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서 무너지는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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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을러서 무너지는 나라는 없다
  • 최종규
  • 승인 2011.05.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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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후루타 야스시·요리후지 분페이,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나우루공화국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낙원을 팝니다》(여름언덕,2006)와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에코리브르,2010) 두 가지가 한국말로 옮겨졌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나우루 이야기를 살피며 책으로 쓰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두 가지 책이 한국말로 옮겨졌으니 고마운 노릇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온누리 모든 이야기를 언제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사람 눈길에 걸맞게 써내야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언제나처럼 나라밖 사람들이 빚은 이야기만 찾아서 듣다 보면, 나 스스로 온누리를 바라보는 눈썰미가 한쪽으로 길들거나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날 영어를 무엇보다 도드라지게 다루면서 초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까지 영어를 가르치지만, 정작 초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까지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거든요.

 나우루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우루라는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잊었습니다. 스스로 잊었다기보다 나우루섬에서 큰돈을 얻어내려는 이웃나라에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나우루를 차지하고 이곳 사람들을 식민지 노예로 다루었으니 오랜 나날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바보처럼 되고 말았다 할 수 있을 텐데, 나우루섬에서 살아가던 사람은 모자라지도 않았고 넘치지도 않았어요. 나우루섬이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다울 섬인지 아닌지 모를 노릇입니다만, 나우루섬은 나우루섬에 깃들어 오래오래 살아온 사람한테는 가장 알맞거나 몹시 아름다울 섬이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배를 곯는 사람이 없던 나우루섬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없어도 전쟁이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던 나우루섬입니다. 경찰이나 학교나 군대가 없어도 도둑이나 미움이나 따돌림이 생기지 않던 나우루섬입니다.

 서양 나라와 일본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인광석을 캐낼 때부터 나우루섬은 평화가 깨지고 사랑과 믿음이 사라졌으며 아름다운 빛줄기가 스러졌습니다.

 나우루사람을 함부로 탓할 수 없습니다. 오랜 나날 식민지살이를 하면서 제 땅을 잃고 노예가 되어 인광석을 캐는 일만 해야 한 사람들한테 ‘너희는 왜 너희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못 깨달았는가?’ 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광부로만 일해야 하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던 일이나 흙을 일구어 푸성귀와 곡식을 얻던 일을 모조리 빼앗기거나 잃은 사람한테 ‘너희는 왜 너희 삶터를 어여삐 지키면서 작고 착하게 사는 길을 걷지 않았느냐?’ 하고 따질 수 없어요. 땅임자라 하는 이는 땅임자대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니까 나우루섬을 망가뜨리고, 땅임자 아닌 여느 사람은 ‘탄광 품팔이꾼(임금노동자)’이 되어야 했기에 고기잡이와 흙일구기를 잃었습니다.

.. 인광석을 탐내는 나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이곳에 도착한 나라는 독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엔 영국이 들어와서 인광석을 운송하기 위해 철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섬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바다 저편에서, 본 적도 없는 나라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그 틈에 오스트레일리아 군대가 들어와 이 섬을 점령했습니다 ..  (14∼15쪽)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서해문집,2006)는 짧은 글에 단출한 그림을 붙여 나우루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낙원을 팝니다》하고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은 글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찌 보면, 굳이 글로 길디길게 나우루섬 앞뒤 발자취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있어요.

 줄거리를 살핀다면, 세 권 모두 이렇게 엮습니다. (1) 나우루섬은 아름답고 살기 좋았다. (2) 유럽 나라들이 식민지를 넓히는 전쟁을 벌이며 나우루섬 인광석을 알아냈다. (3) 인광석을 ‘거저로’ 빼앗을 수 있는 나우루섬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유럽 나라끼리 다투었다. (4) 일본이 세계대전에 끼어들며 나우루섬에 전쟁과 식민지가 그치지 않았다. (5)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식민지 정책을 이었다. (6) 나중에 나우루섬이 독립을 하지만, 서양 나라들은 나우루섬 역사와 문화를 헤아리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나우루섬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정치와 행정 조직을 세운다. (7) 정부 공무원을 꾸리면서 경제개발을 외쳐야 했고, 경제개발을 앞세워 나우루공화국도 문화와 교육과 복지를 키우려 하다 보니 돈이 많이 있어야 했다. (8) 인광석을 캐서 팔면 돈이 된다. (9) 조용히 작게 살아가는 길을 잊고, 서양 민주주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인 나우루공화국은 인광석 장사를 이어 나간다. (10) 나우루섬이 공화국으로 독립하기 앞서 유럽과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제국주의자들이 인광석을 많이 캐 갔다. 그래도 꽤 인광석이 남았기에 나우루공화국 정치꾼은 걱정하지 않았다. (11) 드디어 인광석이 바닥났다. (12) 나우루공화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13) 이제 나우루섬에는 아름다운 자연도 넘치는 돈도 사라졌다.

