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감인 은행나무와 덧없이 사라져간 갯벌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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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감인 은행나무와 덧없이 사라져간 갯벌의 차이
  • 지영일
  • 승인 2020.11.06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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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지영일 / 가톨릭환경연대 대외협력위원장
장수동 은행나무의 가을

웅장한 크기와 수려한 자태, 계절에 따라 드러내는 곱디 고운 빛깔이 어느 때곤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잡아 끈다. 바로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땅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은행나무 이야기다. 최근에 그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것이 확실하다는 소식을 접했다. 800살짜리 은행나무를 천연기념물에 지정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직접 나설 것이라 하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장수동 은행나무는 시 기념물 제12호로 높이 28m, 둘레 9m 규모의 수령 800년이 넘은 거목이다. 천연기념물 소식에 인천시나 남동구로서는 지역의 명예는 물론 관리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향후 은행나무 주변 불법 건축물이라든가 노점상 등을 정비하고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면서 상권 활성화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가 보다.

샛노란 가을빛을 한창 뿜고 있을 장수동 은행나무의 숭고한 생명력은 그냥 나무로 있든, 천연기념물로 꼬리표가 붙든 상관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숭앙의 대상이 될 터이다. 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를 그리도 귀히 여기는 우리,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 부여와 대접을 보니 달리 떠오르는 생각도 있다. 풍전등화의 운명을 맞은 인천의 갯벌 때문이다.

송도갯벌은 2014년 국제협약에 의해 보전을 약속한 람사르습지이자 국제기구인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에서 2019년 홍콩 마이포습지와 자매결연 보호습지(Flyway Network Site, FNS)로 지정한 곳이다. 국토부가 현재 추진하는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안산~인천 구간 노선안은 그러한 송도갯벌을 관통한다.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멸종위기 생물들, 세계적인 희귀 조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서식처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며 서식지와 개체군 감소가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우리가 관심을 갖고 귀히 여기며 보호해야할 생명인데 말이다.

갯벌에 기대 생명을 이어가는 절지동물로 흰발농게가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분류된 흰발농게. 짝짓기 철, 수컷이 자신의 굴 입구에서 희고 큰 집게발을 흔들며 암컷을 유혹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이들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인천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영종도 운북·중산동 일대 갯벌을 매립해(영종2지구 사업) 산업단지와 공동주택용지, 상업시설용지, 친수공간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멸종위기, 생물다양성, 천혜의 자원, 생태환경보호라는 말이 초라할 지경이다.

인천은 이미 여의도 면적의 수십 배에 달하는 갯벌을 매립했다. 그리고 대부분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우리가 도시로 알고 있는 지역, 살고 있는 자리가 그 자리다. 입버릇처럼 환경보호를 외치고 친환경개발과 지속가능성을 약속하지만 번번이 맹탕이다. 결국은 누군가를 위한 일방적인 이해관계 관철이자 이익이고 ‘지금까지처럼’의 반복일 뿐이다. 매우 쓸쓸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곧 천연기념물로 ‘받들어질’ 은행나무와 그간 덧없이 스러져간 갯벌의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히 모르겠다. 그것이 대상의 차이, 행정체계의 구분, 이해득실, 쉽고 어려움에서 비롯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손을 쓰듯 갯벌을 갯벌로 남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멸종위기라는데, 생태환경적 가치가 높다는데도 갯벌에 깃든 다양한 생물을 지켜주지 못하는가?

두 대상 사이를 오가며 단상에 빠지고 보니 우리 스스로에게 이른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기본적인 안전과 행복한 삶을 항상 잘 지켜낼 수 있을까? 하나의 생명체로 수백 년을 이어가지는 못하지만 자손과 자손을 거처 800년, 8,000년과 그 이상을 인간으로 존재할 거라 확신하는가? 당장에도 생명들이 빠른 속도로 그 빛을 잃어가는 지구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우리의 건강과 성공, 행복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이제부터는 갯벌과 갯벌에 의지한 목숨들의 평안도 함께 기도해야 하겠다.

가을빛에 푹신 물든, 그리고 곧 그마저 미련 없이 털어낸 나목으로 남을 은행나무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희가 나를 무엇으로 대하든 나는 늘 나로서 오늘처럼 숱한 세월을 살아왔다. 그처럼 다른 귀한 생명들도 그 자체로 영겁을 이어가게 해다오.”

 

영종2지구 갯벌
영종2지구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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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2020-11-08 17:48:19
그러게 말입니다 . 은행나무 한그루보다 갯벌이 몇반배 더 지켜야할 가치일텐데 말이죠.
그리고 지금까지 인천이 날려버린 갯벌은 얼마나 될까요?
없애버린 갯벌만 그대로 있어도 엄청난 자연자원이며 관광자원이며 다양한 자연체험현장이 되어 줄텐데 말입니다. 갯벌을 없앤 그자리에는 시멘트덩이가 덩덩이 서있어서 더욱 슬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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