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아이, 목숨만 건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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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아이, 목숨만 건진 사람들
  • 서예림 기자
  • 승인 2020.11.03 17: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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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이 함께 하는 온라인 사진전
'인천 사람들이 겪은 6.25전쟁' (3)폐허가 된 월미도와 연합군
폐허가 된 건물 속 주민들. 상처를 입은 어린이를 업고 있는 할머니와 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부서진 집안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 문화유산센터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10월20일부터 매주 화요일 인천상륙작전과 1·4후퇴 당시 인천의 모습을 담은 사이버 사진전 <인천 사람들이 겪은 6·25전쟁>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사진전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수집한 80장에 달하는 인천의 사진자료들을 분석한 것으로 이 사진자료들이 무엇보다 6·25전쟁 당시 장면을 최초로 공개하는 것이어서 더 주목된다.

3일 공개하는 사진들은 피난갔다 간신히 월미도로 돌아왔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을 보며 배회하는 주민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상륙작전이 남긴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승리의 영광보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사람들이 뻥 뚫린 가슴을 안은 채 자기 집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포성과 폭격이 멈춘 뒤 인천에는 상륙작전 승리에 취한 연합군과 폭격기에 파괴된 집을 보며 망연자실한 사람들이 함께 등장한다. 장비도 없이 힘겹게 복구에 나서야 하는 주민들의 표정이 어둡다. 

공장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 '인천기계공업주식회사'라는 간판이 걸린 공장 건물 앞에서 홀로 남아 울고 있는 아이모습

 

폐허가 된 사동 일대를 걷고있는 시민들. 인천우체국에서 인천여상 방향 사동 일대를 걷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포격이 집중되었던 사동은 폐허가 되어 온전히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었다.

 

건물잔해를 수거하는 시민.

 

무너진 벽체에서 쓸 만한 벽돌을 골라내고 있는 모습.

 

먼 곳을 바라보는 모자. 벽체만 남은 건물과 쌓여있는 잔해 옆에서 아이를 업은 엄마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뒤편 부서진 건물 앞에서 있는 사람들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있다.

 

인천역 뒤쪽 도로(대한제분-해안동 간선도로). 상륙작전 직후 인천역 뒤쪽 대한제분에서 해안동으로 이어지던 도로의 모습이다. 멀리 해망대(바다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전망대) 아래로 일제강점기 해사출장소로 쓰이던 러시아영사관 건물이 보이며 도로 좌측으로 미군 탱크가 서있다.

 

선린동 언덕을 줄지어 가는 시민들. 인천역 맞은편 선린동 언덕을 줄지어 넘어가는 시민들의 모습. 시민들의 행렬 곳곳에 군인들이 서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 우상단 화교촌에는 아직 포연이 피어오르고 있으며, 거리 곳곳에 항구의원, 백화양제점(여자의 양장 옷을 짓고 파는 가게), 평양여관 등의 간판이 보인다.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맥아더 장군. 미 해군 전함 메킨리 호에서 인천 해안 폭격 광경을 바라보며, 앉아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맥아더 장군과 그의 참모들

 

인천시청(현재 중구청)에서 거행된 인천수복기념식.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이 인천시청(현재 중구청)에서 인천수복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벽면에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인천 시내를 행진하는 연합군. 인천 숭의동 일대 도로를 행진하고 있는 미군의 모습. 행진 대열 옆으로 동네 아이들이 구경하고 있다.

 

인천 시가(현재 중앙동 4가)를 행진하고 있는 연합군. 1950년 9월16일 인천 시가를 행진하고 있는 미군 제1해병사단 제5해병연대 병사들의 모습. 지금의 중앙동 4가 일대이다. 사진 좌측 옥상에 인천신문사 간판이 걸린 3층짜리 건물은 지금 노래방으로 쓰이고있다. 그 옆에 위치한 삼공백화점은 현재 명진일식 건물이다.

 

인천 북성동 해안매립지 레드비치에 정박 중인 미군 석유보급선. 인천 북성동 해안매립지 레드비치에 정박 중인 미군 석유보급선. 선박에서 석유가 실린 드럼통을 매립지에 마련된 부두에 쌓고있다. 멀리 월미도 끝자락에 조탕(바닷물을 데운 공동목욕탕)과 용궁각(식당)의 모습이 보인다. 이 건물들은 포격에서도 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부상당한 미 해병대 상병 도널드 윌러드를 후송 중인 미 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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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길 2020-11-05 14:03:02
625의 아픈 상처를 기억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은데...
한서린 남북의 아픔을 북침이라는 유언비어로 포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런 사진전으로 아픔을 공유하는 기회가 되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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