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사라지면 동네책방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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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가 사라지면 동네책방도 사라진다
  • 김시언
  • 승인 2020.09.11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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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23) 김시언 / '우공책방' 책방지기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온 동네책방 산책길

오늘도 책방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하느라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 또다시 시작됐습니다. 산골마을에서 책방을 한다는 것, 책방 문을 연다는 것은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입니다. 어쩐 일인지 ‘기다리는 마음’을 키우는 일에 지칠 법도 한데 여전히 설레고 긴장됩니다.

우공책방은 강화도 적석사 아래 고즈넉한 마을에 있습니다. 주말에도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시골입니다. 게다가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이 엄중한 시기에 누가 책방을 찾겠습니까. 그래도 문을 열 때마다 설렙니다. 이른 아침에 책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거미를 찾기도 합니다. 웃으면서 하지만, 책방지기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거미를 보면 손님이 온다.’ 어릴 때 저희 할머니와 어머니는 아침에 거미를 보면 손님이 올 거라고 했고, 밤에 거미를 보면 걱정이 생긴다고 얼른 밖으로 내보냈거든요. 그래서인지 아침에 거미를 본 날은 기대가 절로 커집니다. 아랫마을에 사는 단호네가 놀러 올지도 모르고, 누군가 별러서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책개 둘리한테 책 읽어주는 손님
책개 둘리한테 책 읽어주는 손님

동네책방을 찾는 손님들

- 이주 전쯤, 주차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손님 두 분이 성큼성큼 책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는 사람 집을 찾아온 듯 거침없었죠. 언젠가 오신 분인가 살폈지만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네가 둘리구나, 안녕!” 손님들은 별러서 왔다고 했습니다. 교직에서 은퇴했다는 손님들은 한동안 책을 고르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방을 나서면서 자주 와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하죠!”

- “적석사에 갈 때마다 궁금했어요!” 고려산을 좋아한다는 손님들은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작정한 듯 책을 잔뜩 골랐습니다. 책방지기로서 책을 많이 고르는 손님은 무조건 예쁘고 고맙죠. 손님들은 책개 둘리를 쓰다듬으면서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고려산 올 때마다 오려구요!” “책은 안 사더라도 언제든지 차 마시러 오세요!”

- 지난주에는 젊은 연인이 책방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휴가 내내 책만 보면서 뒹굴거리겠다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책을 보고 틈틈이 둘리랑 놀고, 마당에서 우드카빙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다른 때는 외국에 나갔는데 올해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책만 보니까 사는 것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친 젊은이들이 잘 쉬다 가니 좋았습니다.

- 지난주의 일입니다. 책방에 도착한 손님들의 표정이 아주 낯설었습니다. 두 아들은 화가 잔뜩 난 것 같았고, 그 상황이 무안한지 엄마가 멋쩍게 웃었습니다. “친구들하고 놀아야 하는데 시골책방에 데리고 오니까 화났나 봐요.” 2층 북스테이 공간으로 올라간 그들은 얼마 뒤 책방에 내려와서는 책을 살펴봤고, 점점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큰애는 휴가 나오고 둘째는 오늘 방학식 했어요. 책방이 조용해서 기분이 나아졌대요.” 듬직한 청년은 한동안 손 놨던 책을 군대에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잔뜩 골라놓은 책탑에서 또다시 책을 선정하는 자세가 무척 진지했습니다.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열심히 듣는 단호.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열심히 듣는 단호.

산책길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

- 책방 문을 닫는 오후 여섯 시, 적석사에서는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시골책방의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고, 우리는 곧바로 책개 둘리와 산책을 나섭니다. 산책길에서 동네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올해 농사는 좀 어떤가요?” “장마가 길어서 망쳤죠.” “언제 책방 놀러갈게요.” “근데, 손님은 와요?”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면서 산책하는 길은 시골에 사는 다정한 즐거움을 줍니다.

- 산책하면서 열에 다섯 번은 아랫마을 단호네를 만납니다. 단하가 자전거를 타거나 단희가 상근이를 데리고 산책합니다. 단희가 단호와 메뚜기를 잡기도 합니다. 단호네와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서로 큰소리로 부르고 손을 흔듭니다. 특히 단호가 “책방 아줌마!”라고 부르면 무척 설레는데, ‘책방 아줌마’만큼 기분 좋은 말도 없습니다.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단호네는 책방에 놀러옵니다. 슬리퍼를 신고 타박타박 시골길을 걸어서 책방에 들어서죠.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단호는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면 집중합니다. 그림책 몇 권을 읽고는 그중 한두 권을 골라 삽니다.

책값을 치를 때, 단호는 자기 돈주머니에서 동전을 세어줍니다. 책값이 모자라면 외상으로 달아놓기도 하죠. 단호가 돈을 셀 때 책방지기는 돈이 모자라기를 은근히 기대합니다. 단호 엄마 말로는, 단호가 책값을 벌려고 심부름을 무척 잘한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져와 팔기도 하는데, 라면을 가져와 사라고 할 때는 황당하다고 전했습니다. 책값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단호가 귀엽습니다. 게다가 단호는 ‘힘들게’ 산 책을 애지중지하면서 읽는다고 합니다.

방금 메시지가 왔네요. 이웃마을에 사는 작가가 책을 주문했습니다. 책 주문이 들어오면 책방지기는 만사를 제쳐놓고 책 주문을 합니다. 이 분은 글 작업을 하다가 필요한 책을 주문합니다. 사실 그분은 온라인으로 책을 사면 10% 할인해서 살 수 있고, 더 빨리 받을 수도 있는데도 언제나 동네책방에서 삽니다. 동네책방에서 한 권이라도 주문해야 동네책방이 살고 문화가 살고 동네가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일을 기꺼이 감수하는 그 마음이 작은책방을 버티게 해줍니다.

 

우공책방에서 진행하는 _시강화!우공강화!_ 프로그램.
우공책방에서 진행하는 _시강화!우공강화!_ 프로그램.

재미있고 알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우공책방에서는 한 달에 두 번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참여하는 분은 거의 다 강화에 삽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단순히 프로그램이 좋아서 참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달라집니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공유하고 공감합니다. 동네책방은 이렇게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곳입니다. 시를 읽고, 낭독모임을 하면서 이야기가 나오고, 이 이야기들이 모여 또 다른 문화가 생겨납니다. 책방지기는 더 재미있고 알찬 프로그램을 열려고 고민합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곳, 동네책방은 문화를 싹틔우고 문화가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는 곳입니다.

솔직히 책방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습니다. 작은책방에서는 생계수단으로 걸 만큼 책이 팔리지 않거든요. 적어도 산골에 있는 저희 책방은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도 책방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건, 다른 일을 찾아가면서 책방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건, 책방을 하는 일이 좋고 문화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걸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공책방에 있는 책들
우공책방에 있는 책들

도서정가제가 사라지면 동네책방도 사라진다

지금, 동네책방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는 독자에게는 다양한 양질의 책을 전국 어디서나 같은 가격으로 보급하고, 작은 출판사와 동네서점의 생존을 보장하며 출판문화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키는 최선의 제도입니다.

도서정가제가 ‘개악’될 경우 동네책방은 버틸 수 없습니다. 문을 닫게 됩니다. 좋은 이웃과 변함없이 만나는 것, 좋은 사람이 언제나 부담없이 찾아오는 동네책방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것이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섬에 있는 서점》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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