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옛이야기를 요즈음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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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옛이야기를 요즈음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 최종규
  • 승인 2011.05.23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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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홍영우, 《생쥐 신랑》

 대안학교가 아닌 자유학교인 이오덕학교에서 아이들하고 하루에 한 시간씩 책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제는 그림책 《생쥐 신랑》을 함께 읽었습니다. 아이들한테 그림을 보여주고 글을 읽습니다. “삼 년”은 “세 해”로 고쳐서 읽고, “만나기로 한 날이 온 거야”는 “만나기로 한 날이 왔어”로 고쳐서 읽으며, “제일”은 “가장”으로 고쳐서 읽습니다.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은 《생쥐 신랑》인 만큼, 오늘날 아이들한테 읽힐 때에는 오늘날 아이들이 이야기와 말과 줄거리와 넋을 골고루 알뜰히 받아먹을 수 있게끔 한껏 추슬러야 한다고 느낍니다. 글줄이 아주 매끄럽지 않다면 이모저모 손질해서 읽습니다.

 그림책을 다 읽어 주고 나서 아이들 느낌을 듣습니다. 아이들은 ‘셋째 딸’이 ‘착한 일’을 무얼 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셋째 딸이 한 착한 일이란, 생쥐 임금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할 때에 눈물을 흘린 일만 나오는데, 고작 이렇게 눈물을 흘렸다고 ‘사람으로 되살리는’ 일이 옳은가 하고 궁금해 합니다. 아이들은 ‘셋째 딸’이 ‘생쥐인 신랑을 부끄러이 여겨서 어머니 아버지한테뿐 아니라 언니한테도 말하지 못하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처음부터 생쥐인 신랑을 드러내지 않은 셋째 딸이 왜 착한지를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생쥐 신랑한테 ‘쥐수염이 없다’고 짚습니다. 그림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참말 아이들 말대로 생쥐 임금한테 쥐수염이 없습니다. 다른 쥐한테도 수염을 안 그렸나 싶어 책을 펼칩니다. ‘신하 생쥐’와 ‘남자 생쥐’한테는 쥐수염을 그리고, ‘임금 생쥐’와 ‘여자 생쥐’와 ‘아이 생쥐’한테는 쥐수염을 안 그렸습니다.

 아이들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수탉과 암탉’ 그림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벼슬과 깃이 너무 작다고 말합니다. 이오덕학교 짐승우리에는 들판에 풀어놓고 키우는 닭이 있고, 아이들은 날마다 이 닭한테 먹이를 손수 줍니다. 날마다 닭을 보고 살아가니까, 그림책에 나오는 닭이 제대로 그린 닭인지 ‘예쁘장하게만 그린 닭’인지 금세 알아챕니다. 암탉은 수탉보다 몸이 작아야 하지만, 그림책에는 암탉과 수탉 크기가 엇비슷합니다. 게다가 암탉을 ‘하얀 닭’으로 그렸어요. 엉터리라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맨 처음 그림에서는 암탉을 ‘누런 닭’으로 그렸거든요. 가난한 시골집을 그린 첫 쪽 그림에서는 ‘누런 암탉’이었으나 맨 마지막에는 ‘하얀 암탉’이 되었으니 엉터리입니다.

.. 옛날 옛적 어느 가난한 집에 딸 셋이 있었어. 얼마나 가난했던지 나이가 차도록 시집을 못 갔더래. 하루는 부모가 딸들을 모아 놓고 말했어. “얘들아, 이제 집 걱정일랑 말고 넓은 세상에 나가 재주껏 신랑을 얻어서 살아라.” … 첫째와 둘째는 넓은 들을 지나 큰 마을로 갔어. 첫째는 잘생긴 신랑을 만나고 둘째는 돈 많은 신랑을 만나 연지 곤지 찍고 혼례를 올리고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대 ..  (2, 7쪽)

 아이들이 그림책을 본 느낌을 이야기하고 나서, 저마다 느낌글을 짤막하게 쓰기로 합니다. 아이들마다 느낌글을 읽고, 저도 느낌글을 적어서 읽습니다. 제 느낌글은 이렇습니다.

