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남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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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남녀갈등
  • 전영우
  • 승인 2020.10.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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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의 미디어 읽기]
(47) 된장녀와 한남충의 역학

한국은 특히 가부장적 권위가 강한 나라였지만, 최근에는 여성의 지위와 목소리가 많이 높아졌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성상의 변화만 봐도, 과거 현모양처나 백마 타고 온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여성상에서 주체적이고 오히려 남자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서 여성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 가치를 반영한 것이고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대중문화에 나타난 여성상은 분명히 일취월장했는데,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남성 위주 가치관이 완전히 변하고 자리잡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많이 미흡하겠지만, 어쨌거나 진보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변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남성들 사이에 거부감이 형성되는 현상도 보이고, 여기에 대해 다시 여성들의 반발이 생겨나는 등, 우려스러운 현상도 보인다. 시간이 지나며 극복해 나가야 할 일이겠지만, 자칫 남녀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김치녀, 된장녀와 같이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하고 이에 맞서서 한남충 등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여성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퍼지며 젊은 남녀들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젊은 남성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여성 혐오의 기저에는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억울함이 깔려있다. 여권이 신장되고 남녀평등이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병역 의무는 이런 인식의 기저에 깔려있는 근본적 문제 중의 하나이다. 병역 의무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일련의 배려들이 남녀평등 의식이 자리 잡으며 사라져 가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남성들의 심리가 여성에 대한 공격적 태도로 표출되는 경향도 있다.

또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약진하자, 과거 남성이 누리던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남성들의 불안감이 표출된 것이기도 하다. 단순히 인터넷 등에서 나타나는 차별적 언어에 국한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성들이 남성에 대해 갖게 된 반감도 높아져서 여성들이 남성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비록 일부에 국한된 일이지만, 간과할 일이 아니다.

사회 구조가 변하고, 따라서 가치관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과거 육체적 완력과 공격적인 성향이 중요하던 시절에 남성이 여성에 비해 우월하게 가졌던 지위는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했던 능력인 육체적 완력은 이제 딱히 중요한 자질이 아니다. 사회 구조의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게 되었고, 현대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오히려 여성이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는 중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과거 고도성장 시절에 보장되던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청년실업이 증가하면서 남성들이 가진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페미니즘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현상이다. 남자들이 표출하는 근거 없는 여성 혐오와 마찬가지로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이 보여주는 남성 혐오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젊은 청춘 남녀들 사이에 퍼지는 이런 왜곡된 성차별에 대해 근본적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런 식의 남녀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사회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다. 가뜩이나 인구절벽을 말하고 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 사회이기에 특히나 젊은 청춘 남녀 간에 성차별과 혐오감이 퍼져나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출산율과 같은 문제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일이지만, 그 이유 중 하나로 남녀 간 갈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결국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니, 특정 집단만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런 갈등을 단순히 흥미 위주의 기사거리로만 다루고 조회수 올리는 자극적 제목만을 뽑는 언론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원인을 분석해서 갈등을 해소할 노력을 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무책임하게 자극적 기사로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언론 신뢰성을 더욱 추락시키는 일이고 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책임 있는 언론의 역할을 촉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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