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꽃밭지기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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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꽃밭지기가 되자
  • 인천in
  • 승인 2021.01.1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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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유병옥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회원
마가렛
마가렛

나는 어려서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흙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 자라면서는 이 다음에 결혼하면 꽃을 가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사람이 오랫동안 꿈을 꾸면 언젠가는 그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아파트 일 층에 살고 있다. 베란다 앞에는 일곱 평쯤 되는 화단이 있는데 그 양쪽 끝으로 단풍나무가 두 그루 서 있고 가운데쯤에는 수형이 별로 예쁘지 않은 꽃사과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2001년 정년퇴직하고 나서 나는 이 화단을 예쁘게 가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꽃을 기르는데 필요할 것 같은 도구로 호미, 꽃삽, 삽 등과 화초 재배용 비료를 사 왔다. 꽃밭을 일구려고 호미로 화단을 파 보니 땅은 부서진 벽돌, 콘크리트 덩어리, 깨진 유리 조각 투성이고 꽃을 심을만한 흙은 별로 없었다. 호미로 흙을 조금 파셔 꽃을 심으면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했다.

삼 년쯤 흙과 씨름하면서 바닥을 정리하였다. 그 곳에 꽃을 조금씩 심다 보니 그 때서야 화단 모양이 좀 갖추어졌다. 계절별로 심는 꽃의 종류도 점점 많아졌는데 이른 봄이면 비료를 화단에 골고루 뿌려 놓는다. 3월 하순이 되면 꽃집에 팬지(제비꽃) 모종이 제일 먼저 나오기 시작한다.

팬지는 노란색과 보라색 꽃이 제일 흔하지만 요즈음은 개량종이 많이 나와 꽃 색이 다양하고 화려해서 긴 겨울 동안 꽃을 보지 못했던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다. 팬지를 한 차례 심고 나면 그 뒤를 이어 내가 좋아하는 마가렛 꽃이 나온다. 마가렛은 잎이 마치 쑥갓잎처럼 생겼고 들국화 모양의 흰색 꽃이 핀다. 키는 약 1m 정도로 늦은 봄부터 초가을 까지 개화 기간이 길다. 마가렛 꽃은 무리지어 꽃이 필 때 더욱 아름다워 넓은 면적에 심어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 다음으로 관리만 잘 해 주면 봄부터 늦가을 까지 꽃을 볼 수 있는 베고니아를 심고 그 사이사이 노랑색, 주황색이 화려한 한련화, 물을 많이 주어야 잘 자라는 물봉숭아, 옛날 생각나게 하는 백일홍 등을 몇 포기 심다 보면 화단이 꽃으로 가득 찬다. 거기에 한 번 심어 놓으면 매년 심지 않아도 다음 해에 또 싹이 나와서 꽃을 피우는 다년초로 좀씀바귀, 매발톱꽃, 범의꼬리, 금낭화등이 어우러져 행복한 ‘나의 화단’은 화려하고 정겨운 ‘우리 마당’이 된다.

베고니아
베고니아

‘꽃밭지기’란 그 무렵 만수동 복지회관으로 컴퓨터를 배우러 다닐 때 지었던 ‘나의 별칭’이다. 화단에 나가 꽃을 심거나 잡초를 뽑는 일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꽃밭이 너무 예뻐요”라던가 “저는 여기 꽃밭 구경하려고 일부러 이쪽으로 돌아서 다니고 있어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럴 때마다 꽃을 가꾸는 ‘꽃밭지기’ 나의 행복한 마음을 더욱 커져갔다. 거실에 앉아서 꽃밭을 내다보면 젊은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꽃을 보여주며 꽃 이름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꽃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꽃을 가꾸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쁘게 핀 꽃을 화분째 집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몰래 꽃을 캐어 가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해인가 이른 봄에 나는 하동 매화마을에 매화꽃 구경을 갔다가 할미꽃을 두어 포기 사다 화단에 심었다. 그 이듬해 싹이 나와 예쁘게 꽃이 피었다. 너무 신기하고 기특하여 좋아했는데 어느 날 보니 누가 그 할미꽃을 몽땅 캐 간 것이다. 나는 너무 약이 올라 켄트지에 커다란 글씨로 '꽃 가져가지 마세요'라고 써서 꽃사과 나무에 걸어놓기도 했다.

꽃나무의 수난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화단 가운데 있는 꽃사과 나무는 여름이면 잎이 무성하게 나와서 해마다 화단에 그늘을 넓게 만든다. 바로 그 그늘 밑에 있는 꽃들은 당연히 잘 자라지 못하고 비실거려 나를 안타깝게 하였다. 해마다 한여름이 되기 전에 관리실 직원에게 부탁해서 가지치기를 하여 그늘 면적을 최소화 시키곤 하였다. 너무 많은 그늘만 정리해주면 화단을 풍성하게 하던 고맙고 아름다운 꽃사과 나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외출 후 집에 들어와 화단을 쳐다보니 꽃사과 나무가 없어졌다. 그 자리엔 높이가 10cm 정도 되는 꽃사과 나무의 밑둥만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고 마치 피를 흘린 것 같이 수액이 몽글몽글 나와 있었다.

알고보니 꽃을 기르는데 꽃사과나무가 방해가 된다며 관리실 직원이 베어버린 것이다. 몸통이 몽땅 잘려나간 꽃사과나무를 보는 순간 나는 마음이 섬뜩해지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내가 꽃사과 나무를 죽인 것 같이 무섭고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꽃사과 나무 그루터기를 보는 것이 많이 괴로웠다.

꽃밭을 가꾸는 육,칠년 동안은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에 속한다. 그러나 칠십대 후반이 되면서부터는 꽃을 사다가 심고 가꾸는 일도 힘에 부치고 더구나 승용차를 없애고 부터는 비료를 사고 꽃모종을 사 오는 일도 할 수 없게 되어서 나는 화단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두고 나서도 처음 일,이 년 동안은 좀씀바귀가 더욱 무성하게 퍼지고 매발톱꽃, 범의 꼬리, 금낭화 붓꽃 등의 다년초들이 자라면서 심심치 않게 꽃을 피우는 덕분에 그런대로 꽃밭의 형태를 유지했으나 지금은 한쪽 구석에 매발톱꽃 두어 포기와 오래전에 어머니 산소에 성묘 갔다가 근처 산에서 캐다 심은 진달래꽃 한그루가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나이가 팔심이 넘으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기도 하고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한데 작년부터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온 세계가 편안치 못할 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자꾸만 우울한 일이 생기면서 지금 나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지낼 수는 없다. 어딘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 내게 기쁜 일이 오지 않으면 내가 즐거운 일을 만들자. 그래!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봄이 오면 화단에 꽃을 다시 심어보자. 날이 좀 풀리면 비료부터 사다가 화단에 넉넉히 뿌려 놓고 봄이 되면 제일 먼저 나오는 팬지를 사다가 심자 “다시 꽃밭 지기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화단을 다시 가꾸어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니 그동안 버려두었던 화단을 자꾸 쳐다보게 되고 봄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내 마음 속에서 희망의 싹이 튼다.

 

범의꼬리
범의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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