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환한 것이 온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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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환한 것이 온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 정민나
  • 승인 2021.02.10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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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마을]
신축년, 눈과 소에게 바람 - 성기덕

신축년, 눈과 소에게 바람

                                                      - 성기덕

 

눈이 눈처럼 내렸다.

새해벽두부터 전부 백색으로 덮어 버렸다.

술 먹은 쥐의 술주정도 다 덮어 안 보이면 좋겠다.

또 눈이 내렸다 많은 것을 다시 시작하라는 뜻으로

소의 해를 맞이하여 광우병 걸린 소는 오지 말고

힘세고 일 잘하는 소가 왔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은 보리밭의 어린 보리싹을 키우고 마늘밭의 어린 마늘싹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힘을 줄테지.

그것뿐이랴 눈의 온기는

냇가의 버들강아지를 눈뜨게 하고

노지의 나무들에게 촉촉한 봄을 가져다준다.

눈 위를 걸어가는 저 소는 탐실하구나.

배고픔을 없애주던 원년이 되었던 그 시절

자식에게 가난을 안 물려주려고 부모들은 손발이 돌처럼 굳어갔지.

그 때 소는 정말 많은 일을 했단다.

경북 상주에서는 죽은 주인 묘에 가서 말없이 울던 소도 있었지.

먹이 주던 주인을 배신 안 하고 충성을 다했기에

안 잡아먹고 자연사한 후 사람과 똑같이 장례를 치러주고

사람들은 소를 문화회관 앞에 매장해 주었다.

어디든지 내려 걸어가는 눈과 소

풍성한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환한 눈처럼 맑기만 하다.

 

새해 아침 내린 눈은 하얗다. 하얀 눈은 차가워서 더 눈 같다. 차갑고 하얗다는 감각이 시인에게 남다른 각성을 준다. 시인은 “술 먹은 쥐의 술주정”이나 “광우병 걸린 소”같은 이 세상을 오염시키거나 아프게 하는 요인들이 사라져 다시 순정한 세계, 차가운 눈처럼 무결하고 온전한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시인이 찬양하는 이 눈은 ‘어린 보리싹’이나 ‘어린 마늘싹’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힘을 준다. 그것뿐이랴! 눈은 차가워서 나쁜 기운을 내치는 강한 속성이 있고 따뜻해서 힘껏 품어주는 부드러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올 2021년 신축년 새해, 눈 위를 소가 걸어간다. 그 소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예사롭지 않다. 소를 바라보자 배고픔을 없애주던 시절에 사람들 대신 많은 일을 한 소가 떠오른다. “자식에게 가난을 안 물려주려고 손발이 돌처럼 굳어갔던 우리들의 어버이와 함께 했던 소.

오늘따라 시인에게 “주인을 배신 안 하고 충성을 다”한 소에 대한 전설이나 에피소드가 연이어 떠오르는 연유는 무엇일까? 인간을 복되게 하고 유익함을 가져다주는 소. 올해가 소의 해이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신축년 눈과 소에게 바람”이 이 시의 제목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과 땅위를 걸어가는 소가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은 바로 “풍성한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환한 눈처럼 맑”기만 한 염결한 곳. ‘순정’하고 ‘정직함’을 상징하는 바로 그런 곳이다. 그리하여 시인의 눈에 비치는 소는 탐실하기만 하다. 그리하여 시인은 “어디든지 내려 걸어가는 눈과 소”에게 “냇가의 버들강아지 눈뜨게 하고” “노지의 나무들에게 촉촉한 봄을 가져다” 주기를 염원한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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