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말하기도 생각하기도 싫다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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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말하기도 생각하기도 싫다는 아이들...
  • 이정숙
  • 승인 2021.02.0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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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 동그라미들]
(2) 원격수업이 연출하는 풍경 - 이정숙 / 구산초교 교사, 인천교육연구소
코로나19 이후 등교가 가능한 날, 교실의 학습 모습

 

지난 한 해, 아이들은 학교에 와도 운동장에서 뛰어놀지도 못한 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 화장실도 한 명씩 조용히 다녀와야 했고 수업 시간 모둠 활동조차 금지됐었다. 점심시간은 투명 칸막이를 두른 채 각자 자기 책상 위에서 밥을 먹었다. 현장학습은 커녕, 동아리 활동도 할 수 없었고, 그나마 어쩌다 등교하는 걸 감지덕지해야 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따라 등교수업과 원격수업을 오가면서 아이들도 교사도, 아니 모두들 혼란스러운 채 그렇게 학교는 일 년이 마감되었다.

이제 익숙할 것 같은 랜선을 통한 원격수업은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처음 시작 때 마이크를 열어 놓으면 저마다의 집안 소리들이 가득 들어온다. 강아지 짖는 소리, 물틀어 놓고 설거지 하는 소리, 동생이 옆에서 TV로 수업 듣는 소리... 등등. 아이들 환경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곤 한다. 주말을 보내고 아침에 첫 시간 ‘줌수업’이다. 김샘은 종종 주말을 보낸 첫 시간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한다. 가본 것 먹은 것 듣고 본 것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며 그 중 주말에 가족들과 나눈 이야기 들 중 자신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하였다.

김샘: 가족들과 TV도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또 나들이도... 흠 요즘은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주로 집에 있었지? 자, 함께 가족들과 지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뭔지 생각해 볼까요? ... 흠 영은이 표정이 생각난 것 같네. 한번 말해 볼까요?

영은: ....

김샘: 많은 말들을 들어서 말하려니 생각이 갑자기 안나지? 함께 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서 기억 해 보렴. 잘 생각해 보고 있어요. 민서? 민서가 말해보자.

민서: 음...... “저리가!” 요

민서 엄마: 야! (저 멀리 민서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잠깐 들린다.)

김샘: 뭐? (김샘도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다)

민서: (꿋꿋이) ‘저리가요’라고요. 엄마가 그랬어요.

김샘: 흠! 그 말이 기억났구나. 민서는 왜 그런 말을 들었어요?

민서: 심심해서요. 그래서 엄마만 쫓아다녔어요. 같이 놀아달라고요. 그랬더니 엄마가 저리가래요.

김샘: 흠흠. 그랬구나. 민서는 엄마랑 노는 게 좋았구나.

민서: 예.

김샘: 밖에 나가기도 어려운 데 집에만 있어 답답했구나. 엄마랑 놀아서 좋았겠네.

민서: 그런데 안 놀았어요. 엄마가 귀찮다구요.

김샘: 흠흠. 그래 엄마도 바쁘시지. 민서는 엄마가 참 좋았나보구나. 자, 다른 사람도 말해 보자.

코로나19 이후, 어쩌다 이렇게 등교할 수 있는 것도 감지덕지다. 

 

해맑은 민서는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지만 샘은 바삐 다음 사람을 골라 발표 시켰다. 아이들이 집에서 얼마나 답답해하고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슬쩍 엿본듯하다. 그런데 아이들마다 집에서 자기가 들은 소리들이 점차 같아졌다. 게임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김샘: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면서 들었던 말 줄 기억에 남는 말 말해 볼까?

용희: ‘게임 하지마!’요

정민: 나두 ‘너 또 게임하지?’그랬어요.

채호: 나도 똑 같애. ‘너 뭐해? 게임은 안돼!’

효신: 나둔데 ‘게임 좀 그만해!’라고 했어요. 엄마가.

김샘: 흠, 역시 “게임 좀 그만해!” 라는 말을 효신이도 들었구나.

김샘: 효신이는 하루에 게임을 몇 시간 정도 하니?

효신: 네 시간이요~

김샘: 아이쿠! 힘들었겠네. 게임하느라 밥도 못 먹고 그러는 건 아니지? 낼부터 반으로 줄여보자. 다음 주에는 한 시간만 하고. 어때 할 수 있을까?

효신: 네.

코로나로 인해 게임에 빠진 아이들.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그저 덮어 둘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쓱 지나간다. 쉽게 얻어지는 게임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이 학습상황으로 쉽게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학습이 이루어지려면 여러 번의 학습내용 반복과 집중을 위한 인위적인 긴장감이 필요하다. 학교수업을 통해 그런 습관을 얻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학습습관을 얻게 되고 그것이 학습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원격수업은 일방적으로 제시되는 학습내용과 무한한 자유, 불규칙으로 인해 그 학습 습관이 어그러지고 학습력이 상실되어간다. 굳이 게임환경의 노출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학습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처음엔 호기심으로 랜선 수업에 참여하다가 이내 서너번 지나가니 방임이 그리워져 가고 생각도 말하기도 싫어하는 쪽으로 기울어갔다. 김샘은 그래도 뭔가 랜선으로라도 말을 해 보게 하면 참여도 하고 신기해 하면서 평소 안하던 발표도 해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아주아주 낮은 수준의 이런저런 말하기를 시켜본다.

김샘: 자, 수업 마치기 전에 ‘아’자로 시작되는 말을 돌아가며 해 볼까? 하나하나 마이크를 열어 아이들을 참여시킨다. 영민이부터 해 보자.

영민: 아가

지호: 아저씨

유리: 아이유

신중: .....

김샘: 신중이 말해보세요.

신중: ......

김샘: 생각이 안 나는구나.

김샘은 4학년 수준에 어렵지도 않고 능히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서 게임처럼 진행하는데 몇 몇 아이들이 자꾸 회피하고 있는 모습들이 안타까웠다. 랜선 수업이라고 아예 참여조차 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어떡하든 학습에 참여하려는 습관을 넣어주고 싶어 온갖 마중물을 다 제시하게 된다.

김샘: 신중아 이건 어때? ‘아저씨’라는 말이 아까 나왔지? 아저씨 반대되는 말, 옆집에 사시는 여자 어른. 엄마랑 친하게 지내시기도 하지. 아~

신중: ........

김샘: 흠, 생각이 영 안나니? 자, 내일까지 생각해 보고........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니고 생각을 깊이 해야 하는 말도 아니고 정답이 있는 말도 아닌데 답을 못하는 신중이. 몰라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고 귀찮은 것에 대한 표현이다. 이 수업이 랜선 수업이 아니라 현장 수업이었으면 다른 아이들의 시선과 눈치로, 혹은 여기저기서 도와주는 말들과 학습 분위기에 의해 아이들이 끼어들고 참여하고 호응했을 텐데...... 김샘은 한 면만 열어놓은 사각으로 된 창구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앞으로 미래의 수업은 이렇게 랜선 수업이 많아진다는데 과연 이런 상황을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수업은 오로지 개개인의 역량을 가지고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학습이란 것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사회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공유된 의미를 함께 구성하고 창출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한다. 최첨단 기계를 단순히 이용한다고 해서 미래를 위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텐데 김샘은 안타깝기만 하다.

 

코로나19 이전, 모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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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전, 놀이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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