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답게 돌보는 말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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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게 돌보는 말 한 마디
  • 최종규
  • 승인 2011.05.19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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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바버러 쿠니, 《미스 럼피우스》

 아이와 그림책을 함께 읽기 앞서 어버이 스스로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좋아할 만한 그림책이 되지 않는다면 아이한테 보여줄 만한 그림책이 되지 않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이럭저럭 나쁘지 않다 싶은 그림책이라고 여긴다면, 이 그림책은 아이한테도 이럭저럭 나쁘지 않다 싶은 그림책이 돼요. 어버이부터 그닥 재미나지 않다고 여기는 그림책 가운데 아이가 재미나다 여길 만한 그림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버이가 재미나다 여기는 그림책 가운데 아이가 따분하다 여길 만한 그림책도 있겠지요.

 아이한테만 읽힐 그림책이란 없습니다. 아이만 재미나게 보아도 될 그림책이란 없습니다. 교육 효과가 높다는 그림책이란 없습니다. 지식을 쌓아 준다는 그림책이란 없습니다.

 어떠한 그림책이건 아이한테 삶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삶이 되든 궂은 삶이 되든, 아이한테 삶으로 스며드는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어른이 펼치거나 집어들면 어른한테 삶으로 스며듭니다. 아이도 어른도 삶으로 스며들도록 받아들이는 그림책입니다. 지식으로 삼는다거나 교훈으로 여긴다거나 정보로 살피는 그림책이란 없습니다.

 곰곰이 따질 수 있다면, 아이한테 영어 그림책을 읽히는 일은 한국사람한테 몹시 두렵습니다. 중국사람이 중국 아이한테 영어 그림책이나 한글 그림책을 읽힐까요. 일본사람이 일본 아이한테 영어 그림책이나 한자 그림책을 읽힐까요.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힐 때에는 그림책에 담긴 줄거리와 그림에다가 말을 함께 가르치는 셈입니다. 아이와 어른은 그림책 줄거리를 살피고, 그림책 그림결에 익숙해지며, 그림책 말마디에 혀가 맞추어집니다.

 나는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어 줄 때에 그림책에 적힌 그대로 읽지 않습니다. 언제나 글을 고쳐서 읽습니다. “머나먼 세계로 갈 거예요”는 “머나먼 나라로 가겠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대답해요”는 “말해요”나 “이야기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고쳐서 읽습니다. “해낸 거예요”는 “해냈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학교 근처에도 뿌렸어요”는 “학교 옆에도 뿌렸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우리 집 정원”은 “우리 집 꽃밭”으로 고쳐서 읽습니다. “허리가 다시 쑤시기 시작했고”는 “허리가 다시 쑤셨고”로 고쳐서 읽습니다. “천국의 새”는 “하늘나라 새”로 고쳐서 읽습니다. “피곤해 보이는군요”는 “힘들어 보이는군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한 어촌의 촌장”은 “바닷마을 지기”로 고쳐서 읽습니다. “재스민 향기”는 “재스민 내음”으로 고쳐서 읽습니다. “일을 했던 거예요”는 “일을 했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는 “아침에 일어나 손(과 낯)을 씻고”로 고쳐서 읽습니다. “하늘 색깔을 칠하기도”는 “하늘 빛깔을 그리기도”로 고쳐서 읽습니다. “빨간 꽃들이 피어 있지요”는 “빨간 꽃들이 피었지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현관 계단”은 “문간 계단”으로 고쳐서 읽습니다. “빙 둘러 있는 바위”는 “빙 두른 바위”로 고쳐서 읽습니다.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를 함께 읽으면서, 이밖에도 곳곳을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다듬으면서 읽습니다. 네 살 아이가 네 살부터 익숙해질까 두려운 말마디이기 때문에 두 줄을 죽죽 긋고는 새 말을 적어 넣습니다. 텃밭에 씨앗을 심을 때에 씨앗을 땅에 뿌리고는 호미질을 하며 흙을 팔 수 없습니다. 골을 만들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씨를 뿌린 다음 덮어야 합니다. 골은 알맞게 내야 하고 구멍은 알맞게 파야 하며 흙은 알맞게 덮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일 때에 뜨거운 밥이나 국을 훌훌 삼키라 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며 딱딱한 찬거리를 자근자근 씹으라 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며 수은이나 포르말린을 차리는 어버이란 없겠지요. 엠에스지뿐 아니라 어떠한 화학조합물이 깃들었는가를 살펴, 이러한 화학조합물이 없는 찬거리로 밥상을 마련해야 합니다. 먹을거리가 내 몸을 살찌운다면, 아이와 읽는 그림책은 아이와 어버이 마음을 살찌웁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책은 마음을 나란히 살찌우는 말로 읽으며 받아들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그림책에 ‘바이바이’나 ‘안녕’이라 나온대서 이대로 읽으면 아이는 ‘바이바이’나 ‘안녕’이라는 말을 익힙니다. 그림책에 ‘잘 가’라 나오기에 이대로 읽으면 아이는 ‘잘 가’라는 말을 익힙니다.

