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사랑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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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사랑법으로
  • 정민나
  • 승인 2020.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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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 마을]
습작, 숙성시키기 - 조 수 현

 

습작, 숙성시키기

                                               조 수 현

 

새내기 글쟁이 봄날이 오니

조급한 생각이 몰려 온다

습작봉오리 터질랴 들여다 본다

조금씩 새어나오는 향기가

꽃이 된다니 꿀벌은 야들야들한

금낭화 주변을 돌며 기다린다

꽃봉오리도 숙성기가 있다

고개를 까웃 거리면서

보태기도 하고 빼기고 하고

수없이 날개를 파득거린다

오래 머문다고

다 제 향기가 되는 게 아니다

간도 보고 맛도 보며

밀당을 한다

숙성이 다 되면 그 향기에 군침이 돈다

저절로 벌어지는 꽃봉오리

황홀하여……

 

 

‘습작’에서 ‘습’(習)의 의미는 ‘익히다’, ‘되풀이하여 행하다’, ‘연습하다’, ‘배우다’, ‘닦다’, ‘숙달하다’, ‘손에 익다’, ‘물들다’, ‘ 옳다’와 같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누군가는 ‘습작’(習作)이란 한자의 생긴 모습을 두고 어린 새의 무수한 날개짓과 같은 형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린 새가 날기 위해서 수십 번 수백 번 날개짓을 하며 피나는 훈련을 했을 때 날아오를 수 있듯이 작가나 화가가 되려고 작가 지망생들이 시, 소설, 그림 따위를 힘을 다해 짓거나 그리는 연습을 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시를 쓴 시적 화자 역시 시인 초보생으로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쓰기 위해 수없이 숙고한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꿀벌의 행위와 같다. 봄날이 되어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꿀벌은 봉오리가 벌어지는 꽃 주위를 돌며 탐색을 한다. 꿀벌이 조급하게 꽃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습작봉오리가 터질 것 같은 기미가 오면 초보 시인 역시 마음이 바쁘다. 그 모습은 수없이 날개를 퍼득거리며 조마심을 내는 벌꿀과 흡사하다.

“조금씩 새어나오는 향기가 / 꽃이 된다니” 시인은 “야들야들한 금낭화”같은 자신이 쓰는 원고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꽃잎이 활짝 피는 그 순간을 벌이 기다리듯 시인 역시 마음에 드는 완성작을 위해 자신의 원고를 수없이 매만진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보태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수없이 상상의 날개를 퍼득거린다.

어떤 일에 심취하는 행위는 지극해서 그 대상과 이심전심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오래 머문다고 / 다 제 향기가 되는 게 아니” 듯 시인 역시 시를 쓰는 내내 연인과 사랑을 나누듯 계속해서 밀당을 해야 한다. 무조건 들이대는 사랑이 오히려 열려고 했던 꽃봉오리를 닫히게 할 수 있다.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고 중요한 포인트를 놓친다면 이 또한 사랑의 성사는 영영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꽃들이 제 계절에 피어오르지만 저절로 벌어지는 저 꽃봉오리는 사실 기적 같은 것이 아닐까? 바람과 햇볕과 습도가 적당하게 꽃을 에워쌀 때 꽃은 황홀하게 피어난다. 수없이 날개를 퍼득이며 꽃에 몰두하는 벌처럼 원고에 몰두하는 시인 역시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금낭화 곁을 맴도는 꿀벌을 보면서 어느 순간 벌과 일체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새내기 글쟁이는 글이 써지는 날이 봄날이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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