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부터 지구 별에 살았나요?
상태바
인간은 언제부터 지구 별에 살았나요?
  • 정민나
  • 승인 2020.10.15 15: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민나의 시마을]
용문사에서 - 이임순

 

용문사에서

                         - 이임순

 

고향 가는 길에

용문사에 오른다

돌 밑으로 흐르는

합창소리…

은행 알 비벼보면

풋사랑이 숨어있다

똘배하나

꽈 -악 깨물면

숨어있던 이야기

시고 달콤한 즙으로

흘러들어

추억을 음미하는

입안에서

보고 싶다

어머니……

가을하늘로

멀리

전송하는 그리움

 

똘배나무 ⓒ블로그 - 약초식물이야기

바이러스로 갇혀 지내는 세월이 아무리 길어도 ‘그리움’이나 ‘자유’, ‘사랑’ 같은 생명의 느낌을 가진 실체들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는다. 이 시에서처럼 딱딱한 돌 밑이거나 냄새나는 은행의 속살이거나 못생긴 똘배 속에도 그것은 있다. 시를 쓰는 시인은 이 가을에 단단하고 냄새나고 못생긴 사물 속에서 유연하고 사랑스런 생명체를 발견한다. 그것은 아름다운 합창소리이고 풋풋한 첫사랑이고 새콤달콤한 추억이고 그리운 어머니이다.

펜데믹으로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첫사랑의 기억이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이제 아무도 떠올리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일 뿐인데 주변에 마구 굴러다니는 돌맹이에서, 가을이면 흔하디흔한 은행알에서, 아무렇게나 자라고 아무렇게나 익어가는 똘배 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새로운 감정을 찾았다면 그것이 바로 보물인 것이다.

환경이 변하고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지구가 다하는 날까지, 아니, 인간, 호모사피엔스가 그들이 저지른 행위의 대가로 멸종 위기에 처하는 날이 온다 해도 한편에서는 이런 자유, 이런 사랑, 이런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보물은 하잘 것 없는 사물 속에, 자연 속에 숨어 흐르고 사람들이 그 사실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 하더라도 발견하는 그 순간 새로 태어나듯이 사람은 또다시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그리하여 “똘배하나 / 꽈 -악 깨물면 / 숨어있던 이야기 // 시고 달콤한 즙으로 / 흘러들어” 15만년 전 최초 인류의 추억을 음미하는 “입안에서 / 보고 싶다 / 어머니…… // 가을하늘로 / 멀리” 그리움을 전송할 것이다.

시인 정민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