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관 /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현대인들이 차가운 경쟁 사회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그래서 나를 받아들이거나 그러길 바라는 공동체에 속해서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를 바란다. 소속된 공동체에서 느끼는 지지와 지원, 정체성이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구성원들과 함께 달성한 목표는 자신의 역량이 확장되는 경험으로 무력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 자유 의지로 선택한 공동체는 다른 구성원이 인정하는 조건과 약속, 즉 합의한 규율을 따라야 하며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래야 무임 승차자로부터 유·무형의 공동체 가치를 지키며 지속해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동체 내부에서 경험한 의사소통 기술, 공감적 감수성과 높아진 자존감, 새로운 자아 정체성은 외부 경쟁적인 일상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모든 공동체가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공동체의 동일성을 지나치게 정체성으로 강조하는 경우다. 배타성을 갖은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와 비교하며 시기나 질투, 혐오나 무시가 일어나기 쉽다. 그리고 공동체의 동일성은 이를 합리화한다. 일반적으로, 서로를 증오하며 커지는 에너지를 주요 동력으로 사용하는 집단주의는 사회를 양극단으로 대립 시켜 놓는다. 이럴 때 구성원인 개인은 ‘나’라는 존재가 아닌 집단을 대변하는 존재로 전락하기 쉽다. 우리가 접하는 극단적 사회 현상들의 원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면 개인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종합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보다 내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내세워 타 집단을 적으로 규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은 이 과정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한편, 증오와 멸시, 폭력을 표현할수록 공동체 내에서 받는 지지와 지원을 통해 강한 소속감과 안정감도 동시에 느낀다. 혐오와 멸시의 사회문제가 계속 이어지고 커지는 이유다.
이타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 확산을 기대하고 새로운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는 그 안에 속한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얼마만큼 수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공동체가 구성원 내 소수자 집단에 요구하는 정체성을 ‘동일성’으로 정의하는 것에 위험성을 제기했다. 현대 인종과 사상을 비판하는 정치와 종교, 문화적 근본주의가 집단의 정체성을 개인에게 강요하며 세력을 키우고, 주도권 싸움을 위해 타 집단과의 사이에서 폭력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주의는 자율 및 다양성과 양립할 수 없다. 정치와 종교, 문화적 집단주의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려는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폄훼하고 또 이를 정당화한다.
우리 사회의 중년 이상은 권위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산업사회를 치열하게 견디며 성공한 기억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권력자들의 필요에 위해 만든 주민 조직 수단으로 연고주의와 같은 동일성을 강조하는 것에 익숙한 이유다. 그리고 이는 부패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자율적 협동을 통해 이룬 성공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
브라질의 가난하고 작은 도시 뽀루뚜알레그리에서 처음으로 ‘참여 예산제’를 실시했다. 주민들의 민주 의식을 북돋우는 상징적인 도시로 전 세계가 주목했다. 마을 주민부터 시작해 다양한 요구를 모아갔다. 주민총회, 대의원회, 평의회를 거치면서 가감 없이 요구를 분류하여 최종 투표에서 우선순위가 결정되면 예산을 분배하고 집행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호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시민이 시 정부 정책과 예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신뢰가 쌓여 이루어진 결과다. ‘참여’가 자신의 권리임을 받아들인 시민들은 ‘어린이 참여 예산제’ 까지 만들어 운영하면서 희망과 살의 질이 높아졌을 것이다.
이는 그동안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정책 생산과 예산 집행 방식을 포기하고 민주적 소통과 합리적인 합의 과정을 설계하고 지속적인 실행은 정책 수혜 대상자인 시민을 책임 있는 정책 생산 당사자로 바꾸었다. 심리학에 ‘통제의 환상’이라는 이론이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려운 환경이나 조건에 처해 있더라도 내가 이 상황에 개입하여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만족도와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도 공동체를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여기며 지역분권과 주민자치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그동안 주류를 형성했던 기존 공동체에 새로운 구성원이 참여하며 규모도 커지고 논의하는 의제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상대방의 의견에 다른 생각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논의나 합의 방법의 세심한 설계가 없다. 의제에 대한 의견 교환이나 토론 중에도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평판이나 체면을 고려해야 하는 사회적 위계질서가 작동한다.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민이거나 오랜 기간 반복해서 대면해야 하는 관계일수록 더욱더 강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역 공동체 내에서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표현할 개성과 다양성이 동일성이나 관습에 눈치 보지 않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회의 방법’이 개발되어 시행되어야 한다. 민주적인 합의를 이루는 다양한 중간 지원기구들이 이러한 사소한 이유로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