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의 생존권을 짓밟는 도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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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의 생존권을 짓밟는 도로들
  • 박병상
  • 승인 2021.01.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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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코로나19 3차 파고는 거셌다. 천 명을 넘어가는 하루 확진자가 이러다 유럽처럼 만 명을 넘나드는 게 아닌지 몹시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진정 기미를 보인다. 치료제와 백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므로 관계당국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역시 4차 파고를 예민하게 대비해야 하는데, 아슬아슬하다. 3차 파고의 진앙이 수도권이기에 더욱 그렇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통으로 지배하는 서울을 향해 줄을 서려는 수도권의 주민에게 중요한 것은 지역에 대한 애틋함이 아니다. 집에서 서울로 빠르게 이어지는 도로다. 물론 생활권이 서울이니 집이 있는 수도권은 부수적이다. 밀접, 밀집, 밀폐를 제한하는 코로나19가 제동을 걸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요즘 다소 늘었더라도 잠을 자는 집 주변에 도무지 애착이 생기지 않는다. 수입을 보장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삶의 뿌리가 닿지 않은 탓이다.

서울에 집을 마련하고 싶지만, 무척 어렵다. 가격이 여간 비싼 게 아니지 않은가! 투기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니 월급을 모아 살 수 없다. 웬만한 서울의 집값을 은행에 맡기고 이자를 받는다면, 이자로 식구가 호텔에서 머물 정도라는 분석도 있다. 투기가 가격을 주도하는 주택은 사람의 삶을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왜곡된 집과 마을의 구조는 한국, 그리고 서울 이외에 또 어디에 있을까?

서울에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은 수도권을 뒤져야 했다. 대기업이자 커다란 자본인 주택업자들이 수도권에 커다란 주택단지를 일찌감치 조성했기에 다른 수단도 없었다. 그런 주택정책은 꼭 느닷없다. 시민들이 계획을 미리 알면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라는 핑계가 들리는데, 그런가? 오히려 정부와 건설자본이 투기를 부추기는 경향이 크지 않나? 수도권이라도 서둘러 집을 장만하지 않으면 영원히 소외될 거라는 강박관념은 누가 부추기는 걸까? 언론인가?

아무튼, 수도권에 집을 정한 사람들은 투표권을 무기로 서울로 빨리 이어지는 도로를 지방당국에 요구하니 건설업자의 의도는 실패를 모른다. 투기 바람으로 수도권 주택을 원가보다 훨씬 높게 팔 수 있지 않은가. 주택업자는 돈을 챙기지만, 도로는 지방정부가 지어야 한다. 새 주택에 큰 돈 들여 입주한 시민은 지역에 별 관심이 없다. 집값 오르기를 기대하며 아스팔트를 달릴 뿐이다. 그런 개발을 겪으며 수도권을 종횡으로 누비는 아스팔트는 동심원으로 수도권을 감싼다. 그때마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 마을과 생태계는 마구 파헤쳐진다.

시흥시는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하면서 배곧대교를 왜 강행한다는 걸까? 입주민의 민원? 그건 표면일 테고, 건설자본의 압력이 아닐까? 거대한 블랙홀, 수도권으로 시흥이 사라지는 결과를 빚을 게 틀림없다. 시흥의 문화, 역사, 생태계는 시흥시에서 무시한다. 시흥시뿐이 아니다. 무료라고 귀띔하니 덮어놓고 받아들이려는 인천시도 다르지 않다. 인천의 마을? 문화? 역사? 자존심? 그따위보다 민원을 앞세우는 자본에 막대한 이권을 안길 게 틀림없다.

배곧대교와 더불어 수도권을 외곽으로 잇는 제2순환도로 역시 마찬가지다. 건설자본에 이권을 몰아주는 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도로가 사통오달로 이어지지 않으면 자금을 들고 몰려올 투기꾼들이 끼어들기 어렵고, 그러면 아파트 가격이 쉽게 오를 리 없다. 싼값에 사들인 땅에 높다란 주택을 지어 비싸게 팔려는 자본은 안달복달하겠지. 민원 부추기며 도로는 사통오달이어야 한다고 꾀고, 돈 쥐여주면 눈치껏 의견 만들 청부 전문가를 동원하겠지.

뻔한 이야기가 계속되었고, 수도권은 거대해졌다. 밀접하게 밀집되었다. 이제 밀폐되자 코로나19가 손쉽게 파고들었다. 3차 파고가 그런 현상을 증명하는데, 배곧대교와 제2순환도로가 예정된 지역은 인천의 오랜 문화요 역사인 갯벌이다. 드넓었던 갯벌은 이제 손바닥만큼 남았으니 더는 훼손할 수 없다면서 람사르습지로 지정했다. 인천시가 보전을 철석같이 약속한 생태계다. 그런데 반드시 만들겠단다. 문화와 역사와 생태계를 파괴하겠단다.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이후에 더욱 무서워질 거라 강조하는 감염병을 사통오달로 모셔오겠단다.

배곧대교든 제2순환도로든, 설계 때부터 갯벌을 파괴한다는 거, 그들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강행하면 통하리라는 확신이 있나 보다. 이제까지 그래왔으므로. 하지만 그런 도로를 타고 코로나19가 3차 파고를 키웠는데, 4차 파고를 부를 참인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수도권의 생태계는 대한민국 절반의 인구에게 피할 공간을 남기지 않았다. 기후위기는 감당할 수 없는 기상이변뿐 아니라 백신 이후에 더욱 강력해질 감염병을 부를 텐데, 자본이 아닌 코로나19 이후를 고민한다던 정부의 대책이 도로이어야 하나?

긴 시간 막히는 출퇴근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저녁 이후의 삶이 사라진 수도권의 인구도 이제 생각을 바꾸기 시작한다. 가족과 터전으로 정한 마을에 정체성을 찾고 자존심을 갖고 싶다. 탄소제로를 주창하는 정부와 그에 호응할 지방정부는 콘크리트보다 다음 세대의 생존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를 부른 기후위기는 점점 고약해진다. 후손보다 자본이 잠시 흥할 도로, 겉보기 근사한 청사진을 내세운 배곧대교와 제2순환도로는 검토 대상일 수 없다.

신기루 같은 미사여구, 건설자본이 각색한 허상은 필요 없다. 사통오달이라며 주민 현혹하며 투기꾼 꼬이게 할 개발은 악습이다. 후손의 생존을 생각한다면 정부와 지방정부는 투기로 챙길 돈을 세금으로 걷어 한국판뉴딜과 그린뉴딜로 돌려야 한다. 한국판뉴딜과 그린뉴딜은 콘크리트 개발과 무관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후손의 행복은 도로에서 창출할 수 없다. 조금만 공부해보라. 삶의 뿌리가 생태계가 회복된 지역에 내릴 때 비로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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