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수 있는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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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수 있는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
  • 인천in
  • 승인 2020.08.3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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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행복산책]
(112) 화해와 포용을 외치기 이전에 필요한 것

 

풍경 #152. 화해와 포용을 외치기 이전에 필요한 것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독자 여러분에게 양해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글을 끝으로 몇 개월 동안 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 재충전의 시간을 통해 이제까지보다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요즘 무척 힘듭니다. 코로나, 홍수, 산사태, 태풍이 온 나라를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슬퍼하고 아파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화해’와 ‘포용’을 외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화해와 포용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외침만으로 화해와 포용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이 외침을 들으면서 저는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화해와 포용이 실제로 이루어지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할까?’

화해와 포용을 하라고 상대편 진영을 향해 외친다면 그 말은 사실 ‘네 탓’ 공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이 남을 비난하는 것으로 나타나니까요. 화해와 포용을 ‘내’가 아닌 ‘너’를 향해 주장한다는 것은 곧 ‘내로남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러면 화해와 포용은커녕 진영싸움으로 이어져 혼란만 부추기게 될 겁니다.

화해와 포용이 이루어지려면 그 이전에 ‘정직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너’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나’의 잘못과 실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정직함이 깔린 상태에서만이 화해와 포용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리더들의 인격 수업》에 ‘정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사례가 나옵니다.

“정직을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운 기업이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들통나 1주일 만에 폭삭 주저앉은 사건이 유키지루시 유업 식중독 사건이다. 우유, 치즈 등 유제품을 생산하는 유키지루시 유업은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유가공업체이며 국민 기업이다.

2000년 6월 말, 이 회사의 우유를 먹은 오사카 지역 소비자들이 집단 식중독을 일으켰다. 사건이 터지자 당국은 제품회수와 판매 자제를 지시했지만, 회사는 피해자 보상 선에서 적당히 넘어가려고 꼼수를 부렸다. 그러는 동안 식중독 환자가 2천 명으로 늘고, 사회적 파장은 더 커졌다. 회사는 할 수 없이 저지방 유제품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경영진은 기자들의 식중독 원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처음에는 ‘모른다’로 일관했다. 그러나 기자들은 끈질기게 추궁했고, 이를 참지 못한 공장장이 ‘가스 밸브 일부에서 동전 크기의 황색 포도당 구균이 발견됐다’라고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회사는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일주일에 한 번꼴로 밸브를 분해·청소하도록 된 규정을 무시하고,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독극물 협박을 받은 산텐 제약은 자사 제품에 독약을 투입하겠다는 협박편지가 배달되자마자 전 제품을 즉각 회수하고 소비자들에게 이 사실을 솔직히 공표함으로써 조기에 문제를 매듭지었다.”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정직함’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문제가 없다면 정직하게 사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을 때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는 것은 곧 이제까지 쌓아온 신뢰와 명예가 모두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경우에 정직하게 고백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데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는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모든 신뢰와 명예가 실추될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통해 그를 오히려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용서를 구하는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신뢰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마음의 암호에는 단서가 있다》라는 책에 정직함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화가 나옵니다.

미국의 어느 회사가 중국 주하이에서 직원채용 공고를 냈습니다. 많은 지원자가 지원했고, 서류심사를 통과한 사람은 수십 명이었습니다. 마지막 관문은 미국인 사장과 일대일 면접이었습니다.

아밍이라는 중국인은 가장 늦게 면접장에 들어갔습니다. 아밍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사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아밍의 손을 잡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당신을 만나다니, 정말 놀랍군요. 제가 저번에 딸을 데리고 호수에서 뱃놀이를 갔다가 딸이 실수로 물에 빠졌을 때 당신이 구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때는 딸을 챙기느라 미처 당신의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네요.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을 보니 세상이 정말 좁긴 한가 봅니다.”

아밍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사장님,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저는 따님을 구해드린 적이 없습니다.”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이윽고 사장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정직한 젊은이로군, 면접 통과일세.”

알고 보니 사장이 준비한 심리극이었던 겁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해’와 ‘포용’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려면 ‘정직’한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너’를 향해 ‘화해와 포용’을 요구하기 이전에 ‘나’와 ‘우리’가 과연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나와 너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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