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이 아픈 이웃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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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이 아픈 이웃을 사랑한다
  • 최종규
  • 승인 2011.05.04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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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김재영,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배를 곯은 적이 없는 사람은 배곯이를 모릅니다. 추위에 떤 적이 없는 사람은 추위를 모릅니다. 몸앓이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은 몸이 여리거나 아픈 사람을 모릅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모릅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책을 거의 못 읽은 사람을 모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삶을 모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얼마나 고되게 일하며 저희를 보살피는지 모릅니다. 아이인데 벌써부터 어른들 삶을 알거나 어른들이 얼마나 땀흘리거나 애써서 저희를 보살피는가를 안다면, 이런 아이를 두고 ‘애어른’이나 ‘애늙은이’라 합니다.

 아이는 아이로 자라야 합니다. 아이한테 아이다움이 없다면 아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라 해서 마냥 철없거나 철딱서니없이 살아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라 하기에 건방지거나 시건방지게 살아도 되지 않아요. 아이는 아이다움을 건사하면서 사람다움을 차근차근 느끼며 깨달아 아름다운 제 삶길을 찾아야 합니다.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거나 동화책 《플랜더스의 개》를 읽으면, 두 작품 주인공인 네로(넬로)가 우유수레를 끄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이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힘에 부쳐 더는 수레를 끌 수 없어 자리에 누운 날부터 어린 네로는 우유수레를 끕니다.  추운 겨울날, 양말도 장갑도 없는 가난한 네로는 맨손과 맨발로 무거운 우유수레를 끌면서 그동안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달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라서 더 힘들다기보다 어른이라도 몹시 힘든 우유수레임을 깨닫습니다. 더구나 이토록 추운 날에도 하루를 거를 수 없이 날마다 우유수레를 끌어야 한다니, 이렇게 날마다 우유수레를 끌면서도 끼니를 잇지 못해 굶는 날이 있어야 한다니, 어린 네로로서도 몹시 괴롭고 슬픈 일입니다.

 네로는 가난한 집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이 할아버지하고만 살아가니까 양말이나 장갑마저 없이 추운 겨울을 홑옷으로 납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네로처럼 추위를 사무치게 느끼지 않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네로처럼 배고픔과 가난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네로처럼 고된 일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추위와 가난과 배고픔과 고된 일에 시달린대서 우리 삶과 이웃 삶을 더 잘 헤아리거나 살피지는 않습니다. 괴롭거나 힘든 나날이 되풀이되는 나머지 마음이 비뚤어지거나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누구라도 추위와 가난과 배고픔과 고된 일을 견디거나 이기기 몹시 어렵습니다.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빌리네 아버지 또한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배신자’ 소리를 듣더라도 어쩔 수 없이 집식구 먹여살리는 슬픈 길을 걷습니다. 동료들한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배신자 길을 가고야 맙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누구를 가리켜 배신자라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빵 한 조각을 얻으려고 도둑질을 했던 쟝 발장을 ‘뭐라 하든 넌 도둑일 뿐이야!’ 하고 모질게 몽둥이질을 할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쟝 발장은 부귀와 권세를 누리려고 빵 한 조각을 훔쳤을까요. 쟝 발장한테 빵 한 조각을 예쁘게 나눈 부자는 한 사람이나마 있었는가요. 아니, 똑같이 가난한 이웃 가운데 쟝 발장을 가엾이 여긴 사람이 있었는가요.

 지난날 일제강점기에 부역을 하거나 친일문학을 하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에는 말 그대로 부귀와 권세를 누리려던 사람이 있는 한편, 쟝 발장처럼 가난과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 ‘배신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은 바로 ‘배신자’가 되었고, 당신이 숨을 거두는 날까지 스스로 배신자 노릇을 했음을 떳떳이 밝히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봐요. 어떤 배신자가 스스로 배신자 발자국을 쉬 드러내겠습니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아니고서는 아무한테나 ‘네 잘못을 떳떳이 드러내어 뉘우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쟝 발장》을 한국말로 옮기기도 했던 이원수 님임을 생각한다면, 스스로 마음앓이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톺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밥 한 그릇 얻으려고 배신자 길을 걸었으면서도 살림살이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어요.

