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자들의 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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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자들의 양태
  • 김선
  • 승인 2020.12.1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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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㉛양로원 원장과 문지기의 증언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Il a hésité, puis il a dit que c’était lui qui m’avait offert le café au lait.

문지기는 그때 약간의 놀라움과 일종의 감사의 뜻을 보이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검사는 절반쯤 뫼르소에게 등을 돌리고 그를 보지 않은 채 재판장이 허락한다면 그가 아랍인을 죽일 생각으로 혼자서 샘으로 되돌아갔는지 어떤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검사는 이미 자신의 결정된 생각으로 질문을 하고 있다. 아니라고 뫼르소는 말했다. 무기는 왜 가지고 있었으며 바로 그 장소로 되돌아간 이유가 무엇이지 묻자 뫼르소는 우연이었다고 대답했다. 검사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다. 그러자 검사는 안 좋은 어조로 질문을 그만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는 모든 것이 좀 불확실했다. 적어도 뫼르소에게는 그랬다. 우연한 살인에 우연을 제거해야 사건은 확실해 진다. 잠시 의논을 하고 나서 재판장은 폐정을 선언하고 오후에는 증인 심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뫼르소는 생각을 해 볼 겨를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려 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는 것인지... 끌려 나와서 호송차에 실려 형무소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기위해 형무소로 가는 시간이 그에게는 겨를이 될 것이다. 매우 짧은 시간 피곤함을 겨우 느낄 만한 시간이 지나자 뫼르소는 다시 불려 나갔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다. 뫼르소는 같은 방 안에 같은 얼굴들 앞에 앉게 되었다. 모든 것이 같지만 같은 것을 바라보는 뫼르소의 마음은 같지 않은 것 같다. 더위가 훨씬 더 심해졌고 마치 기적이나 일어난 듯 모든 배심원들, 검사, 변호사, 그리고 몇몇 신문기자들까지도 밀짚 부채를 구해 들고 있었다. 소품이 달라진 상황이 그의 시선에 들어 온 것이다. 젊은 기자와 자그마한 그 여자도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유독 시선이 머무는 대상들이다. 그들은 부채질을 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계속 뫼르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뫼르소도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뫼르소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양로원 원장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장소와 자신에 대한 의식을 얼마만큼 회복할 수 있었다. 의식이 혼란한 상황에 놓인 뫼르소는 정신적으로 무척 지쳤을 것이다. 엄마가 뫼르소에 대해서 불평을 하더냐는 질문에 원장은 그렇다고 대답하며 그러나 근친들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재원자들이 지닌 이상한 버릇 같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장의 대답에 따라 듣는 이들의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양로원에 넣은 것에 대해 엄마가 뫼르소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더냐고 재판장이 따져 묻자 원장은 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불안해 할 대답이다.

  또 다른 질문을 받자 그는 장례식 날 담담한 뫼르소를 보고 놀랬다고 대답했다. 담담함은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일 수 있다. 담담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고 물으니까 원장은 구두코를 내려다보더니 뫼르소가 엄마를 보려 하지 않았고 한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무덤 앞에서 묵도를 하지 않고 곧 물러났다고 말했다. 원장의 대답은 담담함이 모두들에게 의아함 또는 악의 모습으로까지 해석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를 놀라게 한 일이 또 하나 있다고 했다. 장의사의 일꾼 한 사람으로부터 뫼르소가 엄마의 나이를 모르더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엄마의 나이는 자식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라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다. 증언자의 증언은 누군가를 죄인으로 규정하게 할 상황적 근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이 뫼르소의 법정 안에서는 평범한 인간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상황들로 보여지는 느낌이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홀로코스트 기념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재판장이 원장에게 여태까지 한 말이 확실히 뫼르소에 관한 것임이 틀림없느냐고 물었다. 뫼르소가 확실히 이상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적 질문처럼 느껴진다. 원장이 그 질문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자 재판장은 법률상 하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재판장이 검사에게 증인에 대한 질문이 없느냐고 묻자 검사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외쳤다. 더 이상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원장의 답변은 뫼르소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그 목소리가 하도 요란하고 뫼르소에게 향한 눈초리가 하도 의기양양한 것이어서 멍청하게도 뫼르소는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검사의 태도에 뫼르소도 인간인지라 뭔지 모를 억울함과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을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미워하는가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배심원 측과 뫼르소의 변호사에게 질문이 없는가 묻고 나서 재판장은 문지기의 진술을 들었다. 그에게도 다른 모든 증인들이나 마찬가지로 같은 격식의 절차가 되풀이되었다. 자리에 나와 서며 문지기는 뫼르소를 바라보고 눈길을 돌렸다. 법정에서의 어색한 시선은 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는 질문에 대답했다. 뫼르소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 담배를 피웠다는 것, 잠을 자고 밀크 커피를 마셨다는 것을 말했다. 그때 뫼르소는 무엇인가 방청석 전체를 격앙시키는 것을 느끼고 처음으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죄인이라는 생각이 없었던 그에게 증인들의 증언은 그를 죄인임을 확인시켜 주는 절차였던 것인가?

재판장은 문지기에게 밀크 커피 이야기와 담배 이야기를 한 번 더 반복하게 했다. 사건과 상황 설명 간의 어색함을 통해 진실은 재정의 될 수 있다. 검사는 조소의 빛이 담긴 눈으로 뫼르소를 빤히 바라보았다. 죄인을 쳐다보는 눈빛이다. 그때 뫼르소의 변호사가 문지기에게 그도 뫼르소와 함께 담배를 피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뫼르소의 변호사이긴 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듣자 검사는 벌떡 일어서더니 누가 죄인이며 증언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기 위해 증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며 아무튼 증언이 명명백백한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외쳤다. 검사의 외침은 법정 안을 주도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재판장은 질문에 대답하라고 문지기에게 말했다. 영감은 당황한 빛으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은 알지만 뫼르소가 권한 담배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황하고 있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끝으로 뫼르소에게 덧붙여 할 말이 없느냐고 묻기에 그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증인의 말이 옳다고 말하며 자신이 그에게 담배를 권한 것은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문지기의 당황스러움을 알아차리고 뫼르소는 문지기의 마음을 껴 앉는다. 문지기는 그때 약간의 놀라움과 일종의 감사의 뜻을 보이는 눈길로 뫼르소를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이더니 그는 밀크 커피를 권한 것은 자기라고 말했다. 이 둘의 시선은 법정 안에서 처음으로 따듯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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