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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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 존재인가?
  • 허회숙
  • 승인 2020.09.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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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읽고
- 허회숙 / 전 민주평통인천부의장

 

‘불멸’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이제까지 독서를 즐기며 살아오고 있노라고 말해왔는데, 이 소설에서 느끼는 난해함은 무엇이며 이 이야기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소설은 작가가 소설이 창조되는 순간에 등장하고 어느 순간 슬쩍 소설 속에 나타나 작품 속 인간과 대화를 나눈다. 마지막 장면 역시 작가 쿤데라와 친구 아베나리우스, 그리고 작중의 인물 폴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기존의 소설 장르를 무너뜨린 이 포스트모던적인 소설이 산만하고 짜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힘은 무엇인가?

일곱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거의 각 장마다 새로운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들의 내밀한 욕구가 분석되면서 시작과 끝이 일관되게 연결된다. 그 중에서도 아네스와 로라 자매, 괴테와 베티나, 루벤스와 류티스트의 세 이야기가 큰 줄거리가 되어 인간의 본성을 통찰해 내고 있다.

작가인 쿤데라가 친구 아베나리우스 교수를 기다리면서 맞은편 헬스클럽의 실내수영장을 지켜보고 있던 중 60세 가량의 한 부인의 모습을 보고 ‘아네스’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떠올리며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녀는 수영복 차림으로 풀 가장자리를 따라 수영 강사를 지나쳐 사오 미터쯤 갔을 때 문득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나의 심장이 졸아 들었다. 그 미소, 그 손짓. 바로 스무 살 아가씨 같지 않은가! 그녀의 손은 눈부시도록 가볍게 날아 올랐다. 마치 그녀는 장난하듯, 울긋불긋한 풍선 하나를 연인에게 날려 보낸 것 같았다. 비록 얼굴과 육신은 이미 매력을 상실했다지만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p 10)(…) 나는 이상하리만치 감동했다. 그때 나의 뇌리에 아네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네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이름의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p 11)」

이야기 속의 아네스는 변호사인 폴과 결혼해 딸 브리지트를 두고, 8살 아래 여동생 로라가 있다. 아네스의 미소와 손짓은 아버지를 사랑한 비서의 몸짓을 어린 시절 아네스가 보고 자신의 몸짓으로 만든 것이다. 아네스를 모방하기 좋아했던 로라가 똑같은 몸짓을 하는 것을 보고난 후 아네스는 그 몸짓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 로라는 언니가 사고로 죽은 뒤에 형부인 폴과 재혼한다.

「갑자기 그녀가 우리 테이블 쪽으로 머리를 돌리더니, 팔 하나를 허공으로 날렸다. 그 동작이 너무도 경쾌하고 너무도 매력적이고 너무도 잽싸서 마치 금빛 풍선 하나가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날아올라 문 위에 걸려 머무는 것처럼 보였다.

즉시 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더니 그가 아베나리우스의 팔을 꽉 잡으며 말했다. “보았소? 저 몸짓을 보았소?” (…) “아, 로라! 그녀만의 것이야! 아, 저 몸짓! 그녀의 전부를 함축하는 몸짓!”(pp 512~513)

폴은 로라의 몸짓을 보고는 로라 만의 몸짓이라고, 자신에게만 보내는 몸짓이라고 감동한다.

아네스는 자신의 순수한 본질에 다가가기 위하여 뺄셈의 방법을 택한다. 자신의 자아에서 외적인 것과 빌려온 것을 모두 빼 낸다. 반면 동생 로라는 자아를 더욱 잘 보이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뺄셈이 내가 바라보는 나에 집중한다면, 덧셈은 남들이 바라보는 나에 집중한다. 뺄셈형 사람들은 상대가 필요하고 원하는 선물을 주는데 반해 덧셈형은 내가 좋아하고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을 보낸다. 나 자신의 일부를, 내 마음의 한 조각을 당신에게 보내는 것이다.

나는 덧셈일까? 뺄셈일까?

상황에 따라 뺄셈을 추구하기도 하고, 내 머릿속으로는 뺄셈을 지향해 왔지만 나는 행위에 있어서는 결국 덧셈의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쿤데라는 길과 도로를 대비시킨다.

