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고속도로, 도로보다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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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고속도로, 도로보다 공간으로
  • 강도윤
  • 승인 2021.01.2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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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강도윤 / 인천도시재생연구원 원장, 인천대 겸임교수

도시의 경쟁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편리한 교통과 도로망 확충에 많은 예산과 공간을 할애한다. 물류든 사람이든 빨리 도심에 다다르기 위해 자동차가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넓은 길, 고속도로의 건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뿐 아니라 도심 안에서도 세워둔 차와 빗겨가는 또 다른 차로 인하여 골목길은 사람보다 차가 중심이 되었다.

선거 때면 많은 정치인들이 도로건설을 위한 교통정책과 주차장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워 왔다. 물론 나도 차를 끌고 가까운 거리도 걷기 싫어하는 게으른 도시인이니 이런 기반시설들의 필요성에 대하여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시대의 정보통신의 발달로 대치되는 것들을 체험하며, 차에게 내주었던 공간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한다.

파리를 여행하다 보면 도심을 가로지르는 세느강 강변에 수영복 차림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역시 파리는 달라!’라는 감탄사로 나같은 촌스러운 관광객들에게 파리다움의 경관을 부럽게 하는 그 세느강변의 모래사장이 20년 전만 해도 강변도로였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까.

출처: https://www.cnu.org(1967년 건설된 세느강변의 고속도로)
출처: https://www.cnu.org(1967년 건설된 세느강변의 고속도로)

1960년대, 도심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세느강변에는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이후 2002년에 당선된 파리시장은 시민들에게 세느강을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자동차 진입을 막고 4주간 인공으로 백사장을 조성하여 바캉스를 떠나지 못한 파리와 근교 주민들, 그리고 관광객 등에게 개방하였다. 2백만명이 모여드는 성공을 이루었고, 이후 그 범위와 개방 기간을 확대하다가 2010년경부터는 아예 고속도로를 폐쇄하고 보행자 중심의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세느강 주변에는 문화공연들이 펼쳐지고,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들며 수십 년 동안 고속도로에 숨겨져 있던 세느 강은 다시 한번 파리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이 되었다.

출처: https://infos.parisattitude.com (과거의 고속도로, 세느강변의 휴식)
출처: https://infos.parisattitude.com (과거의 고속도로, 세느강변의 휴식)

도시도 사람과 더불어 변화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와 생각들도 따라서 변화한다. 오늘날 세느강변의 모습이 자부심이 되기까지 파리의 시민들 가운데는 고속도로를 폐쇄하는 프로젝트에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10년전 여행한 스페인의 작은 도시 빌바오가 생각난다.

처음 빌바오란 도시를 알게 된 것은, 프랑크게리란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구겐하임 뮤지엄을 통해서였다. 1997년 미술관의 개관으로 탄광도시로 쇠락해가는 스페인의 작은 항구도시 빌바오를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변모시켜나갔다. 이후 ‘빌바오효과’란 경제학적 용어로 인용될 만큼 문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도시의 사례가 되고 있다.

출처:www.guggenheim-bilbao.eus (구겐하임뮤지엄 전경)
출처:www.guggenheim-bilbao.eus (구겐하임뮤지엄 전경)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진 주민들이 충돌과 양보로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속가능한 주민참여를 위해 의사결정의 책임을 강조하는 파트너쉽과 거버넌스를 강조한다.

빌바오 효과는 현재에도 지속하고 있는데, 이는 강력한 민관 파트너쉽을 기반으로 하는 거버넌스의 활동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빌바오 리아 2000’은 정부,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 여러 개의 공동주주로 구성된 민간기업 형태의 거버넌스 조직이다. 빌바오는 거버넌스 중심으로 주민간 갈등해소는 물론 1990년대는 도시재생을 위한 통합과 경제활성화에 집중하였고, 2000년대에서는 혁신을 위한 지식기반의 연구에 집중하여 왔다.

이러한 거버넌스의 활약으로 빌바오 네르비온 강가에 고속도로가 될 뻔한 아름다운 수변의 산책로가 있다. 철강산업의 부흥기에 물자를 실어나르던 항구로 향했던 차로가 산업의 쇠퇴를 겪으며 방치되었지만, 1990년대에 그들은 자동차도로 대신에 나무를 심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강변의 산책로로 조성하였고, 빠른 이동보다 훨씬 큰 경제적 효과를 얻고 있다.

출처: www.leekuanyewworldcityprize.gov.sg (네르비온 강변의 과거(좌)와 현재(우)
출처: www.leekuanyewworldcityprize.gov.sg (네르비온 강변의 과거(좌)와 현재(우)

인천에도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고대하는 길이 있다.

1960년대에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경인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경인고속도로가 인천에 미친 영향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인천에서 생산된 물자를 서울로 빠르게 이동시킬 수는 있었으나, 정작 인천시민에게는 동서로 지역 간 분절을 야기시켰고, 높은 방음벽은 커뮤니티 단절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 경인고속도로에 대한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빠른 이동이 도시를 발전시키는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머물게 하고 즐기게 해야 도시는 살아간다. 코로나 이후의 도시의 삶은 빠른 이동보다 크고작은 커뮤니티에서 머물며 행복을 찾게 될 것이다.

지역사회가 도로에 양보했던 경인고속도로가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그래서 길이 아닌 공간으로 인천시민의 자부심이 되기를 간곡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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