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빌라는 오늘도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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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빌라는 오늘도 열려있습니다
  • 김보름
  • 승인 2021.04.02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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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49) 작은책방의 24시 - 김보름 / '연꽃빌라' 책방지기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이 지난 48회 부터 3기 필진으로 교대했습니다. 이번에 참여하는 책방지기들은 강화군 강화읍 '꿈공작소 모모' 서상희 대표, 부평구 갈산동 '연꽃빌라' 김보름 대표, 강화 불은면 '책방바람숲 신안나 대표, 동구 화수동 '책방모도' 문서희 대표, 계양구 작전동 '그런대책방' 김미성 대표 등 5명입니다.

 

일본 작가 무레요코의 소설 ‘세 평의 행복, 연꽃빌라’의 주인공 교코의 마음만은 평안한 곳이 연꽃빌라이듯 매일 공간을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도, 가끔씩 찾아올 손님들에게도 따뜻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름을 빌렸습니다. 하지만 소박하다고 생각했던 꿈이 거창했던 걸까요? 우리의 현실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도 무사히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무사히 열려있는 연꽃빌라의 모습
무사히 열려있는 연꽃빌라의 모습

 

우리의 하루를 공유해봅니다.

연꽃빌라는 정오부터 밤 10시까지 영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자영업자와 마찬가지로 더 이른 시간부터 오늘 하루를 준비합니다. 아침 7시 30분 산책 가자며 가차 없이 얼굴을 발로 쳐서 깨우는 버릇없는 슈나우져 ‘호두’의 재촉에 일어나 샤워를 하며 잠을 깹니다. 그리고 나가자고 애원하고 애원해야 함께 나가주는 호두와 같은 종의 ‘아몽’이를 모시고 집 주변을 산책합니다.

산책 후에는 입맛이 없더라도 제때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없는 직업 특성을 고려해 아침밥까지 든든하게 먹은 후 9시쯤 부랴부랴 집을 나섭니다. 마음이 급하지만 길을 조금 돌아 시장에 들러 카페 메뉴에 쓸 과일이나 다른 필요한 용품을 사고서야 가게로 출발. 10시쯤 도착 해서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한 뒤 손님을 맞이하면 정말 좋겠지만 본격적인 준비는 이제 시작입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청소를 하고 커피 바를 정리한 뒤, 남자 사장은 커피콩을 볶고, 여자 사장은 과자를 굽습니다. 다 구워진 과자 냄새가 솔솔 날 때쯤이면 벌써 정오. 주변 회사의 직장인들이 오후를 견디게 해줄 커피를 사러 옵니다.

몇 잔의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 산을 넘어 약간은 소란스러운 점심 시간이 지나고나면 슬렁슬렁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러 책 한 권, 혹은 노트북을 챙겨오는 손님들의 시간입니다. 느긋하게 혼자만의 오후를 지나고 있는 손님들처럼 우리도 각자가 좋아하는 취향의 커피를 내려 잠깐의 여유를 부려봅니다. 역시 연꽃빌라를 열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참아내며 저녁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저녁에는 책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쓰거나 입고 문의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커피를 계속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온전한 책방의 시간을 보내기는 쉽지 않지만 최대한 스스로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카페 혹은 서점. 연꽃빌라는 어느쪽 일까

갈산동에 위치한 연꽃빌라는 20평 남짓한 공간에 반 정도는 책장으로 나머지 공간은 커피를 만들 수 있는 바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로 채워져있습니다. 그래서 지인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러 온 손님들은 당황합니다. 이곳이 카페가 맞는지,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어옵니다. 당연히 이야기를 나눠도 좋다고 대답하지만 이미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아무래도 부담을 느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갑니다. 그럴 때면 오픈 초기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여기는 책방 겸 카페이니 아무래도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해야겠지? 처음부터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가야 한다는 아무도 주지 않은 압박감에 시달려 스스로 많은 제약을 걸었습니다. 유리문에는 이야기는 소곤소곤, 조용히 머물다 가달라는 당부까지 붙여 두었습니다.

분위기를 잘 이끌어갔을까요? 결과적으로는 자진해서 입구-컷 당한 손님들의 돌아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러다 망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에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발만 동동 굴렀지요. 여기는 서점을 같이 운영하는 것 ‘치고’는 음료맛이 좋다든지 카페만 하기에는 요즘 워낙 카페가 많으니, 살아남기 위해 서점을 끼워 넣은 걸 거란 추측이 담긴 블로그 리뷰를 보면서 속상해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이곳의 정체성을 주인인 우리가 정하고 가꿔가는 게 당연하겠지만, 찾아 주는 사람들의 생각까지는 우리의 몫이 아니겠다는 생각을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각자의 마음이 각자의 방식대로 쉬었다가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면 그게 연꽃빌라의 정체성 아닐까요? 그렇게 우리는 정숙을 권하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떼어냈습니다.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 하지만 뜨거운 볕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자리를 옮긴다. 그럴 때면 죄송하다.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 하지만 뜨거운 볕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 자리를 옮긴다. 그럴 때면 죄송하다.

 

오늘도, 내일도 어찌어찌 지나 갈거야

밤 10시. 유리창에 있는 커튼을 내리고, 작은 몸으로 종일 밖에 서서 이곳이 서점과 카페임을 알린 기특한 입간판을 안으로 들이고, 하나 있는 간판 조명을 끄고, 문을 닫습니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듯이 지금 하는 일을 계속 유지해도 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생활이 우리는 꽤 좋습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찾아와주는 반가운 손님들과 나누는 작은 대화 속에 만족을 느낍니다. 그들의 일상에 연꽃빌라가 함께하는 느낌이 좋습니다. 독립출판물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거나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요즘의 고충과 즐거움을 나누며 서로를 응원하는 순간들이 소중합니다. 내일도 무사히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고, 팔고, 멍도 따는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소중한 순간들을 위해 약간의 하기 싫은 일들도 조금은 해야겠지만 그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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