 말은 지식이 아닌 삶입니다. 아이가 살아가며 생각하는 모든 꿈과 보람과 땀이 깃드는 말입니다. 아이하고 ‘밥을 먹’지 아이하고 ‘식사할’ 수 없어요. 아이하고 ‘책읽기’를 하지 아이하고 ‘독서’를 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영어 그림책을 읽힐 수 없습니다. 아이가 나중에 스스로 영어를 배우고 싶을 때라든지, 아이가 참말 영어를 배워 ‘영어로 된 문학과 예술과 사회와 역사’를 알고 싶다 할 때에 비로소 영어 그림책을 읽도록 할 노릇입니다. 아이가 참말 숱한 지식을 배워서 온누리 수많은 사람들 삶자락을 헤아리고 싶다 할 때에 지식 그림책을 읽도록 할 노릇입니다.

.. 저녁이면 앨리스는 할아버지 무릎에 올라앉아서 머나먼 세상 이야기를 들었어요. 할아버지 이야기가 끝나면 앨리스는 “나도 어른이 되면 아주 먼 곳에 가 볼 거예요. 할머니가 되면 바닷가에 와서 살 거고요.” 했대요. 할아버지는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야, 얘야. 그런데 네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구나.” 했대요. 앨리스는 “그게 뭔데요?” 하고 물었지요. 할아버지는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 했어요. 앨리스는 “알았어요.” 하고 대답했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대요 ..  (9쪽)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는 ‘럼피우스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시집을 안 가고 혼자 살아오셨기 때문에 럼피우스 할머니한테 ‘미스’라고 붙였구나 싶은데, 영어를 쓰는 나라이니 ‘미스 럼피우스’이지, 한국사람한테는 한국말로 ‘럼피우스 할머니’라고 해야 올바릅니다. 어릴 때에는 ‘럼피우스 어린이’이고, 스무 살을 넘길 무렵에는 ‘럼피우스 씨’입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씨’예요.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럼피우스 아주머니’라 할 만합니다.

 시집을 안 간 여자한테 ‘아주머니’라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장가를 안 간 남자한테는 ‘아저씨’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부터 이와 같이 말을 했다는데,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짝을 이루는 낱말인 줄 헤아린다면, ‘아저씨’는 장가 안 간 남자한테도 일컫는 이름이고, ‘아주머니’는 시집을 안 간 여자한테는 일컬을 수 없다면 어딘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가씨와 할머니 사이 여자’는 무어라 일컬어야 할는지요.

 《미스 럼피우스》에서는 ‘미스 럼피우스’와 ‘럼피우스 부인’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한자말 ‘夫人’을 쓰는데, ‘부인’이라는 한자말 또한 “시집을 간 다른 집 여자를 일컫는 이름”일 뿐입니다. 이러한 말뜻을 헤아린다면 ‘럼피우스 부인’이라는 이름 또한 잘못 쓰는 말마디예요. 럼피우스 씨는 시집을 안 갔으니까 ‘부인’이라 일컬을 수 없거든요.

 나이 흐름을 살펴, 한창 젊은 나이인 럼피우스한테는 ‘럼피우스 씨’라 하고, 나이가 들었을 때에는 ‘럼피우스 아주머니’라 하며, 퍽 늙었을 때부터는 ‘럼피우스 할머니’라고 해야 올바릅니다.

