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마리가 입양될 때까지 계양산 지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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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마리가 입양될 때까지 계양산 지켜야죠"
  • 서예림 기자
  • 승인 2021.01.15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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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 사람] 김영환 '롯데목장 개 살리기 시민모임' 공동대표
식용으로 사육되던 개 280마리 구해 입양보내기 고군분투
"아직 160마리 남아있어... 개 보살피기는 160생명 구하는 일
김영환 '롯데목장 개 살리기 시민모임' 공동대표가 견사 안 개의 건겅상태를 살피고 있다.

북극한파가 한풀 꺾였지만 계양산 공기는 한낮임에도 차가웠다. 기자가 계양산을 찾은 지난 11일 오후 2시 계양산의 수은주는 영하 3.6도.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훨씬 낮았다. 눈 쌓인 길을 20여분 올라가자 산 중턱 쯤에 설치된 견사와 함께 그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서울사람인 그는 이날도 계양산에 있었다.

"지난 한해는 정말이지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몸이 열개여도 부족할 것 같았어요. 올해는 조금 덜 바빴으면 하는데 개들이 내 형편을 봐줄지 모르겠습니다"

견사에서 개들을 돌보고 있던 김영환 '롯데목장 개 살리기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기자가 건넨 새해 덕담에 올해도 개들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낼 것 같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불법 개 농장에서 식용으로 사육되던 개 280여 마리를 구해 보살핀지 10개월. 그가 10개월 간 겪은 우여곡절은 듣기에도 안타까울 정도였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은 듯했다.

"막막했지요. 저 많은 개들을 어떻게 구해내고, 어떻게 보살필지 막막했습니다. 혼자라면 못했를 겁니다.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던 건 뜻을 함께 해준 많은 분들 덕분입니다."

김 대표의 본업은 유통업체 대표이다. 동물법비교연구회와 동물보호단체 ‘케어’에서 활동해 온 공익활동가이기도 하다. 본업에 임할 때는 양복을 입지만 공익활동 때는 점잖은 정장을 벗어던지고 낡은 옷을 입고, 때로는 방호복 차림으로 나서기도 한다.

김영환 공동대표는 개를 보살피는 일을 할 때는 늘 방호복 차림이다.

그가 계양산을 처음 방문한 건 지난해 3월이었다. 계양산에 불법 개 농장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케어' 회원들과 함께 서울에서 계양산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계양산 개 농장에 도착해 목격한 개들의 건강상태와 생존환경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악했다.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그는 말했다.

“농장주가 ‘식용 개’라고 말하더군요. 개체수를 늘리려고 암수 구분 없이 비좁은 뜬장(견사)에서 음식쓰레기를 먹이며 키우고 있었어요. 그러니 개들이 얼마나 싸웠겠어요. 싸우다 상처를 입은 개들부터 이제 막 분만한 어미 개와 새끼 개까지 아우성치고 있었어요.”

그는 어떻게든 개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개농장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개 농장이 있는 곳은 개발제한구역으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땅이었다. 농장주가 1992년부터 땅을 임대받아 개 농장을 지은 후 수십년간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의 개 수백마리는 도살 차례가 되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우선 개들을 농장주의 손에서 구해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했어요. 게다가 저는 서울사람이라 인천을 잘 모르잖아요. 주변 분들과 상의한 끝에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시민운동가, 동물보호활동가 세 분과 저까지 넷이 공동대표를 맡아 '롯데목장 개 살리기 시민모임'을 만들었지요"

시민모임 구성으로 계양산 불법 개농장이 세간에 알려지자 지난해 6월부터 계양구가 불법 농장시설을 철거하라고 압박하며 농장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했다. 구의 철거 요구에 시달리던 농장주는 개들을 도살장에 보내기에 바빴다. 남아 있는 개들 280여마리가 언제 도살장으로 보내질지 몰랐다.

"하늘이 도왔다고나 할까요. 때마침 롯데목장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된 미국 거주 교포 복지가 한분이 3,300만원을 보내왔어요. 그 돈을 농장주에게 육견 포기 위로금으로 건네주고 남아 있는 개들의 관리 권한을 넘겨받았습니다. 천만다행이었죠. 관리 권한을 넘겨받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시민모임 회원들이 견사 안 개들을 보살피고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더 큰 문제였다. 개 280여마리를 먹이고 보살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했다. 하루종일 매달려 움직여도 들어가는 비용과 품은 몇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개 한마리당 치료부터 입양까지 평균 700만원이 들어가요.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많아 대형견을 키우지 못하잖아요. 천상 해외입양을 보내야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동봉사자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어요. 코로나로 해외 입양도 발목이 잡힌 것이죠"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시민모임의 고군분투가 언론과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새로운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이 속속 합류했다. 역할을 입양준비, 물품관리 등 세부적으로 분담해 개를 보살피는 일도 가능해졌다.

"작년에 90여마리가 국내외로 입양가고 지금은 160여마리가 남아있어요. 많은 후원자들과 봉사자들 덕에 가능했던 일이죠. 안타깝게도 10여마리는 죽었습니다. 개목장 뜬장에서 옴짝달싹못해 약해졌나봐요. 뛰어 놀아야할 녀석들인데 좁은 곳에 다닥다닥 붙어있는게 마음아팠습니다"

그동안 봉사자들의 손길로 개들의 건강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이제 견사의 문이 열리면 이전에는 잔뜩 경계했던 개들이 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돌보는 것도 한결 수월해졌다. 개들이 반기는 모습을 보면 봉사자들은 진심이 통한 것 같아 큰 위안을 받는다.

개농장의 뜬장을 철거한 후 새로 설치한 견사 펜스. 1마리가 엎드리기빠듯할 정도로 비좁다.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계양구가 불법 견사를 철거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요. 과태료도 부과됐고요. 개발제한구역 내 물건 적치 위반이라도 피하기 위해 개농장에 있었던 뜬장은 철거했지만 우리가 어딜 가겠어요. 뜬장을 철거하고 새로 설치한 펜스도 불법이라 눈치를 보며 급히 마련한 탓에 개들이 머물기에는 협소해요. 같이 해결책을 찾고싶은데 계양구는 나가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요"

계양구의 철거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행정기관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개농장을 불법으로 지은 농장주도, 수십년간 방치한 계양구도, 땅을 빌려준 롯데도 살아있는 생명을 위한 해결책엔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구청이 하는 일 중에는 동물보호도 있어요. 그런데 이 개들은 가축이라서 보호가 어렵다고 합니다. 가축은 가족이 될 수 없나요. 구청은 '네가 구조했으니 네가 책임지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시민모임에게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인천시 행정심판위원회에서 계양구가 시민모임에 내린 시정명령의 효력과 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려 당장 견사가 철거되는 것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시간을 번 것이죠. 언제까지고 여기서 개들을 돌볼 수 없으니까요. 쉬는 날마다 이사갈 땅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롯데도 나가라고 등 떠밀고 있고요. 농장주에게 땅을 빌려준 롯데도 윤리적 책임이 있어요. 롯데 땅에서 고통받던 개들이잖아요."

계양산 개농장에는 엄동설한에 개 160여마리가 아직 남아있다. 오는 16일부터는 맹추위가 다시 몰려온다. 봉사자들과 개들은 칼바람이 부는 계양산에서 이 겨울을 견뎌내야한다.

"개 한마리 구조한다고 세상이 변하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구조된 개 한마리의 세상은 완전히 바뀌는 것 이잖아요. 생명을 구하는 일 아닌가요. 마지막 개 한마리가 입양돼 새 주인을 만날 때까지 저와 봉사자들은 이 개들 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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