 ‘언니들이 저희 신랑을 자랑하건 말건, 스스로 좋아하며 함께 살아가는 신랑을 아버지 어머니한테 기쁘게 인사시켰으면, 언니들도 다른 생쥐들도 한결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생긴 짝꿍이나 돈 많은 신랑보다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짝꿍이 더 좋다고 한다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생쥐 신랑이 임금님 생쥐가 아니라 농사꾼 생쥐로 그려 보였을 때에 한결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생쥐 신랑》 그림결이 퍽 귀엽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귀엽다고 느끼기만 할 뿐 딱히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귀여운 그림결을 들여다보지만, 막상 줄거리를 살피며 느낌을 받아들이려 할 때에는 재미없다고 말합니다.

 책이야기 나누는 교사로 말하기 앞서, 집에서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히는 어버이로서 생각해 봅니다. 나 또한 《생쥐 신랑》을 마주했을 때에, 예쁘장하기만 한 그림이 그닥 내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예쁘장하게만 그리면서, 정작 제대로 담아야 할 그림을 제대로 못 담습니다. 셋째 딸이 깊고 거친 멧자락을 헤매다가 쓰러졌다고 하는데, 길바닥에 쓰러진 셋째 딸은 옷이며 신이며 얼굴이며 하나도 ‘흙먼지로 지저분해지거나 땀이 흐르거나’ 하지 않습니다. 가난해대서 짚신을 신는 세 자매인데, 깊고 거친 멧자락을, 오늘날처럼 잘 닦인 길이 아닌 바위와 자갈이 가득했을 멧길을 걸었다면 몽땅 해지거나 닳았겠지요. 아마 하루만에 다 해졌으리라 봅니다. 예쁜 그림도 좋지만, 옳게 담을 그림이 아이들한테 훨씬 좋으리라 봅니다. 아이들은 쥐수염 하나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보는데,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힐 어른들은 너무 성기게 그림을 그리고 맙니다.

 더욱이, 가난한 집 딸들이라면서, 이 가난한 집 딸들이 입은 옷은 파랗고 노랗고 푸르고 빠알간 빛깔이 들어간 옷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딸한테는 예쁘장한 옷을 입힐 수 있을 테지만, 어딘가 께름합니다.

 생쥐이든 멧쥐이든 시궁쥐이든, 암컷이건 수컷이건 새끼이건 수염이 있습니다. 수염이 없으면 쥐가 아닙니다. 수염 없는 고양이나 여우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수염 없는 쥐를 그리면서 ‘임금님 생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셋째는 자기를 살려 준 생쥐 나라 왕을 신랑으로 맞아 오순도순 잘 살았어. 그러다 보니 삼 년이 후딱 지났지. 언니들이랑 다시 만나기로 한 날이 온 거야. 셋째는 생쥐 신랑한테 말하고 친정으로 갔어. 먼저 온 언니들이 서로 다투어 신랑 자랑을 하는데 셋째는 아무 말도 못했지. 신랑이 생쥐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거야 … 언니들이 서로 자기 신랑이 더 잘났다고 우겨대니 어머니가 나서서 말했어. “누가 제일 신랑을 잘 만났는지 궁금하구나. 집으로 돌아가서 신랑 솜씨로 떡을 해 오너라.” ..  (12, 14, 16쪽)

 그림을 더 들여다보면, ‘임금님 생쥐’는 떡을 하지도 베를 짜지도 않습니다. 모든 일을 아랫사람한테 시킵니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신랑 생쥐이지, 일을 잘하거나 듬직한 신랑 생쥐는 아니에요. 옛이야기를 오늘 아이들한테 들려준다 할 때에, 이 그림책 《생쥐 신랑》은 ‘돈 많고 잘생긴 짝꿍’을 만나면 그저 좋기만 하다는 줄거리를 들려주겠구나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가난한 어버이는 ‘잘생긴 신랑’이랑 ‘돈 많은 신랑’을 자랑하는 첫째 딸하고 둘째 딸을 일깨우고자 여러 가지 심부름을 시킨다지만, 셋째 딸 또한 돈과 권력으로 심부름을 치를 뿐이요, 맨 마지막에는 ‘잘생기고 돈 많으며 권력까지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헤벌레 하고 웃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렇게 하면, 첫째 딸이랑 둘째 딸 어설픈 겉치레를 일깨우는 뜻조차 흐리멍덩해지고 맙니다.

