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담는 웃음, 만화가 잃는 재미
상태바
만화가 담는 웃음, 만화가 잃는 재미
  • 최종규
  • 승인 2011.05.11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화책 즐겨읽기] 아즈마 키요히코, 《요츠바랑! (10)》

 일본에서는 진작에 나온 《요츠바랑!》 열째 권이지만, 한국에서는 아홉째 권이 나온 지 한 해하고 한 달이 지나서야 열째 권이 겨우 나옵니다. 열째 권이 나오면서 ‘스티커 선물 담긴 한정판’이 나란히 나옵니다. 스티커 없는 《요츠바랑!》 열째 권은 4800원이고, 스티커 담긴 한정판은 9000원입니다. 저는 만화책방에 가서 스티커 담긴 한정판으로 장만합니다. 요츠바 모습이 담긴 자그마한 스티커가 여럿 담기는데, 스티커 값으로 퍽 비싸다 할 만할 수 있고, 그럭저럭 괜찮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정판으로 내놓기보다 스티커만 따로 팔아도 좋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스티커 때문에 만화책이 더디 나왔는지 모르며, 더디 나오는 바람에 스티커를 끼워넣은 한정판을 선물처럼 내놓았는지 모릅니다.

- “모양은 형편없지만 꽤 맛있네.” “형편없다는 말 하지 마요. 또 삐칠걸.” “아하하하, 형편없어!” “아, 괜찮아? 네가 만들었다구.” (63쪽)

 지난 2004년에 《요츠바랑!》 첫 권이 옮겨졌고, 2011년에 얼째 권이 한국말로 옮겨집니다. 《요츠바랑!》을 그린 아즈마 키요히코 님은 《아즈망가 대왕》(2002)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0년에는 《오사카 만박》이라는 이름을 붙여 ‘아즈망가 대왕 열 돌’을 기리는 만화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귀엽다면 귀여워 보이는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요, 예쁘다면 예뻐 보이는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입니다. 착하며 곱게 살아가는 아이들이라 한다면 착하며 곱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라 할 만합니다. 재미나게 볼 수 있고, 즐겁게 여러 번 들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4년부터 2011년으로 흐르는 동안 《요츠바랑!》은 그닥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동안 일곱 해가 흘렀는데 요츠바는 예나 이제나 똑같은 어린이입니다. 요츠바 둘레 어른 또한 이제나 저제나 똑같은 어른입니다. 키도 안 크고 나이도 안 먹는 듯한 요츠바이고, 둘레 어른 또한 나이를 먹는다는 느낌이나 무언가 하루하루 새롭게 거듭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바라보기에 따라 다를 테니, 한결같이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언제나 싱그럽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오래 살가이 이어갈 꿈으로 보듬을 수 있어요.

- “요츠바도 사진 찍고 싶어! 이거(콘센트 꽂이) 카메라! 찰칵. 찰칵.” (75쪽)
- “코이와이 씨, 디카 없어요? 왜요? 요츠바 찍어 줘야죠.” “음? 음. 사진이 없어도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싶었지. 근데 꽤나 잊게 되더라구. 사진이 있으면 떠오르지만.” (102쪽)

 사진이란 사진기로도 찍지만 마음으로도 찍습니다. 종이나 파일에 담겨야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종이나 파일에 담았어도 마음에 담기지 못했으면 사진이 되지 못합니다. 저마다 웃고 울며 부대낀 삶을 담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사진이지, 문화나 예술이나 추억이나 기억이 되어야 사진이지 않아요.

 예쁘게 그리거나 아름다이 보여준대서 그림이나 만화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을 부비며 웃고 떠들며 복닥이는 삶을 오롯이 아로새길 때에 비로소 그림이나 만화입니다.

 만화책 《요츠바랑!》은 티없이 복닥이면서 해맑게 어우러지는 사람들 삶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이야기로 즐거이 태어났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권수가 늘면서, 다섯째 권이 나오고 일곱째 권이 나오고 아홉째 권이 나오면서, 또 이참에 열째 권이 나오면서, 자잘한 이야기를 퍽 길게 늘어뜨린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자잘한 이야기에서 싱그러운 이야기가 피어나고, 자잘하다는 이야기에서 웃음나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자잘하다고 얕보는 이야기에서 외려 눈물나는 이야기가 흐르며, 자잘하다고 지나치는 이야기에서 참으로 어여쁘구나 싶은 이야기를 깨닫습니다.

 자잘한 이야기이기에, 곧 작은 이야기이기에, 그러니까 흔하며 너른 이야기이기에 따로 글로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사진을 찍습니다. 거룩하거나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아닌 작은 이야기인 까닭에 글·그림·만화·사진이 빛납니다. 놀랍거나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아닌 수수한 이야기인 터라 글이든 그림이든 만화이든 사진이든 사랑스럽습니다.

