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림 시인 시선집 '지금, 언제나 지금'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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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 시인 시선집 '지금, 언제나 지금' 발간
  • 송정로
  • 승인 2011.05.0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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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0년 100편 시로 압축, 금속활자로 인쇄



“시를 써서 세상에 던지는 행위는 그야말로 외딴 섬에 갇힌 조난자가 목숨을 건 구원의 편지를 병속에 넣어 망망한 대양에 떠내려 보내는 것과 같다”

간절한 투병통신(投甁通信)으로서 시를 쓰며, 고독을 먹이로 삶의 진실을 캐내온 시인. 인하대 명예교수 이가림 시인(68)이 지난 2월 6번째 시집 ‘바람개비 별’ 을 낸데 이어, 이가림 시 50년을 100편의 시로 압축한 시선집 ‘지금, 언제나 지금’을 발간했다.

시인은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그 후 작품들을 모아 첫 시집 ‘빙하기’를 낸 것이 1973년. 그리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1981), ‘슬픈 반도(半島)’(1989), ‘순간의 거울’(1995), ‘내 마음의 협궤열차’(2000)와 ‘바람개비 별’(2011)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6번 시집을 냈다. 1960년대 이 땅의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모순의 번민과 저항으로부터 시작해 사랑의 깨달음, 성찰과 관조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에는 전환과 변화가 있었지만 식지 않는 열정으로 시대를 초월한 명징한 시어를 통해 대작을 일궈냈다.

1960년대 중반의 삶을 상징하는 ‘빙하기’에 국토의 신음과 민중의 고초에 대한 의식들로 ‘좌파적 상상력’을 떠오르게 하는 이가림 시에는 ‘모든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향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알 수 없는 부자유의 밤 속에서

휩쓰는 낫에 베어지는 풀잎들이 있다

바가지로 바가지로 설움의 물을 퍼올리며

끝끝내 잠자지 않는 노여움의 뿌리가

무식하게 곡갱이를 들고 무식하게

도끼를 들고 일어나 위협하는 바람을

이마와 어깨로써 막아내고 있다. 아아

하나뿐인 참사랑도 허물어지고 험상궂은

능욕당한 흉터만 남아있다 모시 적삼의

누이여 우리나라의 눈물이여”

-고부에 머무르며-

1995년 네 번째 시집 ‘순간의 거울’에서 그는 “한사코 하늘을 향해 튀어 오르는 가물치 한 마리”(‘가물치’)의 끈질긴 생명력에서 민중적 힘의 표상을 보고, 갯펄에서 호미 들고 노동하는 아낙네(‘바르비종 마을의 만종’)에서 노동과 약자에 대한 예찬을 드러낸다. 그러나 시인은 저항보다 연민과 사랑, 고독에 천착한다.

“나는 지하철을 사랑한다

2만5천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인천행 지하철에 흔들릴 때마다

2만5천 볼트의 사랑과

2만5천 볼트의 고독이

언제나 내 안에 안개처럼

넘실거리기 때문이다.

 

학생 공원 선생 군인 회사원

창녀 수녀 신문팔이 소매치기

이 땅의 눈물겨운 살붙이들 모두가

서로 뺨을 맞대고

서로 어깨를 비벼대고

---

이리 부딪치고 저리 쓰러지는

그 장삼이사의 물결 속에

몸을 던져

나 또한 즐거이 자맥질한다.”

-‘2만5천 볼트의 사랑’-

새천년에 출간한 ‘내마음의 협궤열차’ 그리고 올해 출간한 ‘바람개비 별’. 그의 지향과 성찰은 무심의 추구, 선(禪)의 사유가 도달한 심상 탐구의 미학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오동꽃 저 혼자 피었다가

오동꽃 저 혼자 지는 마을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옛집 마당에 서서

새삼스레 바라보는

조상들의 소나무 동산

 

어릴 적 엄마의 젖무덤 같은

봉분 두 개

붕긋이 솟아 있다.

 

저 포근한 골짜기에 안겨

한나절 뒹굴다가

연한 뽕잎 배불리 먹은 누에처럼

둥그렇게 몸 구부려

사르르 잠들고 싶다“

-‘둥그런 잠’-
 

시선집 ‘지금, 언제나 지금’은 창작 역순으로 ‘바람개비 별’에서 20편, ‘내마음의 협궤열차’에서 14편, ‘순간의 거울’에서 9편 등 모두 100편으로 엮었다. 작품 하나하나는 그가 지나온 시절, 그때 그때 마다 그의 실존적 투기(投企 -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로 자신을 내맡김)를 반영하고 있으며, 진땀나게 살아온 고투(苦鬪)의 비망록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를 다시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인 ‘지금’, 그 영원한 현존을 언어로 드러낸 생성임과 동시에 소멸인 순간들의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별히 시인은 이번에 시선집 ‘지금, 언제나 지금’을 활판 인쇄로 한정판(1천부)을 펴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책머리에 “시의 현묘(玄妙)한 ‘아우라’를 살려낸 금속활자 종주국의 마지막 지킴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시인은 숭전대 조교수 인하대 불문과 교수를 거쳐, 민예총 인천지회 초대회장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인천지회 초대회장, 인하대 문과대학장을 역임했다. 1993년 제5회 정지용문학상, 1996년 제6회 편운문학상, 1999년 제7회 후광문학상, 유심작품상, 펜번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인하대 프랑스문화과 명예교수이며 계간 <시와 시학> 편집주간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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