 생쥐 신랑은 다른 생쥐하고 서로 힘을 모아 떡을 찧고 베를 짜야 옳습니다. 서로 도와 일을 하는 생쥐 신랑은 바지런한 농사꾼이어야 옳습니다. 바지런하면서 착하고 참다운 생쥐 신랑이기 때문에, 이러한 생쥐 신랑을 믿음직하게 사랑하는 셋째 딸이어야 옳습니다. 겉모습이나 겉치레에 휘둘리는 셋째 딸이 아니라, 돈이 없든 이름이 없든 힘이 없든 수수하면서 아리땁게 살림을 꾸리는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옳습니다.

.. 마음씨 착한 셋째는 생쥐 신랑을 친정에 데리고 가기로 했어. 수많은 생쥐들이 생쥐 신랑을 가마에 태우고 길을 떠났지. 친정으로 가는 길에 큰 냇물이 흐르고 있거든. 그런데 가마를 멘 생쥐 하나가 냇물을 건너다 그만 퐁당 빠졌어. 그 뒤를 따라 다른 생쥐들도 퐁당, 퐁당……. 생쥐 신랑이 탄 가마도 눈 깜빡할 새 물에 떠내려가 버렸지. 셋째는 신랑이 물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슬피 울었어 ..  (25, 27쪽)

 옛이야기는 옛날 옛적부터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틀 그대로 읽힐 때에도 뜻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이야기란 하루 지나고 한 해 흐르면서 조금씩 살을 붙이거나 갈고닦으면서 가다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아이들한테 옛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는 오늘날 아이들이 씩씩하며 착하고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보여줄 만하게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이 생쥐 신랑 이야기를 ‘다부진 농사꾼 생쥐’ 모습으로 그려서 아예 새로 짜야 한껏 빛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다부진 농사꾼 생쥐는 가마에 타고 길을 걷는 생쥐가 아니라, 이웃 농사꾼 생쥐하고 즐거이 어깨동무하면서 길을 걷는 생쥐가 되겠지요. 이들 농사꾼 생쥐는 저희 앞길을 가로막는 무시무시한 냇물 앞에서 서로 슬기와 힘을 모아 울력으로 다리를 놓겠지요. 서로서로 땀흘려 다리를 놓고, 이 다리는 생쥐들뿐 아니라 셋째 딸도 함께 건넙니다. 이렇게 서로 오붓하게 가난한 집으로 찾아가고, 셋째 딸이 생쥐들을 어깨에 올리고 등에 업으며 머리에 올리면서 집으로 들어설 때에 ‘하늘에서 갑작스레 따스한 손길을 베풀어 사람으로 바꾸어 줍’니다. 셋째 딸이 사립문을 들어설 때에는 이들 생쥐가 모조리 사람으로 바뀝니다. 셋째 딸은 ‘사람이 아닌 생쥐를 신랑으로 맞이해서 오순도순 살았다’고 떳떳하게 밝히려 하지만, ‘하늘나라 님은 굳이 이렇게 안 해도 된단다’ 하고 귓속말을 들려주고, 셋째 딸은 이 말을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아버이와 어머니 앞에서는 ‘우리 신랑은 생쥐예요. 생쥐이건 들쥐이건 씩씩하며 믿음직한 신랑이에요.’ 하고 말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허허, 신랑이 쥐띠인가 보구나!’ 하고 말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 셋째는 신랑과 함께 황금 가마를 타고 친정으로 갔어. 부모는 듬직한 사위를 보고 얼씨구나 좋아했지. 둘은 부모를 모시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대. 신랑이 본디 생쥐였다는 건 쉿! 비밀이야 ..  (33쪽)

 참다우며 착하고 어여쁜 사랑을 꽃피우는 셋째 딸이요, 언니들하고 다투지 않으며 자랑 또한 하지 않는 셋째 딸로 그려야 비로소 ‘마음 착한 뜻을 하늘이 알아보고 고마운 선물을 내려주’는 흐름이 옳게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가난한 멧골집에서 딸아이를 알뜰히 돌보며 살아온 어버이라면, 당신 아이들이 돈이나 얼굴이나 이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사랑스러우며 어여삐 살아갈 길을 찾기를 바라 마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한국 옛이야기이든 일본 옛이야기이든 중국 옛이야기이든 새롭게 꾸며서 새 나라를 살아가는 새 아이들한테 들려줄 때에는, 아이들이 착한 사랑과 맑은 믿음과 고운 나눔을 받아먹도록 이끌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 생쥐 신랑 (홍영우 글·그림,보리 펴냄,2001.4.20./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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