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그리고 사과하면서 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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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서, 그리고 사과하면서 크는 아이들
  • 이정숙
  • 승인 2021.04.07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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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 동그라미들]
(4) 사과하는 법 알기 - 이정숙 / 구산초교 교사, 인천교육연구소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한다. 그런데 싸우고 사과하는 법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싸움은 성장보다 상처를 내거나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이미 유치원 때부터 사과하는 법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기계적인 사과를 종용받고 기계적인 용서를 하느라 마음에 억울함과 속상함이 앙금으로 남아 또 다른 상황에서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특히 자신의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저학년들로서는 더 억울함이 쌓여가기도 한다. 그리고 빨리 상황을 종용하고 다시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 학교라는 상황은 싸우는 아이의 마음을 세세히 만지기보다는 섣부른 처리가 요구되기도 한다. 김샘은 늘 싸움의 중심에 있는 지훈이를 이제 더 이상 ‘빨리 처리하면’ 안될 것 같아 내내 시간을 내어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현우: 앙앙~

아이들: 지훈이가 때렸어요

김샘: 그래? 선생님은 못 봤는데 어떡하지?(아이들 둘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현우: 니가 먼저 때렸잖아 장난감(블럭)으로 나한테 던졌잖아

지훈: 아냐, 난 그런 적 없어. 그냥 지나갔어.

김샘: 서로 아니라고 하는데... 누가 본 사람 없을까?

현경: 제가 봤어요. 지훈이가 지나가면서 현우 밀치고 갔어요.

지훈: 현우가 먼저 저한테 장난감 던졌어요.

김샘: (아까는 그냥 지나갔다더니...) 그랬구나 그러니까 현우가 장난감을 던져서 화가 나서 지훈이가 현우를 밀쳤나보구나.

지훈: 아녜요 현우가 저한테 먼저 장난감 던졌다구요.

현우: 저는 던진 적 없어요.

김샘: 그래? 왜 지훈이는 네가 던졌다고 생각하는거지?

지훈: 너 던졌잖아 내가 그래서 맞았단 말야.

현우: 난 던진 적 없어 그냥 장난감 통에 넣으려고 했는데 ...

김샘: 그러니까 현우는 지훈이한테 던진게 아니라 장난감통에 넣으려고 했는데 지훈이가 맞은 거구나.

현우: 예

김샘: 그러면 지훈이 한테 그렇게 말하걸 그랬지? 네가 너한테 던진 게 아니야. 하지만 네가 놀랐으면 미안해. 라고 그러면 지훈이도 화가 나서 밀치지 않았겠지?

현우: .....

김샘: 지훈이는 현우 행동을 잘 못 알고 그랬나보다. 자 다시 시작해 보자. 현우가 먼저 말해 볼까?

현우: 미안해.

지훈: 괜찮아.

김샘: 아니, 아니. 뭐가 미안한지 말해야지. 현우야. 뭐가 미안하지?

현우: .....

김샘: 거봐 뭐가 미안한지 생각이 안 나잖아. 그럴 때에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장난감통에 넣으려고 했는데 네가 맞았나봐 미안해. 라고. 한번 해 볼까?

현우: 내가 장난감통에 넣은 건데 @#$%? 맞아서 미안해.

지훈: 괜찮아.

김샘: 흐음, 지훈이도 정말 괜찮아? 뭐가 괜찮아? 지훈이가 사과할 건 없을까? 현우한테 할 말 없어? 현우가 모르고 그랬는데 밀친 건 잘한 걸까?

지훈: .....

김샘: 어때?

지훈: 아뇨!

김샘: 그래 아니지? 그러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지훈: 미안해.

현우: 괜찮아.

지훈아 뭐가 미안해?

지훈: 밀친거요.

김샘: 그래, 그러니까 그 부분을 사과해야지. 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내가 생각도 안 하고 밀쳐서 미안해. 앞으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게. 라고 해 볼래?

지훈: 네가 일부러 한 게 아닌데 밀쳐서 미안해 앞으로 안 할게.

김샘: 그렇지 지훈이가 아주 똑똑하게 잘 말했지? 앞으로도 조심한다고 했으니... 아주 잘했어요. 자 현우랑 지훈이란 다시 마주 보고 사과해 보자

현우: 내가 모르고 장난감을 맞아서(맞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게~

지훈: 네가 일부러 그런 줄 알고 밀쳐서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게.

 

 

몇 번의 시도를 통해 아이들은 점차 사과하는 법을 알게 되어갔다. 한 학기가 지나가자 이젠 김샘에게 이르지도 않고 서로 사과하는 화법을 나눈다.

 

용이: 선생님 일우가 남희랑 싸웠어요. 짐볼을 혼자만 탄다고 때렸어요.

김샘: 그래? 때렸어? 어디? 누가 맞았는데?

용이: 아니 맞은 건 아니고...

김샘: 때렸다며?

용이: 아니 싸웠는데 화해했어요.

김샘: 아, 때린 건 아니고? 서로 화해했으면 됐지 뭐.

용이: 제가 화해시켰어요.

김샘: 그으래? 잘했네. 용이가 큰일 했구나.

용이: 네, 제가 일우한테 남희한테 사과하라고 했어요.

김샘: 용이가 그렇게 말하니까 일우가 남희한테 사과했어?

용이: 아뇨, 상희가 일우가 한 걸 남희한테@#$%^

김샘: 그러니까 남희가 일우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거잖아.

용이: 네, 아이들두 다 봤어요.

김샘: 그렇구나 일우는 괜찮았고? 남희도 괜찮아?

용이: 네, 일우랑 남희랑 번갈아가면서 일 분씩 타기로 했어요. 순서 정해서.

김샘: 아이고 잘했네. 그래. 용이가 아주 큰 일을 했구나.

용이: 헤헤 (으쓱)

 

아이들은 교실에 있는 두 개의 짐볼을 타면서 서로 타겠다고 다투곤 한다. 김샘은 혼자만 타면 다투게 되니까 ‘나, 일분만 탈게 좀 기다려줘’ 라고 말하라고 안내를 했었다. 조작적인 훈련이긴 하지만 몇 번 반복을 하면서 이제는 서로 나름 규칙을 만들어 순서를 정하고 일분이란 시간을 나누어 (사실 일분인지도 모르겠지만) 적절히 분배하는 방법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다 한 ‘무법자’가 그 룰을 어기면 또다시 다툼이 일어난다. 하지만 다툼이 일어나면 자기들끼리 나름 중재를 하면서 또 다른 규칙을 만들어 나간다. 김샘은 사과할 때 진심을 동반하는 것보다 그 사과하는 기술을 먼저 훈련한다는 게 조금 망설여지지만, 사과하는 말하기 방법이라도 배우면 최소한 상처를 내는 다툼이 일어나지는 않겠다 싶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혼자만 있다보니 점점 자기 중심적이 되어간다. 타자를 인식하고 소통하는 법,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조금 작위적으로라도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도와드릴까요?’ 하는 말을 애써 배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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