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뒤떨어진 성차별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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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뒤떨어진 성차별의 위험성
  • 박교연
  • 승인 2021.03.10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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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동아제약은 3월 5일 유튜브 <네고왕2>에 출현하여 대대적인 생리대 할인 이벤트를 진행했으나, 면접에서 성차별을 한 게 밝혀져 “여성용품을 판매하면서 여성을 차별하는 회사”라는 말을 듣고 있다. 동아제약은 작년 11월 치러진 면접에서 남성 지원자에게는 공통적으로 “어느 부대에서 근무했는지, 군 생활 중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군 생활 중 무엇을 배웠는지”를 물었지만, 여성 지원자에게는 “여자라서 군대를 가지 않았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냐, 이에 동의하냐”고만 물었다. 해당 지원자는 면접 내내 “자신이 병풍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사실 기업 내의 성차별 면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동아제약 사건이 화제가 되자, SNS에는 면접에서 겪은 성차별을 토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지난달 디스플레이 전문기업 면접에서 “미투 때문에 여자를 뽑을 생각이 없는데 불러봤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결혼할 생각이 있나? 여자들은 결혼하고 애 낳고 금방 회사를 관둬서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뿔난 소비자들은 여성을 괄시하면서 여성의 돈을 벌수는 없다며, 동아제약 제품목록을 만들어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대체품 목록을 만들어 공유 중이다. 데미소다, 포카리스웨트와 같은 동아제약의 음료수 계열사 제품까지도 모두 불매목록에 올랐다. 기업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잠시 지나가는 악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페미니즘을 등한시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마케팅 때문에 오랜 기간 위기를 겪었던 브랜드가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까꿍! 안녕하세요, 공주님!” 2000년대 어느 에뛰드하우스 매장에서나 이런 인사가 울려 퍼졌다. 에뛰드하우스는 ‘모든 여자는 공주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핑크색 공주풍 장식으로 매장을 가득 채웠다. 심지어 서울 명동처럼 큰 매장에는 공주놀이를 할 수 있는 프린세스 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였다. 공주마케팅이 어찌나 성공적이었는지, 에뛰드하우스의 매출은 2004년 287억원에서 2013년 3185억원으로 9년 사이에 11배를 넘어섰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부터 에뛰드는 연속해서 매출이 급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 이건 화장품 시장 전체의 위기는 아니었다. 에뛰드가 휘청거릴 때 ‘설화수’ ‘라네즈’ 같은 브랜드는 여전히 매출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10년이 지나는 동안 에뛰드의 공주마케팅은 어느새 촌스럽고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 공주님 놀이도 한 두 번이지 대중은 공주마케팅에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2015년 초 메갈리아의 등장과 함께 페미니즘이 여성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에게만 주로 강요되어왔던 화장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쌩얼은 매너가 아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여성 억압적인지 공유되기 시작했으며, 코르셋이 얼마나 여성의 삶에 유해한지 논의되기 시작했다. 각종 SNS에는 립스틱, 섀도, 마스카라 등 본인이 소유한 모든 색조 화장품을 부수고 ‘탈코르셋 인증’에 동참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결국, 에뛰드는 2015년 말에 대표이사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 공주 콘셉트를 벗어던졌다. 슬로건도, 매장도, 제품도 ‘공주풍’을 버리자 드디어 에뛰드의 실적이 적자에서 벗어났다. 2016년에는 가모장 캐릭터로 유명한 김숙을 출연시켜 제품 차별화에도 성공했다. 김숙은 광고 속에서 아름다움을 강조하기보단 ‘생기’나 ‘수분’을 강조하며 화장품 기능에 더 집중했다. 동시대 나온 광고를 봐도 이런 에뛰드의 전략은 옳았다. SK2도 박나래를 기용하여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촉촉한 피부를 유지한다는 설정으로 화장품 기능을 홍보하는 광고를 찍었다.

몇 년 사이에 MZ세대를 중심으로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제품을 선택해 소비하는 ‘가치소비’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가치소비는 가격이나 품질이 절대기준인 기존의 소비 형태와는 다르다. 말 그대로 가치와 신념이 소비의 제1기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을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생리대와 여성용품을 팔면서 여성을 고용할 수 없다니. 하루라도 빨리 동아제약이 에뛰드의 극복사례를 보면서 제대로 된 인사지침을 마련하고, 뿌리 깊은 성차별을 타파하길 바란다.

그때까지 모든 여성 소비자는 이 일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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