.. 왜 이들이 1948년 이전에 나라를 떠났겠는가. 가난과 수탈을 피해 굶주리을 면하고자 농사를 지으러 간 이들이었고, 징용과 정신대를 피해 이주한 이들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걸고 피흘려 싸웠던 독립투사들과 그 후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동포가 아니라는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서조차 동포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 재외동포로 인정한다면 마땅히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세계 어느 민족이 자기 민족을 감싸 주지 못할망정 불법체류자라는 족쇄를 채운단 말인가 … 러시아 국적이 없는 고려인은 의료와 연금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당연히 취업이 허락되지 못해 이 질긴 가난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 한국의 백과사전은 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 그리고 그에게 훈장이 추서되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그러나 백과사전은 한 가지를 빼먹고 있었다. 그의 11명의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으며, 그 중 생존한 두 명의 딸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  (8∼9, 48쪽)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국땅에서 ‘고려인 생채기’를 헤아리거나 껴안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니, 고려인이라는 사람을 헤아리는 사람이나마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려인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길을 걸어온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가를 살피는 사람이나마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이 나라 남녘땅이랑 북녘땅은 군사분계선을 마주하면서 백만 젊은이 남짓이 총과 대포를 들고 불꽃 튀기도록 맞섭니다. 북녘은 굶어죽는 사람이 그토록 많다지만 남녘보다 더 많은 군인을 먹여살려야 한답니다. 남녘은 굶어죽을 사람이 적다지만 어김없이 가난한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남녘은 남녘대로 부자도 많고 가난뱅이도 많습니다. 북녘은 북녘대로 권력을 누리는 사람이 많고 굶어죽다 못 이겨 중국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총을 내려놓고 대포 아닌 살림살이를 마련해야 할 노릇이지만, 남녘도 북녘도 온통 전쟁무기 키우는 데에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붓습니다. 한갓진 남녘사람들은 북녘 정치꾼들이 ‘제 나라 사람이 굶어죽는 데에도 전쟁무기에 저렇게 돈을 써서야 되겠느냐?’ 하고 나무라지만, 군사분계선을 마주하는 남녘나라가 전쟁무기를 더 많이 늘리면서 국방비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니까, 북녘도 똑같이 슬픈 길을 걷고야 마는 줄을 깨닫지 못합니다.

.. 어디서 누구를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청년 지마와 스물세 살 꽃다운 처녀의 한을 말이다 … 연해주 재이주 고려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이것이다. 법으로부터도 정치로부터도 경제로부터도, 그 무엇으로부터도 그들은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죽으라면 죽어야 하고 옷을 벗으라면 벗어야 하며, 떠나라면 떠나야 하는 이 그치지 않는 유랑자의 신세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여정 중 가장 곤란했던 것은 화장실이 없는 것과 먹을 것이 공급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서운 추위였다. 명령대로 2∼3일 분량의 식량밖에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굶기를 밥먹듯 했다. 아이들은 굶어죽어 갔고, 아비는 배곯아 죽은 자식을 어두운 밤 잠깐 멈추었던 어느 이름모를 땅에 맨손으로 묻었다 ..  (29∼30, 189쪽)

 지난날,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는 권력을 움켜쥔 이들이 슬기롭거나 올바르지 못한 나머지 일본 제국주의자한테 나라를 넘겼을 뿐 아니라, 밑바닥 사람들이 더 밑바닥에서 헤매며 짓눌리도록 내몰았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본 식민지가 되었을 때에 굶거나 추위에 떨던 권력자나 임금·신하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부자는 조선 때에도 부자였고 일제강점기에도 부자였습니다. 가난뱅이는 조선 때이든 일제강점기이든 가난뱅이였어요. 이리하여 고향땅에서 발을 붙일 수 없던 이들이 눈물을 삼키며 나라를 등졌습니다. 나라를 등지고 만주나 연해주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만주나 연해주로 넘어갔대서 입에 풀을 바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서로서로 도우며 끼니를 겨우 이을 수 있었는데, 조금 살림이 펼 만할 즈음 ‘강제이주’라는 끔찍한 일을 겪습니다. 강제이주를 겪고 길디긴 나날이 흐르며 겨우 생채기가 아물 무렵 다시금 ‘재이주’라는 새로운 끔찍한 일을 겪습니다.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라는 책은 강제이주에다가 재이주를 겪으며 ‘살아간다는 즐거움이나 꿈이나 기쁨’을 도무지 누리기 힘든 고려인을 만나며 조금이나마 이웃으로서 도우려고 애쓰던 두 사람이 고려인들을 마주한 나날을 고스란히 적바림합니다. 속속들이 받아들이거나 껴안지는 못하지만, 고려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부대끼거나 마주하거나 겪는 숱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습니다.

