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온 날, 연탄가스와 동치미
상태바
눈온 날, 연탄가스와 동치미
  • 권근영
  • 승인 2021.01.06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
(26) 인천시 표창장을 받은 연희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는 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에 살던 정남숙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격주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을 송림동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가족들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깁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1995년 5월 8일 인천시청에서 송림1동 반장과 연희, 아랫집 여자
1995년 5월 8일 인천시청에서 송림1동 반장과 연희, 아랫집 여자

한밤중에 마당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 인순과 선애가 방에서 튀어나왔다. 화장실 가는 길목에 하얗게 쌓인 눈 위로 연희가 쓰러져 있었다. 인순이 달려가 연희를 부축해 볼때기를 찰싹 때렸다. 몽롱한 얼굴로 몸이 축 늘어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성”하고 큰 목소리로 남숙을 불렀다. 자다 일어난 남숙과 형우는 마당에 쓰러져 있는 며느리를 보자 하늘이 노래졌다. 형우는 대문 옆에 놓인 장독대에서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 떠와 연희에게 먹였다. 차가운 동치미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무로 불을 때던 송림동 집에 연탄을 놓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연희가 시집올 당시만 해도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피워 생활했다. 동인천이라고 해서 시내인 줄 알았는데 수도국산 달동네에 직접 와서 보니 시골이 따로 없었다. 그때부터 줄곧 연탄을 놓아 달라고 인구를 졸랐다. 2년 정도 지났을 때 남숙의 남편 형우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나무를 해 올 사람이 없게 되어 연탄을 놓았다. 구들장을 뚫어 연통을 빼낸 것이니 연료만 나무에서 연탄으로 바뀐 꼴이다.

발목까지 파묻힐 정도로 눈이 아주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연탄불도 잘 안 붙는다. 연기가 배기관 밖으로 빨리 나가지 못하고, 연통을 막아 버린다. 불이 피어오르지 않고 연탄가스가 공기를 가득 메운다. 연희는 연탄을 갈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사달이 난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방에서 어떻게 문을 열고 마당까지 나오게 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이 조금씩 깨어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 형우는 무리하지 말라며, 동치미 국물을 권했다.

인구가 집에 도착했을 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난 뒤였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연희가 큰 화를 당할 뻔한 걸 알고 속이 상했다. 미리 안전을 점검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인구는 결혼 후 1985년 4월, 직접 사업자를 내고 신흥동에서 공방을 시작했다. 연구를 거듭해 무늬목 상감으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고, 보루네오 가구에 물품을 납품하며 직원도 많아지던 때였다. 연희와 송림동 식구들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희는 인구에게 정 미안하면 소원을 하나 들어달라고 했다. 남숙의 둘째 딸 도영이 결혼식을 올리고 남숙과 형우에게 제주도 여행을 보내준다고 하는데 거기 따라갈 수 있게 비용을 보태 달라는 것이다. 형우가 한의원에서 금침을 맞고 걸을 수 있게 되긴 했으나 곁에서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1986년 제주도 폭포에서 한복을 입은 남숙
1986년 제주도 폭포에서 한복을 입은 남숙

1986년 남숙과 형우와 연희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공항에 내리니 관광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세버스에서 다른 일행들과 만나 일정을 시작했다. 첫 번째 코스로 폭포에 갔다. 남숙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갔다. 이동할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나들이복 예우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우는 단체로 이동할 때마다 뒤처졌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주먹을 꽉 쥐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따라다녔다. 딸이 처음으로 보내주는 제주도 여행이라 남숙과 형우에겐 의미가 남달랐다. 연희는 처음 와보는 제주도가 신기하고 좋았다. 특히 해녀가 물질해서 잡아 온 해산물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바로 썰어 먹는 게 아주 맛있었다. 인구가 준 용돈으로 남숙과 형우와 2박 3일을 제주도에서 행복하게 보냈다.

인천으로 돌아온 형우는 매일 걷는 연습을 했다. 걸음은 많이 좋아졌는데 기운이 예전 같지 않았다. 참외전거리에 나가 다시 예전처럼 리어카를 끌며 일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운동 갔다가 사람을 만나 막걸리를 먹고 취해서 들어오는 날이면 남숙과 다투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안면 마비가 왔다. 입이 귀 쪽으로 올라가 얼굴이 찌그러진 모양이었다. 물조차 마시기 힘들었다. 또다시 치료가 시작되었다.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 형우를 위해 연희가 직접 머리카락을 잘라주겠다고 했다. 마당에 의자를 하나 놓고, 형우를 앉혔다. 형우의 목에 분홍색 보자기를 두르고, 왼손에는 빗을 오른손에는 가위를 들고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한다. 검은 머리카락보다 흰 머리카락이 더 많고, 수염도 거의 다 흰색이다. 숱도 적은 머리카락을 꽤 오래 붙잡고 있다. 처음 해보는 솜씨다. 손잡이가 달린 동그란 거울을 들어 얼굴을 비춰준다. 형우의 비뚠 얼굴에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연희는 매달 송림동 집 마당에서 시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형우는 중풍이 나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했다. 1995년 송림1동 반장과 통장의 추천으로 연희는 인천시청에서 어버이날 맞이 표창장을 받았다.

제1102호 표창장.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1동 181번지. 연희.

위 분께서는 평소 지극한 정성으로 어버이를 봉양하고 화목한 가정을 가꾸어 오면서 경로효친의 미풍양속을 선양하는데 기여한 공이 크므로 제23회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이에 표창합니다.

1995년 5월 8일. 인천광역시장 이영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