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부위통증 증후군 - 잊혀진 탄광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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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부위통증 증후군 - 잊혀진 탄광 노동자들
  • 안태엽
  • 승인 2020.10.2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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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며칠 전 나는 아내와 강릉을 거쳐 삼척에서 태백으로 가게 되었다. 삼척과 태백 사이에서 점심을 먹고자 음식점으로 갔다. 밥을 먹으며 주인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는데 강원랜드 얘기가 나오니까 억울하다는 듯이 그녀는 딸과 남편의 이야기를 했다.

이 지역은 60-70년도에 우리나라 경제 밑거름이 되었던 곳이다. 탄광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마을은 좁고 빈약하며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하여 늦게까지 일을 했다. 탄광 지하는 생사가 순식간에 갈리는 사투의 현장이다. 검은 땀과 검은 눈물을 흘리며 어둠에 갇힌 지하로 수천 미터를 내려가 다시 수천 미터를 수평으로 파가며 석탄을 채취하였다. 숨 쉬기조차 힘들고 허리도 펴지 못한 채 그들은 후덥지근한 습도를 참으며 하루 종일 일을 했다. 석탄가루가 자욱한 공기 속에서 집에서 기다릴 가족을 생각하며 일을 했다. 죽는 날까지 석탄가루가 자기 몸속에 축적되고 있음에도 일을 했다. 그들을 모자를 쓴 것 외에는 거의 벌거숭이였다.

 

 

남편은 그런 탄광에서 이십 년을 일했다. 그 후 그가 얻은 것은 ‘진폐증’이라는 병이었다. 가슴속을 긁어내며 목구멍을 쥐어짜는 기침을 했다. 통에 가래를 뱉으면 검은 것이 나왔다. “밤에 잠을 자다가 기침을 하면 둘 다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수없이 많다.”며 식당 주인은 이제 남편은 노인, 장애인, 빈곤층, 진폐 환자일 뿐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광산으로 몰려갔는데 정부나 회사는 변변한 안전 장비나 교육도 없이 산업전사라는 명예만 부여하고 일을 시켰다고 한다. 사연을 듣다 보니 진폐증은 시대가 낳은 질병으로 사회가 책임지고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아픈 것은 국가도 사회도 이들의 희생을 잊고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70년대와 달리 지금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섰다. 2015년 공기업인 강원랜드는 취업공고를 낸다. 이것을 본 지역민과 취업 준비생들은 ‘신의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당시 강원랜드는 정년과 복지, 월급과 대우가 보장되는 공기업이었다. 원래 지역민들을 우대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지역민들이 가장 많이 지원을 했다. 강릉, 삼척, 태백 등 지역민들과 탄광에서 일했던 자녀들은 계획을 세우고 입사를 하기 위해 정열을 쏟아부으며 열심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정작 결과는 안 좋았다. 입사 시험에 거의 다 떨어진 것이다. 2015년 공기업인 강원랜드는 채용비리 감사에 거렸는데 500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493명인 95%가 공직자의 청탁 비리로 합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강원랜드 측은 지역민에게는 5점의 가산 점을 주고 청탁자들에게는 22점이나 주었다. 이것은 지역 청년들에게 잔인한 사실이었다. ‘신의 직장’을 꿈꿔왔지만 결과는 탈락으로 이어졌고 청탁으로 합격한 자 들은 누군가의 마지막 희망을 빼앗은 냉혹한 짓을 한 것이다. 지역 권력의 먹이 사슬에 포획된 청년 일자리는 이 땅의 아들딸들과 형제자매들을 좌절시킨 권력 있는 공직자들이었다. 이들의 상처와 배신감은 고통과 통증을 수반했다.

복합부위통증 증후군이라는 병이 있다. 이병은 신경계 이상이 생겨 뇌에서 통증을 과도하게 인식하여 일어나는 질병이다. 살갗에 닺는 감촉은 모두 통증이 된다. 스치는 바람도 고통이다. 사소한 자극조차 통증으로 느끼는 병이며 삶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마치 손발이 잘려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 매일 반복되며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통증을 느끼는 병이다. 치통이 40, 출산은 70이라면, 환자는 이보다 높은 90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간다. 매 순간이 고통스러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나님께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을 하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 사정이 안 좋아져 회사에서 인원 감축의 시기가 되면 시름이 깊다. 일을 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들에게는 가족을 부양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은 무서운 형벌과도 같은 것이다. 국가나 사회가 이들을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이라는 ‘살아있는 시체’로 만들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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