.. 우리 고모할머니 미스 앨리스 럼피우스는 만년설이 덮여 있는 높은 산봉우리들도 올랐고, 정글을 뚫고 지나기도 했고,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어요. 사자가 노는 것도 보았고, 캥거루가 뛰어다니는 것도 보았고요. 그리고 어디를 가든, 결코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을 사귀었대요 ..  (16쪽)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앞서 어머니가 아이하고 나란히 누워서 《미스 럼피우스》를 읽습니다. 어머니는 책에 적힌 대로 읽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읽어 주면 안 되겠다’고 느껴 책에 적힌 글줄을 모두 뜯어고칩니다(이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이한테 읽어 주기 앞서 그림책 글을 다 고쳐 놓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도 아이라 하겠으나, 어머니도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저마다 옳고 바르게 살아가면서 옳고 바르게 생각하도록 이끌 옳고 바른 말에 익숙해야 아름다울 테니까요.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가 이냥저냥 한두 번 슥 훑고 지나칠 만한 책이라면 구태여 글줄을 뜯어고칠 까닭이 없습니다.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를 한두 번 얼추 훑고는 책꽂이 아무 데나 꽂고 두 번 다시 꺼낼 일이 없다면 애써 글줄을 뜯어고치지 않아도 됩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열 번 스무 번 거듭 읽으며 찬찬히 새길 만하다고 느낀다면 글줄을 낱낱이 짚으면서 찬찬히 가다듬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린 럼피우스한테 할아버지는 꼭 한 가지 꿈을 들려주었거든요. “온누리를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해 다오.” 하고. 할머니 럼피우스가 된 뒤에 어린 아이들을 둘레에 앉히고는 “아이들아, 너희들은 앞으로 온누리를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다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운 삶을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말을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사람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고 싶기에, 아름다운 말로 아름다운 넋을 일구고 싶습니다.

.. 미스 럼피우스는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어. 난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할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해.” 했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미스 럼피우스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세상은 벌써 아주 멋진걸.” ..  (18쪽)

 아이가 어머니 몸에서 천천히 자라는 동안, 아이가 어머니 몸에서 바깥 누리로 나온 뒤, 아이가 무럭무럭 크면서 씩씩하게 뛰노는 요즈음, 아이한테 바라거나 들려주는 이야기는 꼭 하나입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다오.

 착한 사람으로 살고, 참다운 사람으로 살며, 고운 사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착한 마음과 참다운 마음과 고운 마음을 건사하기를 바랍니다. 착하게 살면서 가난할 수 있고 가멸찰 수 있습니다. 참다이 살면서 수수할 수 있고 이름을 드날릴 수 있습니다. 곱게 살면서 조용할 수 있고 떵떵거릴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건 대수로울 수 없습니다. 어떤 모습이건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결을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또다른 김연아’라든지 ‘또다른 박세리’ 같은 꿈이란 꿈이 아니라 돈바라기나 이름바라기입니다. 아이는 기계가 아닙니다. 아이는 노리개가 아닙니다. 아이는 나와 마찬가지로 고운 목숨입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고운 목숨을 선물해 주었듯이 나는 내 아이한테 고운 목숨을 선물해 줍니다. 내 어버이가 나를 고운 사랑으로 돌보며 함께 살았듯이 나는 내 아이를 고운 사랑으로 보살피며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 언덕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미스 럼피우스는 탄성을 질렀어요.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 언덕 너머에는 푸른빛, 보랏빛, 장밋빛 루핀 꽃들이 가득했던 거예요! 미스 럼피우스는 기쁨에 가득 차서 무릎을 꿇었어요. “바람이야! 바람이 우리 집 정원에서 여기까지 꽃씨를 싣고 온 거야! 물론 새들도 도왔겠지!” ..  (22쪽)

 럼피우스 할머니는 당신 할아버지가 들려준 한 마디를 내내 떠올리며 살았습니다. 어린 날부터 할머니가 되는 날까지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할아버지 말씀’인데, 럼피우스 당신이 당신 할아버지만 한 나이가 될 무렵 바야흐로 ‘할아버지 말씀’을 온몸으로 깨우칩니다. 똑똑하다면 누구 못지않게 똑똑한 럼피우스 할머니요, 슬기롭다면 누구 못지않게 슬기롭다 할 만한 럼피우스 할머니인데, 삶이란 머리를 굴리는 앎이나 슬기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몸소 부딪히고 스스로 부대끼면서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하루아침에 깨우칠 이야기란 없습니다. 한꺼번에 받아들일 삶이란 없습니다.

 아이는 한두 해만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어른이라 해서 한두 해만에 부쩍 자라지 않습니다. 네 살 어린이는 네 살 어린이답게 살아가며 큽니다. 마흔 살 어른은 마흔 살 어른답게 살아가며 큽니다. 여든 살 할매 할배라면 여든 살 나이에 걸맞게 이제껏 몸으로 복닥인 나날을 온몸에 아로새기겠지요.

 사람을 사람답게 돌보는 말 한 마디는 ‘아름다움’입니다. ‘착함’이고 ‘참다움’입니다. 이를 한자말로 일컬어 ‘진선미’라 하는데,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살아가며 나누는 한국말은 ‘착하고 참다우며 고움(아름다움)’이에요.

― 미스 럼피우스 (바버러 쿠니 글·그림,우미경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6.10.10./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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