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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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험해"
  • 김주희
  • 승인 2011.05.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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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4. 지방자치 20년 - '주민참여예산제'

취재: 김주희 기자


지난 3일 열린 주민참여예산학교에 참가한 연수구 주민참여예산 지역위원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연수구는 인천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해 시행하는 자치구다.

"새로운 변화다!"

지난 3일 오전 연수구선거관리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주민참여예산학교' 기초과정이 열렸다. 인천의 자치구 중 처음으로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하는 연수구가 주민참여예산 지역위원으로 참여할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 프로그램이다.

이 예산학교에 참가한 한 지역위원이 '주민참여예산제'를 한마디로 정의해 한 말이 바로 '새로운 변화'였다.

주민참여예산제는 2000년 예산감시네트워크 발족 이후, 2002년 민주노동당의 선거 공약으로 표면화했다.

이후 2003년 광주시 북구에서 처음 도입한 뒤, 2004년 울산시 동구 등 110여 곳에 달하는 자치단체에서 조례를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인천지역에서는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 도입이 본격화했다.

연수구가 처음 이 제도를 도입했고, 남동구와 부평구가 곧바로 대열에 합류했다. 나머지 다른 자치단체도 주민참여예산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자지단체와 지방의회가 하는 예산 편성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길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장치다. 주민들은 이 제도를 통해서 원하는 바를 예산에 반영하거나, 스스로 예산을 결정할 수 있다.

이처럼 주민참여예산제로 시민이 예산 쓰임새를 알 수 있게 돼, 예산이 투명해지고 공정해지며 합리성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방송통신대 유범상 행정학과 교수는 "주민참여예산제는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주민이 가치 분배에 직접 참여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 의의를 갖고 있다"면서 "특히 그동안 예산의 감시자로서 주민이 참여로 나선 점에서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의 이익을 시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지역의 현장에서 연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연수구가 하는 주민참여예산제는 다른 자치단체와 구성이나 체계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위원회(동별 10명씩 공개모집)가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4개 분과위원회로 구성된 구민위원회(동별 지역위원 2명씩·추천과 공개모집 등)가 이를 최초 예산 편성 때 반영하기 위해 심의·조정한다. 이렇게 나온 예산안은 민관협의회(구청장 등 행정대표와 분과위원장)가 최종 검토한 후 확정한다.

이런 과정을 평가·연구하고 자문 노릇을 맡을 '연구회'(전문가 등으로 구성)를 설치하는 한편, 주민의견 수렴 과정을 도울 서포터즈도 구성한다.

연수구는 최근 지역위원회의 구성을 마무리하는 한편, 현재 구민위원회 참가자를 공개모집 중이다.

연수구 주민예산학교 담당자는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구민의 관심이 커 동별 10명씩 총 110명을 뽑는데 100명이 초과돼 이들이 서포터즈에 참여하도록 했다"면서 "구민위원회도 22일까지는 구성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예산학교에 참가한 한 지역위원은 "주민참여예산제는 '참여'다"라면서 "주민의 대표성을 갖고 열심히 참여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또 다른 지역위원은 "각 동마다 특색이 있는데, 연수구는 그런 특색을 잘 살리지 못하고 송도동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면서 "지역위원들이 협력해 동네 특성을 살려 골고루 잘 사는 연수구를 만들었으면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산학교'를 맡아 운영하는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관계자는 "다른 자치단체는 예산학교를 형식적으로 여는데 그쳤지만, 연수구는 상설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면서 "지역위원들이 다양한 상상력으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예산학교를 기획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수구도 주민참여예산제가 정착한 브라질처럼 주민의 축제의 장이나 놀이터로서 주민참여예산제를 받아들이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예산학교를 마치면 지역위원들은 곧바로 활동에 들어가 6월까지 수렴한 지역의 의견을 구에 전달한다. 그러면 구민위원회는 4개로 구성한 분과위원회별로 공무원들과 토론 등의 과정을 거쳐 내년도 예산안을 짜게 된다.


연수구에 이어 남동구와 부평구가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해 시행한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남동구의 주민참여예산제 관련 토론회 모습.

하나 주민과 참여자들의 큰 기대와 달리, 주민참여예산제는 매우 한정된 분야에서 진행될 전망이다.

연수구 주민참여예산제 담당자는 "아직 초기 단계라 지역위원과 구민위원이 다루게 될 예산은 복지예산이나 운영비 등을 제외한 지역에 투자하는 사업성 경비가 중심이 될 것이다"면서 "앞으로 주민이 다룰 예산의 폭이 넓어지겠지만 아직은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앞서 주민자치예산제를 시행한 다른 자치단체서도 발견되는데, 제대로 운영하는 자치단체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관이 주도해 위원회를 구성, '주민참여'란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자율성과 독자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수구도 지역위원을 공모했지만, 공무원의 권유로 나선 경우도 없지 않았다.

유범상 교수는 "참여예산제는 한국 민주주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 주민참여 없는 참여예산제가 되고 있다"면서 "시민(구민)위원회가 단지 정책의 새로운 후견으로 되는 '참견예산제'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특히 이런 현상에 대해 "정치의 대상으로만 존재해온 시민과 이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혐오증을 갖게 된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이는 한국정치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면서 "시민이 주민참여예산제가 정치를 즐기는 토대이자, '시민의 자기 통치' 관점에서 스스로 권리 찾기에 나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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