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취지 살려내야 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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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취지 살려내야 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 김은복
  • 승인 2021.01.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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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김은복 / 노무사

 

2016년 한 해에만 대한민국에서 산재사고로 971명이, 산재질병으로 1,171명이 사망했다. 공식적인 숫자가 그렇다. 대한민국 산재 사망률은 부동의 세계 1등인 게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건, 세월호 사건 같은 중대 시민재해 또한 끊임이 없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징역형이나 금고형을 선고 받은 사업주나 안전보건관리책임자는 86명에 불과했다. 벌금형을 받은 개인이나 법인은 평균 450만원도 되지 않는 벌금을 냈다(참조. 2021.1.11.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2019년 4월, 설치가 완료되지도 않은 승강기를 무리하게 운행시키며 작업하던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현장소장은 징역 1년, 승강기 제조/설치 업체 대표는 벌금 5백만원을 받았다.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없었고 기업(건설사)에 대한 처벌은 벌금 7백만원에 불과했다. 가습기살균제 관련 사망자는 최소한 78명 이상이고 2016년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는 관련 사망자가 85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희대의 대국민 사기살인 범죄에 대해, 제품제조 당시 대표이사와 개발자 등은 업무상 과실치사죄 등으로 4~6년의 징역형을, 화학물질 OEM업체 대표는 집행유예를 받았고, 이 사건이 붉어질 당시 대표이사는 무죄였다. 그리고 기업(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한 처벌은 표시광고법 위반의 벌금형 1억5천만원에 그쳤다(참조. 2020.10.26. 판결다시보기토론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운동본부).

한편 영국은 1974년 산업안전보건법을 만들고 이듬해 보건안전청을 설립했다. 보건안전청 감독관은 경찰과 협업하며 형법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기도 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적용하기도 한다. 사고조사를 할 때에는 도급망을 거슬러 올라가 원청의 책임소재를 파고든다. 그럼에도 열차충돌이나 여객선 침몰 같은 대형 참사에서 실질 경영책임자의 과실 책임을 입증하기엔 법리상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2007년 영국에서 기업살인법이 만들어진 건 진짜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참사를 막고자 했던 것이다. 이후 매년 3~4건씩 총 28건이 기업살인법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그 가운데 16개(57%) 기업이 파산하거나 영업을 중단했다. 물론 영국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보건안전청의 기소는 별개이다. 2018~2019년에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325건을 기소하고 평균 1억6천만원의 벌금을 물게 했다(참조. 2020.12.13.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 관련 패널토의-정규찬 영국러프버러대학 교수).

우리도 기업살인법 같은 게 필요했다. 2012년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 입법발의 운동, 2017년 ‘세월호에서 옥시참사까지’ 책임자를 무겁게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노회찬 의원 발의)이 진행됐다. 그리고 다시 2020년에 10만의 입법청원 그리고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드디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0만 명 노동자, 시민의 동의청원, 산재유족들의 단식 투쟁과 전국에서 진행된 캠페인, 농성, 동조단식 끝에 해를 넘겨 15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조문 하나하나에는 노동자, 시민의 수많은 죽음이 어려 있고, ‘더 이상 죽이지 마라’며 투쟁을 이어온 피해자 유족과 동료의 피 눈물이 배어 있습니다. 이 법의 제정은 '중대재해는 기업이 법을 위반하여 노동자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죄이며, 그 책임과 처벌은 진짜 경영책임자가 져야 한다'는 사회적 확인입니다. 제정된 법은 '말단 관리자 처벌이 아닌 진짜 경영책임자 처벌' '특수고용 노동자, 하청 노동자 중대재해 및 시민재해에 대한 원청 처벌' '하한형 형사처벌 도입' '시민재해 포괄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부상과 직업병도 처벌' 등 운동본부가 법 제정의 원칙으로 밝혀온 것들이 담겼습니다.” (2021.1.8.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운동본부. 기자회견문)

“현대중공업 아르곤 가스 질식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압사사고,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사고와 같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및 4·16 세월호 사건과 같은 시민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 발생 등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어 왔음. (중략)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을 처벌함으로써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임.” (2021.1.8. 국회 법사위원장. 법률안(대안) 제안이유)

하지만... 40년 만의 전면개정 산업안전보건법안이 김용균법이란 이름으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 안에 김용균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10만의 염원으로 상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도 국회에서 난도질당했다. 진짜 책임 져야 할 사람에게 여전히 빠져나갈 여지를 주었다. 책임 질 대상도 줄였고 처벌 수위도 낮췄다. 노동자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을 3년간 유예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발주자든 용역이든, 사업주든 공무원이든 중대재해에 책임 있는 자는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기업도 막대한 벌금을 물고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기업 규모가 크던 작던 모두 한 번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경영자의 마인드가 바뀌고 경영의 룰이 바뀐다. 기업살인법을 만들 때 영국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잘 지키면 걱정할 것 없다며 기업을 설득했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곤란해 질까봐 걱정할 일이 아니다. 사람을 죽게 한 기업은 문을 닫는 게 맞다. 사람보다 중요할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비겁한 국회는 사람의 목숨 값을 다른 무언가와 흥정했고 노동자, 시민의 염원을 훼손시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되었다. 정부는 하위규정을 만들 것이고 1년 뒤 시행된다. 그 1년 동안 최대한 원래의 취지를 살려내야 한다.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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