- “너도 좀 먹어 봐.” “음, 음, 음. (부들부들부들) 하, 맛있다!” “거짓말, 부들부들 떨었잖아.” (77쪽)

 요츠바가 나이를 먹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간다 해서 더 재미나게 된다든지 한결 사랑스러이 새로워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째 권부터 열째 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샛별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재미나 보람이나 기쁨이나 웃음이나 눈물이 좀 고이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하루 스물네 시간만 하더라도 책 몇 권으로 써도 될 만큼 숱한 이야기감입니다.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에 이야기책 한 권씩 엮어 한 해에 삼백예순다섯 가지 이야기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크는 아이를 부대끼는 동안 날마다 새삼스러운 모습을 마주하고, 날마다 새삼스레 함께 크는 ‘어른인 내 모습’을 찾아봅니다.

 만화책 《요츠바랑!》은 어린이 요츠바뿐 아니라 요츠바를 둘러싼 어른과 동무들이 함께 크고 함께 어깨동무하며 함께 웃고 우는 이야기를 담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목에서 보자면, 권수가 늘수록 ‘이 만화에 무슨 이야기를 담으려 했는가’를 슬그머니 잊지 않느냐 싶습니다.

- “담보, 놀자! 저녁까지.” “어어, 뭐 하고 놀까?” “공원 가자!” (217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고픈 요츠바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며 곯아떨어져도 신나는 요츠바입니다. 어린이 요츠바는 마음껏 뛰놀아야 하고, 요츠바하고 동무하는 여러 아이들도 다 함께 뛰놀아야 즐겁습니다.

 어른들은 요츠바처럼 뛰어놀지 못합니다. 한창 뛰어놀다가도 요츠바한테 먹이고 어른 스스로 먹을 밥을 차려야 합니다. 빨래를 하고 집안을 쓸고 닦으며 옷을 마련해야 합니다. 살림돈을 벌고 살림살이를 여밉니다. 아이를 씻기고 어른도 씻어야 합니다. 밥을 먹었으니 똥오줌을 누어야 하고, 집식구나 동무나 피붙이들하고 얽힌 일, 이를테면 생일이든 돌잔치이든 환갑이든 혼례잔치이든 함께해야 합니다. 어른이 된 사람은 어린이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기만 하지 못합니다.

 어른이 되어 마냥 놀기만 할 수 없는 삶이 슬프지는 않습니다. 밥을 차리면서 밥을 하는 재미나 즐거움이나 보람을 맛봅니다. 차린 밥을 맛나게 먹는 아이나 집식구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습니다. 빨래를 하면서 집식구들 하루살이를 돌아봅니다. 빨래를 함께 개면서 집살림이나 집일을 함께 생각합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이고, 어른은 어른입니다. 어린이한테는 어린이 삶이 있고, 어른한테는 어른 삶이 있습니다. 서로 함께 부대끼거나 복닥이면서 좋은 이웃이자 동무이자 살붙이입니다.

- “거짓말쟁이 벌레가 속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데?” “저절로 거짓말을 해. 에헤. 그러니까 요츠바, 진짜는 착한 아이인데, 그 녀석이 멋대로. 맞아, 거짓말쟁이 벌레 때문에, 거짓말쟁이 벌레 때문입니다.” “자, 요츠바, 좀 나갈까.” “어디 가?” (151쪽)

 앞으로 《요츠바랑!》 열한째 권이 나온다면, 열째 권 흐름하고 이어질는지, 아니면 거듭나거나 새롭게 다시 선보일는지 궁금합니다. ‘티없는 웃음’이라는 이름만 내밀며 이 흐름을 이을는지, ‘티없는 웃음이 태어나는 삶’을 곱씹으면서 한결 깊거나 넓게 사랑을 담아낼는지 궁금합니다.

 꼭 열 권 스무 권 서른 권을 내야 좋거나 훌륭하거나 재미난 만화이지 않습니다. 네 권으로 마무리지은 《아즈망가 대왕》이 네 권으로 끝났기에 너무 아쉬울 수 없습니다. 네 권 아닌 다섯 권이나 여섯 권으로 마무리지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만화로 선보이며 나누려는 재미는 참말 작은 데에 있습니다. 만화로 함께하는 즐거움은 참으로 자잘한 곳에 있어요. 이 작은 곳을 사랑한 만화책 《요츠바랑!》이라면 첫마음을 곱게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 자잘한 구석을 아끼는 만화책 《요츠바랑!》이라면 ‘자잘한 구석 이야기’가 무엇이었던가 하고 가만히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 요츠바랑! 10 (아즈마 키요히코 글·그림,금정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1.3.25./48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