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아닌 지금을 사는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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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아닌 지금을 사는 책방
  • 이수인
  • 승인 2020.11.0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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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30) 이수인 / 책방 '시방’ 책방지기

지난 3월에 시작한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연재가 10월부터 필진을 바꿔 새롭게 시작합니다. '시즌2' 연재에 참여한 필진은 부평구 부평동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김한솔이 대표, 동구 창영동 ‘책방마쉬’ 김미영 대표, 남동구 만수동 ‘책방시방’ 이수인 대표, 서구 가정동 ‘서점안착’ 김미정 대표, 미추홀구 주안동 ‘딴뚬꽌뚬’ 윤영식 대표 등 5분입니다.
 

책방 '시방'의 작은 데크. 새, 꽃잎,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기도 합니다.

아담하지만 아늑한 누구나의 공간, 동네 책방 시방

제가 동네 책방의 매력에 빠지게 된 풍경입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타나는 작은 규모의 책방. 책이 주가 되고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지만, 오히려 책과 거리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으며 새어 나오는 불빛과 정다운 온기가 골목을 따스하게 감싸주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곳.

평소 영화관이나 대형 공연장보다 배우들의 땀과 숨소리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소극장을 더욱 선호하는 편인데, 어쩌면 대형 서점과 동네 책방의 매력을 빗대어 설명할 수 있겠네요.

제가 출산 후 육아에 전념하던 시기, 전국에 동네 책방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막연히 책방에 대한 동경심만 키우던 중 2019년 가을, 아무런 계기도 없이 무작정 책방을 차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만수동 일대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살 때 이사 와 삼십 년 가까이 산 동네 만수2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만수시장 뒷골목에 ‘보물찾기’라는 글씨가 크게 적힌 간판이 걸려있던 자리에 책방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책방을 꾸리겠다는 다짐을 굳힌 후 만수동 일대를 돌아보다가 발견한 '보물찾기'. 지난 2019년 11월, 이 자리에 책방을 열었습니다.
책방을 꾸리겠다는 다짐을 굳힌 후 만수동 일대를 돌아보다가 발견한 '보물찾기'. 지난 2019년 11월, 이 자리에 책방을 열었습니다.

시방, 미래가 아닌 지금을 사는 책방

저의 주택청약을 해지하여 보증금을 마련하고, 남편의 1년 치 퇴직금을 앞당겨 받아 책과 물품을 채워 구색을 갖추어 간소하게 시작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을 부린 7평짜리 공간이에요. 제게는 낭만과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시방’은 시를 접하고 공유하는 공간적 의미와 함께 만수시장에 위치하여 ‘(시)장에 있는 책(방)’의 함축적 의미, 무엇보다 지금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해 원하는 삶을 영위하고 싶은 저의 가치관이 담긴 시방(時方-지금, 말하는 바로 이때) 등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습니다.

책 제목이 판매로 이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목에 이끌려 구매하고, 제목만 읽었을 뿐인데 이미 책 한 권을 독파한 듯한 기분, 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 이처럼 ‘시방’이라는 책방 명 때문인지 많은 분이 기억해주기 시작했어요

최근 동네 책방들이 다양한 콘셉트를 내세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시방은 콘셉트가 없어요. 굳이 꼽자면 ‘작은 책방’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동안 책방 콘셉트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 책방이 책이 주가 되면 되지 왜 부수의 콘셉트가 필요할까,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가 동경했던 책방들은 오로지 책이 전부였으니까요. 가끔은 콘셉트 없는 게 위축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시방을 방문해주는 손님들이 시, 엄마, 동네 사랑방 등등 다양한 콘셉트를 만들어주고 있어요. 어떠한 이야기를 쓰든 책과 사람, 공간이 매개가 되는 책방이고 싶어요.

매시 적당한 인기척과 적막함이 뒤섞인 오래된 골목. 오랜 풍경이 주는 정다운 정취와 더불어 석양을 머금은 순간의 책방은 가히 평온으로 물듭니다. 제가 책방과 만수시장 뒷골목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석양을 바라볼 때면 ‘지금,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매시 적당한 인기척과 적막함이 뒤섞인 오래된 골목. 오랜 풍경이 주는 정다운 정취와 더불어 석양을 머금은 순간의 책방은 가히 평온으로 물듭니다.

누구나의 공간을 지향하는 만수시장 뒷골목 작은 사랑방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를 전공한 문학도로서 글과 책이 늘 함께였어요. 20대 중반부터는 문화예술 기획을 업으로 삼고 오랫동안 밥벌이를 해왔습니다. 글과 책, 문화예술, 기획.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접목하여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해 사람들과 나눌 때면 ‘내가 책방을 꾸리길 잘했구나’라고 만족감을 느껴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하고 (재)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동네책방 문화사랑방’에 선정된 엄마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시 쓰는 엄마들의 모임, 시엄마’,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동네방네 아지트 지원사업’에 선정된 독서와 독후 색연필 드로잉을 진행하는 ‘일상의 작은 기적:일기’를 추진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유용한 여가를 제공하고 지역 사회에 기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책방을 열고 난 후 이 공간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무료로 대관해드리기도 했는데 마침 남동구 평생학습관에서 동네 학습충전소를 모집하길래 지원하였는데 선정됐어요. 무료로 교육 장소를 대관해주는 사업인데 이왕이면 공간의 쓸모를 가치 있게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취지에 부합한 거죠.

물질적 이익보다는 마음이 풍족해지는 모두의 공간을 지향합니다. 책방도 엄연히 장사하는 가게인데 자선사업 하냐는 우려 섞인 핀잔도 종종 듣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간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또한, 올 하반기에 만수시장 뒷골목 활성화를 위해 조성한 ‘만수상회 청춘골목’ 상인회와 함께 위축된 만수시장에 연령층을 불문하고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흥미 거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콘텐츠 개발에 일조하려고 해요. 주변 상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상생을 도모하기 시작한 후 실제로 만수시장 뒷골목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 이 또한 보람을 느낍니다.

아담하지만 아늑하고, 작지만 실속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7평의 동네책방 '시방' ⓒ그리횬 일러스트레이터 

올해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버텨온 결과, 이 정도면 작지만 실속있는 공간이지 않을까 만족하기도 합니다.

음악, 향기, 날씨, 사람 등 사소한 요소들이 공간과 상황을 기억하는 장치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시방은 인생 책을 만난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시방, 지금을 삽니다. 막연하게 느꼈던 꿈이 실현된 소중한 공간. 이제 오래 버티겠다는 다짐보다 책방을 꾸려나가는 동안 진정과 진심으로 순간을 대하자는 바람이 커졌습니다.

첫 번째 기사는 아무래도 책방과 저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로 채워졌습니다. 방문하는 공간과 주인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방문하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다음 편에는 책방에서 펼쳐진 이야기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방은 주로 인문학, 문학(시, 소설, 산문), 그림책, 독립출판물을 판매하고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방은 주로 인문학, 문학(시, 소설, 산문), 그림책, 독립출판물을 판매하고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구상 시인의 시 '꽃자리'에 등장하는 '내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 구절처럼, 허름하고 작은 공간이지만 바로 이 자리가 저에게는 시방 꽃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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