길은 아름다움이 지속적이면서 언제나 변한다. 길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우리에게 멈춰서 아름다움을 보라고 유혹한다. 아네스와 아버지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폴과 로라는 도로를 걷는다. 길이 관조와 보수라면 도로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위한 수단이며 성취와 진보를 의미한다.

나는 길을 걸어 왔을까? 도로를 달려 왔을까?

숲속으로 뻗은 외진 길을 상상하면서 그 길을 걷고 싶어 하면서도 한평생 빠르고 편리한 도로, 그 중에서도 고속도로를 선호하여 달려온 이중적인 존재가 아닌가?

두 번째 이야기는 예순 두 살의 괴테와 그를 사랑한 스물여섯 살의 베티나 이야기다. 베티나는 괴테가 23세 때 사랑하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게 한 여인의 딸이다. 지적이며 야심에 찬 베티나는 끊임없이 괴테의 주위를 맴돌며 자신의 존재를 괴테에게 각인시킨다. 그러나 베티나의 사랑은 괴테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그의 명성을 이용해서 불멸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괴테는 베티나의 의중을 간파한다. 쾌락에의 욕망을 억누르고 유혹을 이겨내지만 결국 베티나는 괴테의 젊은 연인으로 불멸의 존재가 되고 괴테 역시 사후에도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불멸을 누린다.

쿤데라는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들을 해체시켜 버린 니체의 영원회귀설과 무도덕주의와 같은 관점에서 이 소설을 쓴 것이라고 느낀다.

「괘종시계 문자반 위에서 바늘들은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p 413) 로 시작되는 세 번째 이야기는 루벤스의 끝없이 이어지는 여성 편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름도 기억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과의 성희 속에서 류티스트라는 애칭으로만 알고 지내던 여성과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몇 년에 한번 씩 만나곤 한다.

「… 여자 목소리가 지금 그가 찾는 여자는 죽었다고 대답했다. “죽었다고요?” “예, 아네스는 죽었어요. 한데 댁은 누구시죠?” “친굽니다”」(p 490)

루벤스와 류티스트 이야기는 결국 루벤스와 아네스의 이야기이다.

「그는 당분간 여자관계를 끊는 것이 자신에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흔히 하는 말로 새로운 질서가 도래할 때 까지 말이다. 하지만 한 주 한 주, 이 휴식은 연장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그는 앞으로 ‘새로운 질서’는 없으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p 494)

더하건 빼건, 길로 가건 도로로 가건 대부분의 사람은 불멸을 꿈꾼다. 쿤데라는 ‘불멸’을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작은 불멸’과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큰 불멸’의 두 종류로 나눈다. 예술가와 정치가는 대부분 ‘큰 불멸’의 길을 걷는다.

쉐익스피어, 괴테, 헤밍웨이 같은 예술가와 나폴레옹, 미테랑, 카터 같은 정치가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 않다」(p 80)

아네스는 죽은 뒤에, ‘작은 불멸’로 남았다. 폴과 로라 모두에게 잊혀진 것 같았지만, 로라의 몸짓으로 ‘작은 불멸’의 길을 걷게 된다. 또한 루벤스의 여성 편력이란 문자반을 멈추게 함으로써 루벤스에게 불멸의 존재가 된 것이 아닌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불멸을 욕망한다. 그러나 그 불멸도 이미지라고 쿤데라는 지적한다. 쿤데라는 이마골로그(이미지+이데올로기)라는 말로 인간이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 존재들이며, 이미지가 지배하는 체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쿤데라는 우리가 이미지의 지배를 거부하고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서 얼굴 없는 세계를 꿈꾸는 아네스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결국 인간은 불멸을 꿈꾸지만 그 불멸도 이미지의 지배를 받는 것이며 이미지의 지배를 벗어나려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잡문에 불과한 글을 계속 쓰고자하는 마음 밑바닥에 내재하고 있는 나의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작은 불멸에 더해 불멸의 외연을 넓히고자 하는 나의 본능적 욕구의 발현은 아닐까?

뺄셈과 덧셈, 길과 도로, 작은 불멸과 큰 불멸

나 자신은 어디에 속해 있는 존재 일까? 어지럼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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