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 코끼리는 왜 새끼 코끼리를 낳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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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 코끼리는 왜 새끼 코끼리를 낳아서
  • 최일화
  • 승인 2021.02.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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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최정례 시집 『빛그물』을 읽고- 최일화 / 시인

우리는 많은 부음을 들으며 산다. 부모형제, 일가친척의 죽음은 물론이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 지인들의 죽음을 접하며 살고 있다. 종종 유명 인사의 죽음 소식을 들으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인물의 퇴장에 세월의 무상함과 생사의 법칙과 엄중한 역사의 흐름을 깨닫기도 한다. 많은 사망 소식 중에서 내게 큰 상실감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시인들의 죽음이다. 문학도로서 오랫동안 시를 읽어온 한 독자로서 시인들의 죽음이 큰 상실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함께 문학을 해온 동료 문인의 죽음, 평소 애독했던 시인의 죽음도 각별하게 다가온다. 개인적 친분은 없어도 작품을 읽었던 시인의 죽음에 아프게 다가오곤 한다. 고향 출신 원로 시인의 죽음에 문상을 다녀오며 허름한 주막에 오래 앉아 술을 마시며 고인을 추모하기도 했다. 나를 문단으로 이끌어준 몇 몇 원로 시인들의 죽음도 아프게 다가왔다.

지난 116일 우리는 또 하나의 시인을 잃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여 더욱 안타깝다. 큰 인연이 있거나 자주 만났던 동료는 아니라도 작품에 매료되어 진실하게 공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인은 내게 소중하다. 한 때 한 국문학자의 강연을 들은 일이 있다. 강연 중에 잊지 않는 내용이 있다.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더라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고인을 기억하고 있는 한 그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도 고인이 된 여러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공감하고자 노력한다.

최정례 시인도 그런 분 중에 하나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시인을 기억하는 많은 독자가 있고 작품이 세상에 남아 읽히는 한 시인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시 몇 편 함께 읽으며 고인을 추모하고자 한다.

 

춘투

인제 원통 부근이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서성대는 군인들을 배경으로
나폴대는 치마를 입은 여자와 군인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여자가 흩어지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뭐라 뭐라 했고
군인은 얼굴이 붉어지다 화를 참는 듯하더니
갑자기 자기 모자를 벗어 길바닥에 패대기쳤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유리 차창 안에서는 그들의 말 들리지 않았다
치마가 나폴거리며 저만치 멀어져가는데
남자는 언 땅 녹아 질퍽한 길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막차냐 첫차냐의 언쟁이었을까
이월과 삼월의 춘투 같은 것이었을까
여자가 버스표 같은 걸 꺼내 찢으며
신경질을 부리는데 뿌옇게

저쪽에서 무언가 번져오는 것 같았다
바람이 무수한 냉이꽃과 제비꽃을 섞어 흔들며
봄 언덕이 천천히 걸어오는 것 같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봄이라고
질척거리며 어기적거리며 심술을 부리며
                                                               -최정례 춘투전문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에서 골랐다. 봄과 젊음을 소재로 한 한 편의 무언극을 보는 것 같다. 여기서 춘투는 산업 현장에서 그 말을 빌려 왔지만 그것과는 다른 개념의 춘투다. 시쳇말로 밀당이라는 말에 해당될 것이다. 이월이나 삼월에 일어나는 노동현장의 춘투가 아니라 바로 이월과 삼월의 춘투,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밀고 당기는 춘투인 것이다. 이월과 삼월의 춘투라면 아무래도 여자가 삼월이고 군인이 이월일 것 같다. 군인이 더 추울 테니까, 여자가 봄바람을 타고 인제 원통까지 갔을 테니까.

저 아기자기한 봄, 티격태격하는 봄이 바로 청춘이다. 서양의 한 노벨상 수상 작가는 봄이 진흙과 흙먼지의 계절이듯이 청춘은 고뇌와 방황의 시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에는 남녀의 미묘한 심리가 드러나 있고 시인의 예리한 관찰이 돋보이고 있다. 시에서 가장 우선시해야할 것은 감동 요소다. 이 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청춘에 대한 예찬, 예측불허의 사랑의 불확실성, 알쏭달쏭한 연애의 충돌과 갈등 같은 것이다. 그렇긴 해도 우리는 그 사랑을 추구하고 몰두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봄이 무르익어 가듯이 사랑도 점점 성숙되어 간다.

