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권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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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권의 부상
  • 임승관
  • 승인 2021.04.06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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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 임승관 /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지금까지 정치나 사회 문화적인 큰 변화나 전환은 지식인이나 힘 있는 정치인, 경제 권력층이 주도하며 법과 제도를 통해 이루었다. 인본주의 사상이 그동안 경외의 대상인 자연을 경제적 가치를 만들기 위한 정복 대상으로 바꾸었고, 산업자본주의는 국가주의와 획일적 집단주의로 국민의 마음을 새롭게 무장시켰다. ‘마가렛 대처’나 ‘로널드 레이건’ 이름으로 시장 경쟁은 우수함보다는 남을 이기는 승리를 목표로 하는 사회 문화를 만들었다. 이렇게 정치와 경제에 힘 있는 권력은 그 시대 패러다임을 만들고 퍼뜨릴 수 있는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매년 12월, 그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2011년 의외에 인물은 선정했다. 같은 해 11월 세상을 떠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아닌 ‘프로테스터’(PROTESTER) ‘시위자’를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독재자와 시리아, 예멘, 바레인의 철권통치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심장인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고 1%를 위한 99%의 불평등을 외친 익명의 ‘시위자’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목숨을 걸어도 힘든 30년, 40년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거대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각성과 분노를 서울을 포함해 전 세계 80여 국가 1,500개 도시로 퍼뜨리는 영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PERSON OF THE YEAR, 2011

 

전엔 없던 일이다. 이들의 행동은 유명한 지식인이나 정치, 경제 권력층의 선언이나 의도에 의한 것도 아니다. 일상 생활권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SNS로 소통하며 알게 된 의미에 공감하며 개인이 선택한 실천의 결과다. 그동안 사회 변혁이나 문화 변동을 주도하고 이끌던 엘리트 권력층의 역할을 일상 생활권의 집단 지성으로만 이루고 있다.

이 현상을 ‘일리야 프리고진’의 물리학 이론을 빌려 설명하면 이렇다. 사회변혁이나 문화변동을 기성 질서가 새 질서로 바뀌는 것으로 보자, 그 변화의 시작은 기성 질서 외부에서 시작한 작은 요동이다. 이 요동은 긍정적인 주변의 반응(Positive Feedback)을 받으며 자기 조직화 과정을 거치며 그 규모와 안정성을 갖춘다. 이 과정이 지속하고 쌓이면 사회 변동의 분기점에 도달하게 된다. 기성 질서가 밀려나고 새로운 질서가 주류 문화로 정착하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요동에 내부 구성원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많으면 그 요동은 사라진다. 그리고 기존 질서는 더욱 강화하고 견고해진다. 우리는 과거 민주주의를 향한 많은 요동의 시도들이 이 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해 결국 더욱더 엄혹한 상황을 겪은 역사적 경험이 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을 바꾼 우리 촛불 혁명에 세계가 주목하고 놀랐다. 장기간 계속하는 대규모 집회 과정에서도 비폭력과 배려, 질서를 지키는 높은 시민의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촛불의 의미는 시민들이 자신의 일상 외부에서 일어나는 작은 요동에 공감하고 지속해서 긍정적인 반응(Positive Feedback)을 보내며 협력을 키워나가 결국 함께 분기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협력’은 나의 성공이 당신이 성공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이타적 신뢰가 토대다. 상대방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이룬 집단의 성취는 새로운 희망에 대한 상징 이미지가 되어 문화적으로 전수된다.

이제 재벌 중심의 위계적 경제구조, 국가주의 정치 문화의 개혁 분기점을 기득권이 아닌 일상 생활권의 동력으로 도달하는 시대다. 즉, 국가의 모든 권력은 모든 국민으로부터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 생활권으로부터 나온다. 일상 생활권의 부상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개성과 다양성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인정하는 속성이다. 힘과 권력이 없는 일상 생활권에서는 희망하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다양성과 개성의 존중은 협동과 연대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분기점을 힘들게 넘어 구질서를 밀어낸 새 질서도 시간이 흐르면 기성 질서가 되고 외부로부터 다양한 요동이 일어난다. 이때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속성은 긍정적인 반응으로 역사의 퇴보를 막을 가능성이 커진다.

내일은 서울과 부산 등에서 자치단체 보궐선거를 한다. 후보들은 다양한 공약으로 변화를 약속하며 일상 생활권에 호소한다. 새로운 정책 제안은 기성 질서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요동이다. 일상 생활권에서 공감하고 퍼뜨리며 자기 세력을 조직하는 요인은 요동의 횟수나 반복과 같은 양이 아닌 그 의미의 수준이 되고 있다. 내일 어떤 요동은 부정적인 반응으로 사라지지만 어떤 요동은 일상 생활권의 협력을 이뤄 집단 성취로 기억될 것이다. 사회 변화를 이끄는 동력은 이렇게 남을 이기는 경쟁에서 협력으로, 집단적인 동일성에서 자율적인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일상 생활권의 부상이 그 소명을 즐기며 문화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주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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