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갈산동
상태바
가을이 오면~, 갈산동
  • 유광식
  • 승인 2020.09.21 0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 유람일기]
(39) 갈산동 일대/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부평대로 갈산역 부근(어딜 가나 있는 백.조.아파트), 2016ⓒ유광식
부평대로 갈산역 부근(어딜 가나 있는 백.조.아파트), 2016ⓒ유광식

 

인사도 안 한 것 같은데 여름이 가물가물해진다. 어느 날 갑자기 가을 기운이 느껴져 몸을 움츠러들게 된다. 욕실 벽에 기대어 칫솔질하면서 많은 생각이 스친다. 잡스러운 것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와중에, 날씨만큼 강한 것 없다는 생각으로 머릿속 헹굼을 한다. 인천의 동쪽, 부평과 계양의 가운데 되는 곳이 갈산동이다. 한국GM의 공장 옆 나란히 자리한 1·2동은 자주 가지는 못해도 까치발 들어 살피게 되는 장소다. 지난 걸음의 랜선 유람이다.

 

갈산1동, 어느 집 앞 버려진 TV와 전신주에 꽁꽁 묶인 도끼(마을엔 수수께끼가 많다), 2019ⓒ유광식
갈산1동, 어느 집 앞 버려진 TV와 전신주에 꽁꽁 묶인 도끼(마을엔 수수께끼가 많다), 2019ⓒ유광식

 

칡이 많아 갈산이라 불렀고 지금까지 이곳을 갈산동이라고 하는 걸 보면 예로부터 지명은 별 대단한 뜻 보다는 일상적이고 솔직한 부분에서 연유한 것 같다. 지질학적인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성도 싶은 이름 짓기에 재미를 느꼈다. 갈산역을 중심으로 볼 때 공단과 거주지는 도로의 양옆으로 자리한다. 동서로 뻗으며 부평IC를 지나는 경인고속도로의 위아래로 계양과 부평이 자리한다. 부평IC 한쪽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기타 회사 공장(갈산동 421-1)이 있었다. 2007년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후 공장을 이전하게 되면서 노사 간 싸움의 여파가 13년 넘게 이어졌다. 지역사회에도 큰 파장을 주며 저항이 거세게 불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정규직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기타 노동자들의 공연(서울 홍대), 2012ⓒ유광식
비정규직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기타 노동자들의 공연(서울 홍대), 2012ⓒ유광식
부평IC 진입로 부근의 옛 콜트 부평공장 모습, 2012ⓒ유광식
부평IC 진입로 부근의 옛 콜트 부평공장 모습, 2012ⓒ유광식

 

부평정수장 옆 갈산1 주택재개발 지역도 조만간 시대와 안녕하고 새롭게 단장될 것이다. 옹기종기 모여 키 낮은 집들이 하나둘 비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칡뿌리만큼 강인한 생명이었을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다들 연세가 있지만 말이다. 차량이 오가고 아이들도 뛰어노는 늦은 오후의 부평북초 생활 대로변 한쪽에 돗자리를 펴고 삼겹살을 굽는 동네 분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정감을 챙겨 보려는 용기로 보이기까지 해 훈훈한 마음도 들었다. 그 근처에 미리 주인 행사를 하려는지 대형 프랜차이즈 ‘S’ 카페도 생기니 새 시대인가도 싶다. 

 

갈산역 사거리 복개 공영주차장, 2018ⓒ유광식
갈산역 사거리 복개 공영주차장, 2018ⓒ유광식

 

‘갈’의 발음이 자꾸 맴도는지 갈산동을 떠올리면 갈색 톤이 연상되고, 자연스레 가을의 느낌이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된다. 서쪽으로 공단이, 북으로는 고속도로다. 좋은 연기는 아니지만, 굴뚝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저녁 풍경의 기억은 남아 있을 거란 엉뚱한 상상도 든다. 산마루에 구불구불 자리한 길목이 많아 호기심 나는 각도가 많이 포진되어 있다. 또한, 다소 마른풀 같은 바삭하고 따뜻한 생각도 갈산동과 어우러진다.

 

갈산1동 재개발주택가 어느 골목 풍경, 2019ⓒ유광식
갈산1동 재개발주택가 어느 골목 풍경, 2019ⓒ유광식

 

남쪽의 갈산2동은 잘 정돈된 주거아파트와 먹거리타운이 자리한다. 부평구와 경계가 되는 거리에는 최근 ‘청리단길’이라며 작은 가게와 카페,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바로 뒤쪽의 굴포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생각의 흐름이 파일 것이다. 수량이 좀 있었으면 하지만 흔히들 그냥 덮는 복개도로가 생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 여긴다. 부평·계양을 이야기할 때 하천을 빼놓을 수 없다. 평야 지대였던 만큼 하천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지금은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조류들이 간혹 갈증을 푸는 장소이니 수질에 대해 좀 더 신경 쓰면 좋을 것이다. 여전히 부평구청역 합류 지점은 냄새가 좀 있다. 

 

굴포천 다리 위에서(솟대처럼), 2019ⓒ유광식
굴포천 다리 위에서(솟대처럼), 2019ⓒ유광식
굴포천 다리 위에서(좌측:부평 굴포누리 기후변화체험관), 2017ⓒ유광식
굴포천 다리 위에서(좌측:부평 굴포누리 기후변화체험관), 2017ⓒ유광식

 

좀 더 쌀쌀해지면 플라타너스의 커다란 잎이 바람에 나뒹굴 테고, 또 한철이 간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적시게 될 것이다. 금주 코로나 정국이 다소 진정되었다고 하지만 좀 더 강화된 마음으로 생활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 가을이 짙어지면 갈산동에 한 번 가볼 작정이다. 야트막한 산마루에 자리한 마을에 불어오는 바람과 작별 인사라도 하러 말이다. 마을풍경이 새로 바뀌더라도 좋은 날 가득했던 처음의 풍경을 이어가길 바란다. 

 

길주로 어느 교차로(왼쪽이 굴포 먹거리타운 일대), 2019ⓒ유광식
길주로 어느 교차로(왼쪽이 굴포 먹거리타운 일대), 2019ⓒ유광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