저무는 봄날

오늘은 아무데서도 전화 오지 않았다
끊어진 형광등을 갈고
흔들리는 의자 다리를 어떻게 하려 했으나
내버려두었다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욕실 바닥엔 구부러진 머리카락도 몇 있었고
반찬가게 주인이 깻잎을 사라고 했을 때
콩잎은 없느냐고 물었을 뿐이다

TV에선 어린 코끼리를 관광용으로 길들이려고
꼬챙이로 이마를 찔러 피범벅이 된 걸 보여주었다
생각만 했다
에미 코끼리는 왜 새끼 코끼리를 낳아서

오늘 어제보다는 바람이 덜 불었고
조금 늦게 날이 저무는 거 같았고
뒤뚱거리는 의자에 그냥 앉아 있었다
                                                 -최정례 저무는 봄날전문

 

이 시도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에 수록되어 있다. 시 한 편 뽑아야 하는데 어떤 걸 뽑을까 망설였다. 제일 짧은 걸 뽑을까, 제일 쉬운 시를 뽑을까 하다가 재미있는 시 한 편을 뽑기로 했다. 이 시는 많이 본 풍경 같고 나도 매번 체험하는 일이다, 우리가 항상 아귀다툼으로 고달프게만 사는 게 아니라 시의 화자처럼 어슬렁거리며 저무는 봄날을 보내는 것도 생활의 한 덕목인 것 같아서 이 시를 소개한다. 시인은 어느 글에선가 자기는 시를 쓸 때만 시인이라는 말을 했다. 시를 쓰지 않는 시간은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한다는 얘기다. 아마 많은 시인들이 그런 문제를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매우 공감되는 자기 성찰이다.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하면 과거에 시인이었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시인이 아니라는 말 속엔 수많은 서민과 함께 하고자 하는 보편성이 담겨 있다. 물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시인의 감수성, 시인의 관찰력, 시인의 타고난 미의식이 곧 고갈되는 것은 아니고 시적인 바탕은 시를 쓰지 않을 때라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를 쓰지 않을 때 더 이상 시인이고자 하지 않으려는 의도엔 시 외의 생활인으로서의 삶의 현장을 소중하게 여기려는 시인의 엄숙한 태도가 나타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활인으로서의 자아정체성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화자를 묘사하고 있지만 시인으로서는 가장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사소하고 극히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시 한 편을 뽑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풍경은 사소하지만 시 한 편을 지어내는 과정은 얼마나 치열한가. 좀 더 확대하면 공허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한 삶이라는 질료에서 한 편의 시를 뽑아내는 일은 결코 사소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공허하고 외로운 인생에 가장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곧 시작행위라는 말도 된다. 욕실 바닥에 구부러진 머리카락, 어린 코끼리를 관상용으로 길들이는 TV화면, 뒤뚱거리는 의자에 그냥 앉아 있던 일까지도 한 편의 시에 등장시키며 무료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mg의 진통제

1mg의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설산을 헤매었다

설산의 빙벽을 올라야 하는데
극약 처분의 낭떠러지를
기어올라야 하는데

1mg이 너무나 무거웠다
1mg을 안고 빙벽을 오르기가 힘들었다

1mg마저 버리고 싶었다

너무나 무거워
엄마 엄마 엄마
죽고 없는 엄마를 불렀다

텅 빈 설산이 울렸다
                               -최정례 시 ‘1mg의 진통제전문

최정례의 마지막 시집 <빛그물>을 읽었다. 속표지 첫 페이지에 <산은 물속에 있고, 산은 구름 뒤에 있고, 산은 산속에 있다. -제일 허쉬필드/그 산속의 산에서 내 생명과 기운을 염려하는 친구들, 그리고 당신 김하규에게>란 헌사가 붙었다. ‘당신 김하규에게란 헌사의 글귀가 가슴 시리게 한다. 남편에게 이런 헌사를 남기는 시집을 나는 처음 보았다. 스스로 죽음을 예견하는 것 같아서 더욱 그렇다. 시인은 암병동 무균실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이 시집의 교정을 봤다고 했다.

이 시는 시집의 맨 끝 페이지에 실려 있다. 독자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인 것만 같아 마음 아프다. 시인은 고대 국문과 5년 후배지만, 나는 중퇴를 했으니 선후배의 연은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우린 페이스북 친구로 다시 만났고 시인과 독자로 연을 맺었다. 재작년 10월 김영승 시인이 이용악 문학상을 수상할 때 시상식장에서 만나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은 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지난해 여름이었던가, 병원에 입원하기 때문에 몇 개월 페이스북을 접겠다는 글을 보고 시인의 건강이 많이 염려되었었다. 얼마 후 치료가 잘 되었다며 페북에 복귀하여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 많은 페북 친구들이 응원의 댓글을 달았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엄마 엄마를 외치듯 불렀을까. 진통제 1mg조차 너무나 무거웠다니, 1mg을 안고 설산으로 가기 위해 빙벽을 오르고 있었다니 얼마나 힘든 투병이었을까. 시인의 부군은 장례식 사진 한 장을 페북에 올리며 페북 친구들에게 대신 작별인사를 했다. 춘천 인근 가족묘지에 유골함을 안장하였다는 소식과 함께 영정사진과 <顯妣孺人全州崔氏 神位> 위패가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이렇게 또 한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 대단히 훌륭한 발자취를 남기고 시인은 떠났다. 우리는 오래 기억할 것이고 읽을 것이다.

 

*최정례(崔正禮 1955~2021.1.16) : 시인.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햇빛 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개천은 용의 홈타운』 『빛그물영역 시선집 Instances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가 있다.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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