월경이 되돌아오지 않거나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 방심한 시기에 임신이 되는 경우도 있다. 미처 산후조리도 마치지 못하고 ‘위험한 선택’을 하거나, 짧은 터울로 육아의 고충이 가중되는 경우도 많다. 주변에서도 실제 둘째 아이의 모유수유를 지속하던 중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셋째 아이의 임신으로 인하여 우울증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겪은 여성을 보아왔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 살다 보니 진정한 축복인 임신도 그 대상과 시기에 따라 전혀 상반된 결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극단적인 비교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불임크리닉을 방문하여 마음, 신체적 고생, 그리고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면서 간절히 임신을 소망하는 여성들도 많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축복인 임신이 어떤 여성에게는 ‘살인행위’라는 오명으로 다가갈 수 있다. 실제 낙태 후에 겪게 되는 것은 신체적 문제뿐이 아니다. 겉으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죄책감이나 우울 등의 심리적인 문제로 가슴앓이 하는 여성도 많다. 여성의 몸은 일차적으로 여성의 책임이다. 낙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남녀의 몫이겠지만, 신체적 손상과 마음의 불편감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다.

법의 잣대로 낙태를 줄이는 데엔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피부로 감당해야 하는 출산과 양육, 그리고 사회적 문제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법의 테두리 속에서 낙태를 무조건 막는 게 최선일 수도 없다. 또 이를 양성화하여 낙태천국으로 만드는 것도 바람직한 대안은 아니다.

최선의 답은 여성자신이 가지고 있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 또 자신의 몸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와 사회에서는 학교뿐만 아니라 직장, 그리고 가정에 있는 여성에게까지도 자신의 몸에 대해서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교육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태어나는 아이뿐 아니라 태어날 수 없는 아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호받도록 해야 할 터이며, 이에 대한 대중매체를 통한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도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프라이버시가 유지되면서 여성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스스럼 없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인터넷은 좋은 도구이기는 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천국이기도 해서 오히려 잘못된 내용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자신의 몸인 동시에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 건강의 밑거름이다. 건강한 여성의 몸에서 건강한 임신, 그리고 태아와 신생아의 건강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진국 시민에 걸맞는 올바른 성에 대한 가치관과 구체적인 피임방법에 대한 정확한 실행을 통하여 불필요한 낙태의 위험성을 근절하고 임신을 진정한 축복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낙태 관련 법률에 대한 좀 더 세심한 검토와 보완을 통하여 낙태의 음성화를 막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모든 아기들이 태어나 울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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