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을 견디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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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을 견디는 법
  • 김선
  • 승인 2020.09.2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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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㉖정욕, 담배 그리고 시간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Plus tard, j’ai compris que cela faisait partie aussi de la punition.

나중에야 나는 그것도 징벌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처음 몇 달 동안 뫼르소는 괴로웠다. 감옥이 편한 곳은 아니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때 치러야 했던 수고가 그 몇 달을 지내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동물에 뫼르소도 포함되나 보다. 다행이다. 가령 여자에 대한 정욕이 고통거리였다. 억제와 억압은 갈망과 몰입을 배가시킨다. 뫼르소는 젊었으니까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별히 마리만을 생각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뫼르소는 그저 어떤 여자를, 여러 여자들을, 자신이 알고 지냈던 모든 여자들을에 대해 갈망하고 몰입하다보니 그의 감방은 그 여자들의 얼굴로 가득 들어차고 그의 정욕은 충일했다. 충만함을 채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느 면에서는 그것들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만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뫼르소는 식사 시간에 주방 보이와 같이 오곤 하던 간수장의 호의를 얻게 되었다. 남자들은 모이면 의례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감방이라 그런 것인가? 알 수 없지만 여자 이야기를 먼저 끄집어낸 것은 그였다. 다른 사람들도 첫째로 호소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뫼르소는 그에게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이며 그런 대우는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러자고 당신네들을 감옥에 가둔 것이며 자유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고 그 자유를 빼앗는 것이 그런 거라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뫼르소는 한 번도 그 점을 생각해 본 일이 없었지만 그렇긴 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그게 무슨 벌이냐며 그에게 공감을 표시했다. 간수는 뫼르소에게 이해심이 깊다고 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지만 결국 스스로 욕구를 채우게 된다고 말하고 가버렸다. 결국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뫼르소에게 담배도 고통거리였다. 형무소를 들어왔을 때 뫼르소는 호주머니에 지니고 있던 모든 것, 특히 담배를 빼앗겼다. 논산훈련소에 입대했을 때도 그랬다. 흡연자들은 상당한 고통을 부모님 면회 때까지 견뎌야 했다. 뫼르소도 그랬을 것이다. 일단 감방으로 들어온 뒤 담배를 돌려 달라고 청해 보았지만 그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심리적 압박을 먼저 느끼게 된다. 처음 며칠 동안은 매우 괴로웠다. 다음은 몸으로 표현될 것이다. 뫼르소는 침대 판자에서 뜯어낸 나뭇조각을 빨곤 했다. 온종일 끊임없이 구역질이 따라다녔다. 뫼르소의 기를 꺽어 버린 것은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그것을 왜 빼앗아 버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1994.4.15. 뉴욕타임즈
1994.4.15. 뉴욕타임즈

 

담배는 유해하지 않다는 일곱난쟁이의 거짓말을 믿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인 뫼르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 담배의 폐해를 제대로 몰랐던 시절이라 할 수 있는 생각이리라. 나중에야 뫼르소는 그것도 징벌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흡연자들에게는 엄청난 징벌이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것은 이미 그에게 아무 징벌도 되지 못했다. 비자발적 금연에 쿨하게 익숙해진 뫼르소는 자발적 감방인의 풍모가 느껴진다.

  그러한 불편들을 제외하면 뫼르소는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다. 그를 보면 불행에 덜 민감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뫼르소에게 문제는 다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Wolfgang von Goethe, (1749.8.28 ~ 1832.3.22)
Wolfgang von Goethe, (1749.8.28 ~ 1832.3.22)

 

 

하루의 감사함을 알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하루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다.”라고 말한 괴테의 말은 뫼르소에게는 들릴 리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하루의 시간이 영원한 시간처럼 느껴져 감사하기 보다는 극복의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곧 해결책을 찾는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배운 뒤부터는 심심해서 괴로운 일은 없었다. 가끔 뫼르소는 그의 방을 생각했다. 그에게 가장 익숙했던 공간이 방이어서 먼저 떠올린 것 같다. 머릿속으로 방의 한구석에서 출발해서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도중에 있는 것을 모두 마음속으로 따져 보곤 했다. 뫼르소는 단순한 사고의 흐름을 택하는 편이 오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훈련이 된다면 말이다. 처음에는 아주 빨리 끝나 버렸다. 그러나 다시 되풀이할 적마다 조금씩 길어지는 것이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무한 반복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구를 하나하나씩 기억해 내고 그 가구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떠올렸고 또 그 물건마다 그 세부를 골고루 생각하고 그러한 세부에 있어서도 상감(象嵌)이라든지 갈라진 틈이라든지 이빠진 가장자리라든지 그런 것들에 관해서 그 빛깔 또는 결 같은 것을 생각하는 식이다. 이 모습은 시간에 지배되지 않으려는 뫼르소만의 작은 놀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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