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교차와 익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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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교차와 익숙함
  • 김선
  • 승인 2020.09.16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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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㉕면회소의 대화와 죄수의 생활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C’était d’ailleurs une idée de maman et elle le répétait souvent qu’on finissait par s’habituer à tout.

사실 이건 엄마의 생각이었는데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마리는 뫼르소에게 나오게 되면 결혼하자고 외친다. 뫼르소는 그래?라고 대답한다. 진심이 담긴 마리에게 뫼르소는 무심으로 응대한다. 무슨 말이건 해야겠기에 한 말이라고 하니 뫼르소답다. 마리는 아주 빨리, 높은 음성으로 정말이라고 하며 석방되면 또 해수욕을 하러 가자고 말한다. 일방적인 호소인지라 처량하게 들린다. 그러나 곁에 있던 여자도 고함을 지르며 서기과에 바구니를 맡겼다고 말하고 그 속에 넣은 것을 일일이 주워섬긴다. 돈을 많이 들인 것이니 없어진 게 없나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구니에 마음을 담았으니 하나하나 애절하다. 그 마음을 알기게 뫼르소 옆의 청년과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서로 쳐다보고 있다. 아랍인들의 웅얼거리는 소리는 아래쪽에 계속되고 있다. 밖에서는 빛이 창에 부딪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면회소 풍경이 가지가지다.

뫼르소는 몸이 좀 불편해지는 것을 느껴 밖으로 나오고 싶었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리가 있을 때 좀 더 보고 싶었다. 고통과 욕정이 공존한다. 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마리는 자기 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끊임없이 웃고 있었다. 많은 이야기와 웃음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음이 안타깝다. 속살거리는 소리, 외치는 소리, 주고받은 이야기 소리가 서로 교차했다. 소리만 교차할 뿐 의미는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것을 아는 듯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내 옆의 젊은이와 노파, 두 사람만이 침묵의 외딴섬을 이루고 있었다. 침묵 속에 의미가 오가고 있는 장면이 그려진다.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 중 '파리마치' 잡지표지 사진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 중 '파리마치' 잡지표지 사진

 

말없이 얼굴표정으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으며 그 속의 의미는 신화처럼 서로의 믿음으로 굳어지기도 한 것처럼 면회소는 조용한 메아리가 그윽하다.

  아랍인들이 한 명씩 차례로 끌려 나갔다. 맨 처음 사람이 나가 버리자 거의 모든 사람이 일시에 말을 뚝 그쳤다. 이곳의 룰인지 이상스럽다. 키가 작은 노파가 쇠창살로 다가섰고 그와 동시에 간수가 그의 아들에게 눈짓을 했다. 눈짓으로 면회자들에게 명령한다. 아들이 엄마에게 잘 가라고 말하자 노파는 쇠창살 사이로 손을 들이밀어 아들에게 천천히 오래도록 작은 손짓을 했다. 늘 아쉬운 순간일 것이다.

  노파가 나가자 그 사이에 한 남자가 모자를 손에 들고 들어와서 그 자리를 차지했다. 새로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죄수 한 사람이 끌려 들어왔고 그들은 활기 있게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목소리는 낮았다. 방 안이 다시금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조용한 방안에서 조용히 말하는 면회자들은 알아서 행동한다. 뫼르소 오른편에 있는 사내가 불려 나갈 차례가 되자 그의 아내는 마치 소리를 크게 지를 필요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이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몸조심하고 주의하라고 그에게 말했다. 첫 면회인지 분위기와 암묵적 룰을 모르는 아내의 모습이다. 그다음에 뫼르소 차례가 되었다. 마리는 키스를 보낸다는 뜻의 시늉을 한다. 뫼르소는 방을 나서기 전에 돌아다본다. 그냥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다. 마리는 얼굴을 창살에 비벼 대며 여전히 어정쩡하고 온통 긴장된 웃음을 지으며 우두커니 서 있다. 마리의 아쉬움이 뫼르소 보다 더 커서 그런 것이다.

  마리가 편지를 보낸 것은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서의 일이었다. 뫼르소는 절대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처음 형무소에 수감되어서 뫼르소에게 가장 괴로웠던 것은 뫼르소가 자유로운 사람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감자들의 공통점일 수 있다. 바닷가에 가 있고 싶고 바다를 향해 내려가고 싶은 욕망이 솟아나 발바닥에 부딪히는 첫 물결, 물속에 몸을 담그는 촉감, 거기서 느끼는 해방감, 그런 것들을 상상할 때면 갑자기 뫼르소는 감옥의 벽이 그 얼마나 답답한가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된 것은 몇 달 동안이었다. 그다음에는 죄수로서의 생각밖에 없었다. 뫼상황에 적응되어 가는 것이다. 뫼르소는 매일 안뜰에서 하는 산책이나 변호사의 방문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이럭저럭 잘 보낼 수 있었다. 그 당시 뫼르소는 만약 마른 나무 등치 속에 들어가 살게 되어 머리 위 하늘의 표면을 바라보는 것밖에 달리 소일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고 해도 차츰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미 죄수로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뫼르소는 지나가는 새들이나 마주치는 구름들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대상이 점점 늘어간다. 마치 여기서 변호사의 야릇한 넥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듯이 또 저 바깥세상에서 마리의 육체를 껴안을 것을 기다리며 토요일까지 참고 지내듯이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뫼르소는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안정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뫼르소가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는 것을 생각한다. 사실 이건 엄마의 생각이었는데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뫼르소의 익숙함은 성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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