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한 팔이 되어 희망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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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한 팔이 되어 희망을 찾자"
  • 이병기
  • 승인 2011.05.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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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힘들지만 행복한 이석일·최윤숙 장애인 가족 이야기


이석일·최윤숙씨 부부와 둘째 딸 보예

취재: 이병기 기자

"첫째 가질 때 입덧을 내가 먼저 했어요. 음식 반찬 냄새도 못 맡았죠. 몸이 원래 약한데, 물도 못 마시니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어요. 링거주사도 맞구요. 내가 입덧이 너무 심해서 아내에게 병원 한 번 가봐라 했더니, 임신 5주째라는 거예요. 6개월 동안 입덧을 같이 했죠. 사람들이 그러는데, 부부 우애가 좋으면 남자가 입덧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부부 우애가 좋아 남편이 먼저 입덧을 시작했다는 이석일(42, 지체장애 2급), 최윤숙(33, 지적장애 2급)씨는 자신들의 불편한 한 팔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아이의 부모다.

14개월 된 보미와 4개월 된 보예 두 '공주님'의 탄생은 이 부부의 축복이자 삶의 희망이었다. 움직임이 불편한 부부 사이에서 건강한 두 아이가 태어난 것도 주변에서 놀랄 일인데, 항상 밝고 힘차게 사는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따뜻한 가족의 '희망 본보기'로 떠오른다.

지난 28일 오전, 큰 딸 보미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나온 이석일씨를 구월동 주택가에서 만났다.

아직 바람이 차다. 이씨는 보미가 찬바람에 감기라도 걸릴까봐 길가 건물 안에서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 함께 차로 이동하던 남구장애인종합복지관 이지혜 사회복지사를 알아본 이씨는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로 나와 한 팔을 흔든다.

차 시간이 예정보다 조금 늦어서인지 이내 어깨에 둘러맨 아기띠를 푼다. 아직은 어린 아이지만, 몸이 불편한 그에게는 다소 힘이 부치는 일이다. 아이를 내려놓는 그의 얼굴엔 오래 안아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큰 딸 보미가 이지혜 사회복지사와 아빠 손을 잡고 어린이집 차를 타러 걸어가고 있다.

마침 오늘이 보미의 체육대회 날이란다. 노란색 어린이집 체육복을 입은 보미는 활짝 핀 개나리꽃처럼 눈부시다. 이지혜 사회복지사는 속눈썹이 긴 보미를 '속눈썹 공주'라고 부른다. 아직 잠이 덜 깬 보미는 이지혜 사회복지사 무릎에 앉아서도 얌전하다.

보미가 걷는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이씨는 그나마 움직임이 편한 오른손에 보미의 손을 잡고 길가로 나선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모습에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르는 이씨는 절로 흐뭇해진다. 

"보미가 2주 전부터 걸어요. 전에는 손을 잡고 걸어다녔는데 오늘은 잠이 덜 깨서 안고 나왔어요. 보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린이집에 다니고, 보예는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가요. 오늘은 보예도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지만 체육대회가 있다고 해서 보내지 않았어요."

이제 말을 배워야 하는 시기지만, 집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4개월 된 보예의 목욕을 시키는 일도 두 부부에겐 버겁다. 아이들은 집에서 부족한 부분을 어린이집에서 채운다. 가사도우미가 오는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보예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

5층에 위치한 집 계단을 오르는 이씨.동생의 등장이 어린 보미에게는 달갑지 않다. 아빠가 보예를 안고 있으면 와서 동생을 때리기도 한단다. 평소에는 아빠를 더 좋아하는데, 이럴 때 아빠한테 혼나면 엄마한테 가서 안긴다. 고구마와 감자, 계란을 좋아하는 보미는 이씨의 보물이다. 그는 "아이가 잘 먹는다"면서 자랑스러워한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부부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린다. 컴퓨터도 하고 산책도 다닌다. 토요일에는 아이들이 먹을 음식 장을 보러 '쇼핑'을 나가기도 한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간다.