.. 40대 중년의 얼굴을 가지고 그도 동갑이라며 반가워한다. 나는 내 손과 기름진 얼굴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 누구든 러시아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길가의 그들을 보라. 그들의 얼굴과 말소리와 표정을 주목해 달라. 내 어머니 같고 내 아버지 같은 그들이 파는 한 덩이의 감자는 곧 ‘밥’이며 ‘약’이며 ‘물’이며 ‘옷’이며 그들의 ‘아이’들이다 … 뒷날 내가 원주로 반강 선생을 찾아뵈었을 때 그는 강원대와 원주대에 출강하고 계셨는데, 마침 학생들이 모아 준 25만 원과 헌옷·신발 등을 챙겨 주셨다. 그날 선생은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라가 망해도 독립운동은 절대로 하지 마라. 내가 연해주에 가 보니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짐승처럼 살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이냐.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냔 말이다.” ..  (75, 137, 228쪽)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김재영 님은 당신 옆지기와 함께 러시아땅에서 고려인하고 부대끼며 살아가기에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같은 책을 내놓습니다. 고려인들 눈물을 느끼고 웃음을 느낍니다. 고려인들 손바닥을 쓰다듬고 당신 손바닥을 비빕니다. 만화영화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앤 셜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버이를 잃고 여러 집에서 애보개로 떠돌며 세 쌍둥이까지 보살펴 본’ 일을 치렀기 때문에, 살가운 동무 다이애나 동생 미니메이가 후두염에 걸렸을 때에 차분하면서 살뜰히 보살펴 목숨을 건지도록 돕습니다.

 겪는다 해서 다 알지는 않습니다. 겪으나 못 깨닫거나 못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안 겪었다 해서 다 모르지는 않습니다. 안 겪거나 못 겪었다지만 온몸과 온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요. 만화책 《달려라 하니》를 보면 ‘유지애’라고 하는 아주머니 또한 어린 날 ‘새엄마’한테 시달리던 아픔이 있기 때문에 하니가 그토록 저를 미워하는 모습을 가슴으로 아파하면서 하니가 느낄 아픔과 생채기를 달래려고 애씁니다. 어쩌면 유지애라는 아주머니는 스스로 겪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니가 껴안는 아픔과 생채기를 달래려 했겠지요. 그런데 당신 스스로 어린 나이에 하니와 마찬가지로 뼛속 깊숙하게 겪었기 때문에 더 사무치게 떠올리고 더 애틋하게 보듬고 싶어 합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김재영 님이 살짝 ‘봉사’하러 러시아로 갔다가 금세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같은 책을 내놓을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러시아에서 힘껏 땀흘리며 어깨동무하는 삶을 잇는다 한다면,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를 이은 둘째 이야기나 셋째 이야기를 살포시 들려줄 수 있겠지요.

.. 어느새 바뀌어 버린 계절, 겨울이었다. 오두막은커녕 낡은 거적때기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버려진 사람들, 그곳에 고려인들이 서 있었다 … 이제 러시아어를 사용해서도 안 되며 소련 시절의 어떤 훈장도 소용이 없게 됐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고려인들에겐 또 한 번의 고난을 예견하는 단어 ‘난민’이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  (193, 205쪽)

 우리 집 아이는 허구헌날 넘어져 무릎이 깨집니다. 날마다 몇 번씩 무릎이 다시 깨집니다. 이러다 예쁜 무릎에 생채기 자국이 깊이 남겠구나 싶어 걱정스러운데, 늘 넘어지며 무릎이 깨져 울먹이는 아이는 제 또래이든 동생이든 언니이든 넘어져서 다치거나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 살며시 다가가서 호호 하고 입김을 붑니다. 살살 쓰다듬거나 토닥이면서 “이제 안 아파.” 하고 얘기합니다.

 겪는다고 다 알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겪어야 제대로 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은 하루하루 새로운 이야기를 겪는 나날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스스로 겪으며 스스로 발돋움합니다. 스스로 부딪히고 스스로 마주하면서 스스로 거듭납니다. 새봄에 새롭게 피어나는 어여쁜 꽃을 두 눈으로 본 사람은 여름과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을 맞닥뜨렸을 때에 이 겨울을 견디어 내면서 새로운 봄이 다시금 찾아올 때에 새로운 봄꽃을 새삼스레 보고픈 꿈을 키우면서 어깨를 폅니다.

 오늘날 한국사람은 지나치게 배부르고 지나치게 한갓지며 지나치게 넉넉하다 보니, 내 곁에 이웃이 있으며, 내 곁 이웃이 어떠한 마음이거나 삶이거나 넋인가를 도무지 들여다보지 못할 뿐더러 들여다본다 한들 가슴으로 못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사랑을 느껴 나누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사랑을 못 받아 외로운 동무를 꼬옥 껴안으며 아낄 수 있습니다.

―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김재영 글·사진,한얼미디어 펴냄,2005.2.19./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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