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여성증후군과 첫 여성 초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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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여성증후군과 첫 여성 초헌관
  • 박교연
  • 승인 2020.10.0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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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이번 추석 연휴기간 이동인원이 3,116만 명으로 지난해 추석보다 3.1%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올해 추석을 집에서 보냈다 하더라도 여자들은 명절증후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했다. 식구들이 연휴 내내 외출을 하지 않으면서 집안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동안 식사준비, 청소, 빨래, 육아 등의 집안일은 평소에도 그랬듯이 대부분 여성의 차지였다.

지난 7월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으로 재택근무와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가정에서 가사노동의 양이 증가해 가정 내 갈등이 잦아지고 있다. 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와 가족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7.4%는 가족 간 갈등을 경험했고 가장 큰 원인으로 가사노동 증가로 인한 분담 문제를 꼽았다. 통계청의 2019년 생활시간 조사를 보면, 취업 여성의 가사시간은 일평균 2시간 24분이고 남성은 49분이었다. 가사분담 만족도를 보면 ‘매우 불만족’ 비율이 맞벌이 부부인 남자 3.6%, 여자 14.6%로 여성의 불만이 훨씬 높았다.

2018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실시한 ‘서울시 성평등 생활사전-추석특집’ 조사에서 시민 1,170명 가운데 절반 이상(53.3%)이 명절 때 겪는 성차별 사례 1위로 ‘여자만 하게 되는 가사노동’을 꼽았다. 때문에 부부 갈등도 명절을 전후해 증폭됐다. 최근 3년간(2017~2019년) 대법원의 전국 법원 협의이혼 월별 신청 건수를 분석한 결과, 설날과 추석 다음 달에 이혼 신청이 급격히 늘었다. 위의 통계자료들을 분석해보면 가사노동은 이미 여성에게 과중한 부담인데, 코로나19와 긴 연휴가 그 노동의 강도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바쁜 여성 증후군’을 호소하는 여성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바쁜 여성 증후군’은 미국의 산부인과 전문의 브렌트 보스트 박사가 개념을 정립한 신종 질환으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은 역할을 요구받을 때 생기는 질환이다. 환자들의 주요 공통증상인 체중증가, 우울감, 만성피로 등의 원인을 역추적 하여 분석한 결과, 과중한 여성의 업무 부담이 그 원인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동의 업무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직장에 빗대 설명하자면, 남성들은 아직도 돌봄과 가사 노동에 있어서 자신을 팀장이 아닌 팀원이라 보고 도와준다는 인식이 여전한 것 같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가사와 육아가 부부 중 어느 일방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고, 평등한 가사와 육아를 장려함은 물론, 나아가 평등한 가족 문화 조성을 위해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한국의 서원 600년사에서 첫 여성 초헌관이 나온 것이 매우 뜻 깊다. 서원 설립자인 퇴계 이황은 평소 윤리와 지혜, 군자로서의 도리를 강조하면서도 ‘시종(時從)’을 몹시 중시했다. 즉, 이번 첫 여성 초헌관의 등장은 달라진 시류와 규범을 따르라고 말하는 퇴계의 가르침을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군자는 일정한 그릇의 틀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고 그 그릇을 깨야한다는 ‘군자불기(君子不器)’와도 일맥상통한다.

옛 선인의 올바른 가르침을 쫓을 것은 유교뿐이 아니다. 2008년에 개정한 뒤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도 하루라도 빨리 폐지할 필요가 있다. 서원 600년사도 시종을 따르고 있는데, 1969년에 제정된 성차별적 법률이 존속할 이유는 없다. “기제사의 대상은 제주(祭主)부터 2대조까지로 하며(제20조 제1항), 차례는 매년 명절의 아침에 맏손자의 가정에서 지낸다(제21조 제2항)”라는 조항은 여성을 완벽히 차별하고 배제한다. 제주를 남성 그리고 맏손자로 못 박은 시점에서 더는 건전하지 않은 법률이다.

이런 성별 불평등을 원래 그랬다는 이유로 혹은 전통이란 이름으로 좌시하지 않고, 시종에 따르며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다보면 명절 증후군이나 바쁜 여성 증후군을 양산하는 명절이 아니라 분명 모두가 행복한 명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명절이 명절다운 그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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