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적과 독립서점 - 쌓여가는 사연들, 체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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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적과 독립서점 - 쌓여가는 사연들, 체험들
  • 김미정
  • 승인 2020.12.04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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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34) 독립출판물이 서점에 안착하기까지 - 김미정 / '서점안착' 책방지기

지난 3월에 시작한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연재가 10월부터 필진을 바꿔 새롭게 시작합니다. '시즌2' 연재에 참여한 필진은 부평구 부평동 ‘출판스튜디오 <쓰는하루>’ 김한솔이 대표, 동구 창영동 ‘책방마쉬’ 김미영 대표, 남동구 만수동 ‘책방시방’ 이수인 대표, 서구 가정동 ‘서점안착’ 김미정 대표, 미추홀구 주안동 ‘딴뚬꽌뚬’ 윤영식 대표 등 5분입니다.

 

12시,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와 제일 먼저 음악을 틀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호미(반려견)와 길냥이들의 밥을 챙기고 커피 한 잔 챙겨 자리에 앉으면 40분 정도는 가뿐하게 지나가 있어요.

본격적으로 서점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제부터 할 일은 메일을 확인하는 거예요. 재고 알림과 독립출판 제작자(작가)들로부터 온 책 소개 메일을 확인해요. 서점에 책을 들여오는 건 도매상을 통해 사는 것과 출판사와 직거래로 책을 입고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어요.

도매상을 통해 책을 들이는 방법은 물건을 사는 것처럼 간단해요. 책을 고르고 주문하면 끝이죠. 작은 동네 책방이 도매상을 통하지 않고 책을 입고하려면 직접 제작자와 소통해야 하는데요, 지금은 책 소개 메일이 여러 개씩 오는 날도 있지만 처음에는 물론 그렇지 않았죠. 오늘은 독립출판물이 서점에 안착하게 되는 이야기를 해볼게요.

 

 

서점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건 책을 입고하는 일이었어요. 대부분 책 뒤편에 메일주소가 있지만, 아직 내 손에 없는 책들을 입고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열심히 훑어서 연락처를 알아내 독립출판 제작자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야 했어요. 그리고는 새로 나온 책을 입고하기 위해 공사가 막 끝난 공간의 사진이 담긴 엽서 크기의 종이를 들고 독립출판 북페어들을 찾아다녔어요. 뭐라도 있어야 저를 믿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인사를 하고 신규 서점에 입고 예정이 있다면 메일 하나 부탁한다며 종이 한 장 건네는 데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죠. 뭔가 부담스러운 느낌을 줄 것 같았어요. 아직 실체가 없는 서점이라 책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지금도 책을 바로 보내준 제작자분들께 감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입고하고 싶은 책을 찾아 제작자에게 메일을 보낼 때 조금 머뭇거려요.

어려웠던 책 입고가 서점 문을 열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조금 수월해졌어요. 책 소개와 함께 입고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한 거죠. 제작자 측에서 서점에 책을 넣고 싶다며 책 내용과 사진을 첨부한 메일을 보내오는데 직접 찾아다니지 않아도 책 소개를 보내주니 너무 좋더라고요.

처음 일 년 동안은 첫 번째 책을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책을 많이 입고 했어요. 나도 처음이고 시작이니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200여 종의 책으로 시작한 서점에 지금은 600종 정도의 책이 있는데, 이 중 500종 정도가 독립출판물이에요. 독립서적의 경우 처음 입고하는 부수가 최소 5부 정도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책방 안에 생각보다 많은 책이 있는 거죠. 하지만, 놀랍게도 아직 책이 많이 부족해 보여요. 다른 서점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이 있는 걸까요?

 

 

책 입고 관련 메일 확인으로 시작한 하루 중 어떤 날은 독립출판을 위한 클래스로 마무리돼요. 이 과정은 책의 기획부터 글쓰기, 책 디자인, 인쇄, 유통에 대한 가이드를 따라가 보는 거예요. 20~30대 젊음의 문화로 생각하기 쉬운 독립출판이지만, 서점안착에서는 40대가 주를 이루고 있어요.

이사 이야기, 초보운전 연대기, 학교 내부고발, 숲속의 도토리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가 오가는데, 모두의 글이나 그림이 책으로 완성되지는 않아도 그 과정 자체가 빛이 나는 것 같아요. 글쓰기는 언제나 쉽지 않기에 자신의 한계를 뚫어나가며 즐기는 모습도 보여요. 처음으로 그래픽 프로그램을 배우고 직접 북디자인까지 한 자신의 책을 손에 든 작가의 모습을 보면 “역시 서점 하길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처럼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모두 다 이미 작가들이에요. 많은 독립서적들이 이런 클래스를 통해 제작되고 세상에 나와 독립서점에서 독자들을 기다려요. 제작자들은 각자의 SNS 등을 통해 책을 홍보하고, 입소문이 나기를 기다리죠. 어떤 사람은 출판사에서 책 내고 등단하기 어려우니 독립출판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독립출판만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도 많고, 출판 제의가 들어와도 거절하는 작가들도 있어요.

 

 

일반 단행본처럼 독립서적의 종류와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요.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책이 있냐는 문의를 받기도 하고 입고 예정은 없는지, 언제 들여올 건지, 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꼼꼼하게 하는 분들도 있어요. 독립출판계의 유명한 작가들은 아주 유명한 몇몇 서점을 제외하고 입고 문의를 하지 않기도 해요. 그런 작가들의 신작 소식이 전해지면 저희처럼 문 연 지 오래되지 않은 서점들은 반대로 작가에게 입고 요청 연락을 하죠.

가끔 신규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제작자들도 있어요. 서울의 유명한 서점에만 책을 넣어도 충분한 스타작가들도 있고요. 그리고 불편한 이야기지만 모르는 서점에 책을 입고했다가 갑자기 서점이 문을 닫아 책도, 책값도 떼인 경험이 있어 그렇기도 한 거 같아요.

 

 

책이 보이니 동네 책방 구경이나 해보자 하고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칭찬을 해줘요. “너무 예쁘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 많다.” “꼭 다시 오겠다.” 등등. 대부분의 분들이 다시 오지 않아 슬프지만 그래도 처음 접한 독립서적이 그 손님의 마음에 들기를 꼭 기도하며 인사를 합니다.

반면에 독립서점임을 알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눈빛은 달라요. 대게 여러 독립서점을 다녀본 분들이 이에요. 집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좋아하는 스타일의 서점이 생겼다니 반가워 찾아온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의 기대치에 다다르고 싶은 마음이 커요. 꼼꼼히 서가를 둘러본 독립서점 애정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책들 사이에서도 꼭 한 권은 골라내 가고, 다시 와서 또 한 권을 발굴해 갑니다. 그런 손님들을 보고 있으면 좋은 독립출판물들을 꾸준히 입고하고 싶은 마음이 어찌 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바로 지금, 더 열심히 책을 찾겠다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20여 년 전 이 길을 열어준 선구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며 두 번째 이야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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