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는 하는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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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는 하는 선진국
  • 임승관
  • 승인 2021.02.0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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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
임승관 /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요즘 ‘생활SOC’라고 하는 공공재(公共財)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이용자와 함께 운영하며 주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주민 참여형이다. 하지만 아직 공간 운영에 주민 참여는 소극적이고 형식적이다. 정부가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주민들 의지나 역량을 신뢰하기보다 정부의 운영과 기존 통제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공공은 사적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추구하며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로 보았다. ‘거버먼트’에 대한 신뢰는 이렇게 사회적 통념이 되었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시민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의사소통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 중심의 하향식 통제나 시민 계몽이 어려워지는 이유다. 또한 점점 복잡해지고 그 원인도 알 수 없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에서도 ‘거버먼트’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거버먼트’를 신뢰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주류 경제학 이론이다. 이는 1968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에서 하딘(Garrett Hardin)이 발표한 ‘공유지의 비극’이론을 통해 드러났다. 이 이론은 모든 목동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목초지를 공공재에 비유했다. 결론은 공유지인 목초지는 사용자인 주민들의 이기심으로 과잉 방목되어 불가피하게 폐허가 된다는 이론이다.

즉 경제적 동물인 인간은 과잉 방목으로 얻는 당장의 이익은 나의 것이지만 목초지 훼손으로 겪는 미래의 손실은 모두가 나누어 갖기 때문에 과잉 방목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공재를 계속 유지하려면 국유화를 통한 이용 규제나 사적 소유지로 만들어 책임 관리해야 통제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설득력 있는 이론은 그 후 경제학을 넘어 모든 정책 분야에 적용되어 정부와 시민 사이의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통념이 되었다.

생활SOC의 예를 들면, 정부는 주민이 협치를 이용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요구나 민원을 해결하려고 하고, 거버넌스 협의체는 완장 효과를 일으키며, 공익사업을 돈이 되는 사업으로 보는 일부 주민의 과도한 사업 주도는 많은 주민을 배제하는 폐쇄성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버넌스의 민간 참여는 자문이나 심의위원회 등 계획수립 단계의 참여에 국한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주민은 행정이 사전 공유 없이 사업 방식을 독단적으로 결정 통보하고, 정작 행정의 판단이 필요할 땐 회피한다고 생각한다. 주민 참여를 강조하며 직접 참여하는 출석만을 강조하는 비현실적인 성과 평가도 불만이다. 이러한 상호 불신은 어떤 공유지도 지킬 수 없고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하딘’의 이론이 나온 지 40년 후, 정치학자인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지속하는 공유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요인을 분석하여 하딘(Garrett Hardin) 이론의 오류를 찾았다. 우선 공유 자원과 그 자원을 지키고 유지하려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유지가 지속할 수 있는 규칙을 논의하여 준수를 약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단계에 도달해도 망가지는 공유지는 있다. 공동체에서 합의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무임승차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감시와 제재가 이루어져야 공유지의 비로소 안정된 지속성을 유지한다.

결국 ‘공유지 비극’의 원인은 의사소통에 있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민주적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논의와 합의를 이루고 자율적으로 무임승차 없이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공유지는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딘(Garrett Hardin)의 ‘공유지 비극’은 공유지를 유지하려는 구성원들이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제한 조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오히려 ‘하딘’은 경쟁과 통제를 합리화하는 ‘시장의 비극’을 보여주었다.

현 정부가 지원하는 생활SOC는 도시재생과 같은 지역 공동체 사업의 거점이 된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세련된 주도가 아니다. 정부는 공유지 발전과 지속을 바라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공동의 목표를 합의하고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소통과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자치 능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이처럼 새로운 정부 참여 방식은 제도 개선이 선행 되어야 가능한 것도 있다. 작은 시범 사업으로 실험하고 연구하며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지만 선진국에 들어섰으니 시민의식과 역량을 믿고 정부는 용기를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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