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구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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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구하는 시간
  • 안태엽
  • 승인 2020.09.2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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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해서는 안 될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짧은 시기이지만 다른 여성과 사적인 만남을 가져왔다. 아내는 몹시 화가 나있어 한동안 말을 안 했다. 가정의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고 아이들도 나와는 대화 없이 멀어졌다. 나는 아내를 달래며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아내의 상처는 너무 커서 나를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아내는 마치 한 편이 된 것처럼 집안의 가장인 나의 입장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소통하려 들지도 않았다. 더 이상 가족이 아닌듯한 말과 행동은 내게 더 큰 상처를 안겨 주었고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가족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온 가족이 등을 돌리고 가장의 권위와 권한까지도 묵살이 되었다. 내 잘못은 컸는데 오히려 ‘가족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허무해지며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잘 키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이들이 ‘우리 아빠는 돈은 많이 못 벌었어도, 매스컴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은 아니어도 성실하고 진실 한 사람이다.’라는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힘차게 살아왔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실망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는데 어쩌다 보니 가족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는 가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은근히 아내가 나를 용서해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아내는 말없이 침묵만을 지키며 지냈다. 가족과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자기 집의 이방인처럼 말 못 하는 처지가 너무 괴로워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운 삼 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한 집에 살기에 언젠가는 해결이 되겠지’라는 생각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고 오해와 분노만 더 깊어지게 했다. ‘관계를 회복’하는데 서로의 진실한 고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긴 시간으로 인해 이제는 타이밍을 놓친 것 같은 생각마저 들며 침묵만을 지키는 아내가 안타까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의 야윈 모습을 바라보면 만감이 교차하고 어려울 때 함께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가여운 마음이 든다. 아내와 관계가 회복된다면 나는 남편의 역할뿐 아니라 부모 같은 마음으로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에게 마음으로 빚진 것도 원금에 이자까지 나는 상환하고 싶고 그 빛이 탕감될 때까지 노력하고 싶다.

침묵은 금이라고 했다. 금은 변하지 않아 신의 성품을 말할 때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말을 해야 될 때 침묵을 지키는 것은 모든 것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성경에는 ‘사람이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는 말이 있다. 침묵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연어는 나침판도 없이 물살을 헤치며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찾아간다.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면 가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다 있어도 가족이 없으면 삶이 불쌍할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우리 집 아이는 밖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와 ‘엄마’하고 불렀는데 엄마의 대답이 없으면 집에 온 것 같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집은 엄마이고 엄마는 집이라고 말한다.

‘집은 있는데 가정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프고 해서는 안 될 실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집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집이 아니라, 집 안에서 함께하는 가족이다. 사람들은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은 것만이 집이라 생각하는데 자신이 쉴 수 있고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진정한 집이며 영혼의 안식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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