.. 나우루 사람들은 줄곧 노동자였습니다. 그들이 받은 임금은 생산된 인광석의 5퍼센트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던 경작지는 점차 광석 채굴장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 섬에서는 어느 곳을 파더라도 인광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경작지가 없어져도 맛 좋은 통조림을 살 수 있는 돈이 엄청나게 들어왔습니다 ..  (16, 26쪽)

 줄거리를 헤아리자며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우루섬을 다루는 세 가지 책 또한 줄거리를 곱씹자며 읽을 수 있습니다. 나우루공화국에서 일어난 일을 발판 삼아 우리 터전을 곰곰이 돌아보며 거울로 삼자고 할 수 있겠지요. 경제개발이나 황금만능주의나 자연보호를 곱씹는 좋은 밑거름으로 여길 만합니다. 아니면, 또다른 지식이나 상식 하나로 나우루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펼치고, 이와 같이 줄거리를 마무리지어도 좋을는지 궁금합니다. ‘조용히 착하게 살던 사람들’을 식민지로 부리며 괴롭히던 사람들을 찬찬히 꿰뚫는 이야기를 옳게 다루지 못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나우루섬 사람들은 돈에 길드는 바람에 제 보금자리를 잃거나 잊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땅 사람들은 얼마나 제 보금자리를 아끼거나 돌보거나 사랑한다 할 수 있으려나요. 한국땅 사람들은 돈에 안 길든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 만한지요.

 이 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시로 몰려듭니다. 도시로 몰려든 이 나라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들어 얻는 일자리란 ‘돈을 더 많이 벌어 돈으로 집을 사고 옷을 사며 밥을 사는 삶’을 꾸리는 일자리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허구헌날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고 외친들 무엇 하겠습니까. 제주 삼다수 물을 마시고 강원 평창 물을 마시며 깊은 동해 물을 마시면 무엇 하려나요. 정작 어느 도시사람이고 물을 맑게 아끼거나 돌보는 삶이 아니잖아요.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열폐수도 바닷물을 더럽힙니다. 수많은 공장에서 흘리는 폐수도 바닷물을 더럽힙니다. 주한미군 기지도 땅을 더럽히지만, 한국사람이 살아가는 여느 살림집에서 버리는 똥오줌과 생활폐수도 땅을 더럽힙니다. 이제는 유기농(친환경) 먹을거리를 먹어야 하고, 초·중·고등학교에서 친환경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외치기는 하지만, 정작 내가 날마다 누는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도록 하는 시설이나 제도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어느 새 아파트도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도록 시설을 갖추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내 똥오줌을 거름으로 일구려고 땀흘리지 않습니다. 내 똥오줌은 물에 흘려 버리면서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말하는 삶이란 얼마나 엉터리인 줄을 깨닫지 않고, 깨닫지 않으니까 고치거나 바로잡지 않아요.

..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들어진 나라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쳐야겠습니다. 약 100년 사이에 이 섬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린 반면 경작지와 고유한 문화는 많이 잃었습니다 ..  (114쪽)

 나우루섬 사람들은 고작 백 해 사이에 아주 다르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백 해가 아닌 쉰 해 만에 바뀌었다 해도 틀리지 않고, 서른 해 만에 바뀌었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한국땅 사람들은 오늘날 어떤 모습 어떤 삶 어떤 나날인가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하루하루 일구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불쌍하거나 딱한 나우루공화국일 수 없습니다. 어리석거나 게으르다 할 나우루공화국일 수 없어요.

 이 나라 대한민국은 식량자급율이 30%가 되지 않습니다. 콩이 몸에 좋다느니 무어라느니 하지만, 콩 자급율은 10%나 될까요. 밀 자급율은 1%가 안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맥주를 그렇게도 많이 마시지만, 보리 자급율은 몇 %가 될까요. 한국에서 거둔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술 회사가 한 군데라도 있겠습니까. 제아무리 맑은 물을 땅에서 퍼서 빚는 맥주라 하더라도, 어떤 보리를 어느 나라에서 사들여 쓰는지를 살필 줄 아는 한국사람은 없습니다.

 나우루공화국은 사람들이 게을러터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석유로 돈을 버는 나라 또한 사람들이 게을러지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만들 뿐 아니라 군대 또한 어마어마하게 꾸려서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먹고사는 몇몇 나라들 또한 사람들이 돈이 넘쳐 게을러지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아요.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내 삶이 무엇인 줄을 깨닫거나 느끼지 못하니까 무너집니다. 톨스토이 말이 아니더라도, 나와 내 식구한테 땅이 얼마만큼 있으면 스스로 흙을 일구어 먹고살 만한가를 모를 뿐더러, 돈을 벌며 살더라도 내가 갖출 돈이 얼마쯤이면 내 삶과 삶터를 예쁘며 알차게 일굴 수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않으니 무너집니다. 나우루섬은 공화국도 식민지도 관광지도 아닌 그저 나우루섬입니다.

―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후루타 야스시 글,요리후지 분페이 그림,이종훈 옮김,서해문집 펴냄,2006.5.1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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