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한 흙집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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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다감한 흙집을 짓다
  • 정민나
  • 승인 2020.12.1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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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 마을]
그리운 흙집 - 강태경

 

그리운 흙집

                                                강태경

 

어느 해 태풍으로

우리 집 지붕이 날아가고 흙벽이 무너졌다.

고쳐 짓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시 지을 때까지 이웃집 방으로 이사했다.

그 집은 급히 방 하나에다 벽을 만들어 우리를 들였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서 주무셨는지 기억에 없다.

기억나는 건 천장 밑 새로 만든 벽에 구멍을 뚫어

어린애 주먹만한 등을 달아

방 한 칸이 두 칸이 된 양쪽 방에서

두 가구가 같이 살았다는 것이다.

건너방에서 전등 스위치를 비틀어 끄면

우리는 그냥 자야만 했다.

그런 방이라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건축가도 아니신데 직접 흙벽돌집을 지으셨다.

비에 젖은 살림살이가 치워지고 터가 닦이었다.

나는 매일 아버지께서 집 지으시는 걸 보러 들락거렸다.

아버지는 새끼줄에 갈대 이엉을 가로로 끼어

양쪽에 흙을 발라 외벽을 만들었다

직사각형 틀에 잘 반죽된 흙을 삽으로 퍼 넣고

밟아 빼내어 벽돌을 만들고 빛에 말리셨다.

벽돌을 어긋나게 쌓으며

큰방, 작은방, 마루, 부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흙냄새 물씬 나는 이 칸 저 칸을 돌아다니며

나는 아버지가 집을 지으시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방에 구들돌을 깔기 시작했다.

세울 수 있는 돌은 세우고 그 위에 더 납작한 돌들을

평평하게 온방에 깔아 놓으셨다.

그것은 무너진 집의 구들돌을 재활용한 것이다.

나는 새까맣게 군데군데 거뭇한 돌이 맘에 안 들었다.

새 집에 새 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을 구하기 힘드셨던 아버지의 고단함은 생각하지 못했다.

흙벽에다 풀 바른 신문지를 초벌로 바르며 깔깔 대던 언니들

신문지는 풀칠해 벽에 가져다 대기도 전에

금방 쳐져서 떨어져 나갔다

풀칠한 신문지가 손바닥만큼 손끝에 남는다

풀칠을 하고 마른 신문을 붙였는데

그것도 잘 붙지 않았다. 마른 흙벽이 풀을 확 빨아들였다.

이번에는 벽에도 풀칠하고 신문지에도 풀칠하고

잽싸게 철커덕 철커덕 발랐다

그리운 흙집! 추운 겨울 벽에 등을 대어도

그리 차갑지 않았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새마을 운동을 계기로 콘크리트와 시멘트 철을 이용하여 집을 지었다. 그 전에는 싸리나무나 대나무, 수수깡, 잡목 등으로 외를 얹고 흙을 발라서 지은 흙집이 농촌 주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필자 역시 궁핍한 어린 시절 흙집에서 살았는데 비가 많이 오거나 폭풍이 불면 외벽이 기울거나 허물어져 어른들이 벽을 개보수 하곤 하였다.

이 시의 화자 역시 흙집에서 살다가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무너져 이웃집 방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이웃집은 방이 여러 개여서 화자 가족을 들인 것이 아니다. 넉넉한 인심으로 한 칸 방에 벽을 만들어 이웃을 맞이했다니 어려운 시절에 따뜻함이 깃든 이야기가 훈훈하기만 하다. 하나의 천정아래 두 개의 방. 두 가구가 사는 집에서 주인집이 불을 끄면 무조건 잠을 자야 하는 처지였지만 그 조차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던가.

화자의 아버지는 비에 젖은 살림살이를 치우고 새롭게 짓을 짓는다. 흙벽돌을 만들어 큰방, 작은 방, 마루, 부엌을 만들 때 화자는 흙냄새 물씬나는 이칸 저칸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지어지는 집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아버지가 거뭇한 구들을 재활용할 때는 새 집엔 새 돌이어야 한다는 철없는 생각도 했다. 언니들이 마른 흙벽에 풀칠을 하고 신문지를 철커덕철커덕 바를 때도 재미있어 했다.

흙집은 작은 충격에도 파손되는 단점이 있지만 손쉽게 사후관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흙집은 흙재료의 통기성이 좋아 편안한 느낌을 주고 향토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으로 인체에도 유익하다. 황토의 흡착성과 촉매성, 자정력, 해독력 등 좋은 점들은 현대인들이 전통 한옥을 선호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자연스럽게 지은 아름다운 한옥을 보게 되면 걸음을 멈추고 풍류가 흐르는 이런 황토 흙집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바램을 갖게 된다. 요즘은 귀농하는 사람을 위해 흙집 강좌가 있기도 한데 전체 흙집을 짓지 않더라도 새집을 짓고 흙집 찜질방을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경산 정진규 선생님도 살아생전 안성에 새 집을 지은 후 석가헌이라는 이름을 짓고 아담한 황토방을 따로 만들었는데 시인들이 갈 때마다 따끈한 그 방에서 발을 모으고 친근한 담화를 나누곤 하였다. 습기와 온도가 적당하여 부드러운 공기가 흐르는 그 곳을 그리워하는 문인들이 많기도 하다.

이 시에서 화자는 그렇게 지어진 흙집이 겨울철, 벽에 등을 기대도 차갑지가 않다고 전한다. 따뜻한 흙의 성질 덕분이기도 하지만 집이 지어지는 전체 과정을 어린 화자가 처음부터 생생하게 본 까닭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시에서 흙이 지닌 통기성은 공기가 통하는 이웃과 공동체적 삶을 은유한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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