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코로나가 강타한 미디어 환경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는데,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코로나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은 미디어 중 대표적인 것이 영화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국내 영화 개봉이 줄줄이 연기되고, 어렵게 개봉한 영화도 흥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미디어 거대 플랫폼 회사인 넷플릭스의 존재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향후 영화를 포함한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극적인 변화가 눈앞에 와있다고 느끼게 된다.
올해 개봉할 예정이었던 한국 영화 최대 기대작 중의 하나가 "승리호"인데, 결국 넷플릭스에서 개봉하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최초의 SF 블록버스터를 내세운 승리호는 김태리, 송중기가 주연을 맡아 제작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제작비로만 240억 원이 투자된 블록버스터 대작이다. 원래 극장 최성수기인 지난 7~8월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개봉을 연기했고, 추석 시즌에 개봉하려 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자 넷플릭스와 협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넷플릭스가 310억에 승리호의 배급계약을 맺었다고 하니, 영화 제작사는 70억 원의 순이익을 남긴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극장 개봉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넷플릭스와의 배급계약으로 30%가량의 순익을 보장받은 것이니 제작사로서는 선방했다고 자축할 일이다.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는 국내 콘텐츠가 증가하고 있고, 넷플릭스는 한국에서도 영상 콘텐츠의 큰손이 되고 있다. 2017년부터 넷플릭스가 한국에 투자한 액수가 8000억 원에 달하고 있고, 향후 투자를 더 늘려갈 것이 예상되고 있다. 아예 한국에 콘텐츠 제작을 전담할 별도 법인까지 설립한 상황이다.
넷플릭스가 이렇게 한국의 콘텐츠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은 일견 고무적인 일이다. 그만큼 한국의 콘텐츠 제작 능력과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고,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제작을 할 수 있고 전 세계로 배급이 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미국 시장에서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하던 제작사들이 독자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을 시작함에 따라 경쟁이 심화되면서, 넷플릭스도 자체 제작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로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으며, 아시아 시장에서 넷플릭스 상위 톱 10 콘텐츠가 한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만큼 넷플릭스가 한국에 투자를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미디어 환경도 크게 영향을 받았고, 외국의 대형 영화사인 워너브라더스도 영화 개봉을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에서 먼저 개봉한다고 선언한 상태이기에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일이다. 향후 극장의 존재와 역할도 재고해야 할 상황이 될 터인데, 넷플릭스가 아시아 시장을 견인할 콘텐츠 제작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고 투자를 늘려가는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변덕스러운 중국 시장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 콘텐츠 산업이 곤란에 처한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역할은 새로운 가능성과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존재하는 법이다. 콘텐츠가 소비되는 플랫폼 자체를 외국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 거기에 따른 부정적인 반작용도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국내 토종 OTT 플랫폼이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겠다.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엄청난 자본력을 갖춘 넷플릭스와, 이미 기존에 제작된 수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미디어 회사들 틈바구니에서 한국 기업이 미디어 플랫폼 사업에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한국은 이미 갖추고 있는 뛰어난 콘텐츠 제작 능력과 경쟁력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적절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 빌보드 차트 1위를 한국 가수가 종종 점령하고, 미국 영화 축제인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한국 미디어 콘텐츠가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더욱 발전할 수 있으려면 사회적으로 어떤 배려가 있어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급변할 미디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