두 부부가 장애인 수당으로 받는 지원금은 한 달에 110만원 정도. 무보증 월세비 50만원, 사업에 실패하면서 생긴 얼마간 빚과 공과금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쓰는 생활비는 40만원 남짓이다. 이 중 아이들에게 먹이는 음식 값이 25만원, 두 부부가 사용하는 돈이 15만원 정도다.

두런두런 얘기하다 보니 어린이집 차가 왔다. 아이를 태운 이씨는 차 뒷꽁무니가 안 보일 때까지 연신 오른 손을 흔든다. 오늘따라 시간이 늦어져 애가 탄다. 조금 전 둘째아이가 깼는지 언제 들어오냐는 아내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직 아내 혼자 갓난아이를 돌보기는 쉽지 않다.

길가에서 주택가 쪽으로 2분 거리에 이씨의 집이 있다. 허름한 5층짜리 다세대 주택인데 제일 윗층이 그의 집이다. 오른 손으로 벽을 짚어가며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아내와 아이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해도 조금도 힘들지 않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내가 마중나와 있다. 이씨는 부랴부랴 아이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4개월 된 둘째 보예를 무릎 위에 올린 이석일씨 얼굴엔 주름이 열개도 넘게 생겼다. 바라만 봐도 좋은지 입은 귀에 걸리고 눈가엔 깊은 웃음 주름이 잡힌다. 

결혼하니 뭐가 제일 좋냐는 질문에 이씨는 '함께' 하는 게 제일 좋단다.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 대화도 할 수 있어 좋아요. 가정을 꾸린다는 게 재미 있기도 하고. 같이 얘기하고 놀러도 가요. 인생의 미래도 상의해요. 자식이 생기니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생각해요."

그는 27살때 결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상담소도 찾아가 신부감을 알아봤다. 내가 좋으면 상대방이 싫어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결국 지친 이씨는 결혼을 포기하고 독신으로 살기로 결정했다. 그러다가 11년이 지난 38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주위에서 만나보라는 권유도 있었고, 아내의 착한 마음씨가 보기 좋았다. 한편으로는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결혼을 못할 수 있다는 절박함도 생겼다. 결국 3주만에 청혼했고 아내는 허락했다.

그러나 문제는 처가댁이었다. 당신들의 딸도 몸이 불편한데, 한 팔만 쓰는 사위가 영 탐탁치 않았다. 이씨는 처가댁 문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하면서 1년 반동안 꾸준히 설득했다. 결국 양가 부모 허락을 받아 식을 올렸지만, 아직도 서운한 감은 있다. 애기를 낳았을 때만 처가댁 식구들를 볼 수 있었다.

"가장 바라는 건 생활이 안정됐으면 하는 거예요. 애기들도 건강하게 자라구요. 돈을 많이 주지 않아도 직장에 다니고 싶어요. 창업도 하고 싶구요.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회사에서 받아주질 않아요. 돈을 떠나 일하고 싶은 마음이죠."

그는 한때 공장까지 운영했을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었다. 그러나 한순간에 사업이 망하고 10원 한 장 없는 처지에 놓였다. 결혼 1년 만에 찾아온 사업 실패는 인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아내와 함께 약을 먹었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또 약을 먹고 병원에 가고. 죽지 말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다니던 교회 사람들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방을 얻을 수 있었다. 교회의 한 지인은 아이들의 예방접종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인터넷에서 부부의 사연을 알게 된 한 단체는 올해 1년동안 아이들의 분유와 기저귀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현재 사는 집이 월세가 높아 이사도 계획하고 있다. 인터넷 해피빈을 통해 모금된 200만원과 개인후원자의 300만원, 남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50만원을 도움 받아 어린이집 근처 논현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주위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이런 게 없었다면 생활하기 힘들었겠죠. 나도 절망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복지관이나 사람들의 도움으로 힘을 내서 살아가고 있어요. 어서 일자리가 생겨서 조금이나마 생활이 안정되는 데 보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방 한 구석 연두색 벽지 위에 걸린 행복한 가족사진처럼 네 식구는 희망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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