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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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시끄럽다
  • 박병상
  • 승인 2021.04.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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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몇 차례 봄비가 땅을 흥건하게 적시니 가로수마다 초록빛이 감돈다. 시청 앞 광장의 잔디도 제 모습을 갖춰간다. 잔디가 아직 활착되지 않았을까? 시청을 바라보며 확성기 소리를 키우는 시위대는 광장에 들어서지 않는다. 허가가 필요한 걸까? 시청 광장의 집회와 시위에 참여한 적 없어서 알지 못하는데, 잔디 주변 확성기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귀찮아할 듯한데, 정치학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시끄러워야 민주주의”라고 일찍이 말했다.

시청을 향해 열변을 토하는 시민들은 영흥도에서 왔나 보다. ‘인천에코랜드’라고 이름을 붙인 쓰레기 매립장을 반대하는 이유를 큰소리로 외치는데, 논리적이다. 귀담아듣는 이 드물지만 중단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반응이 보이지 않아도, 시청의 담당자는 듣고 있을 것이다. 대책을 세울지 모른다. 주변 사무실은 창문을 닫았던데, 아쉽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천에코랜드의 필요성과 적절한 위치를 사전에 충분히 논의했다면 광장이 시끄럽지 않았을지 모른다.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시민이라면 매립장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므로.

연수구에 트럭터미널 부지가 확정된 모양이다. 반대 목소리가 크더니 요즘 잠잠하다.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 논점과 합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데, 트럭 출입으로 집 주변에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를 반길 리 없는데, 주민들은 왜 잠잠해졌을까? 불이익을 보상할 대책을 받아들였을까? 일이 바빠 반대 목소리를 계속 내놓지 못하는 걸까? 어렵게 정한 정책에 더는 반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까? 조용해진 건 다행인데, 충분한 논의로 트럭터미널을 추진하는 이의 의견을 이해한 것으로 믿고 싶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사패산 구간의 터널이 2005년 7월에 완공되었다. 국립공원 구간을 관통하기에 환경단체와 불교계에서 반대해 2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이제까지 특별한 사고 없이 운영된다. 생태계 교란 문제가 뚜렷하게 대두되지 않아 다행인데, 2년 동안의 반대 집회와 논의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시끄럽지 않았다면 공사 당국은 사고 위험과 생태계 교란 가능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군사독재 시절처럼, 공익을 강조하며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면? 이후 계속 발생할 사회갈등을 피하지 못할뿐더러 본래의 공익도 손상되었을 게 틀림없다. 시끄러웠기에 그런 점을 공감했다.

이제 생각해보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구간이 뚫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편할까? 한데,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의 노선이 최선일까?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사전에 충분히 논의했다면 다른 노선도 가능했을 것이다. 터널 이외의 대안도 있었을지 모른다. 터널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사패산 봉우리를 고치처럼 관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생태계 교란의 범위를 더 줄였을지 모른다. 국립공원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KTX의 천성산 터널도 아쉬웠다. 환경단체와 불교계에서 반대하면 공사를 중단하고 대안을 먼저 찾아야 했지만 어떠했던가. 터널 구간 바로 코앞까지 나머지 구간의 공사를 서둘렀고, 대안이 없다고 강변하지 않았나.

제2외곽순환고속도로가 하필 람사르 습지보호지역을 관통하겠다고 한다. 세계 5대 갯벌인 서해안은 시방 위축될 만큼 위축되었다. 인천은 그 정도가 심해서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보다 좁게 남았지만, 그 자리에 수많은 철새와 나그네새들이 필사적으로 모여든다. 제2외곽순환고속도로는 마지막 갯벌마저 반드시 교량으로 통과하며 생태계의 가녀린 숨결을 틀어막아야 할까? 교통과 비용을 따지면 교량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생태계를 생각하면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속가능하게 건강해야 할 후손을 생각하며 논의를 거듭한다면 비용을 더 감당하더라도 다른 방안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해안이 좁은 독일은 화력발전소를 도시를 관통하는 작은 하천 옆에 지었다. 애초 강력한 반대가 있었어도 건설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주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긍정은 물론이고 부정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솔직하게 밝히고 다양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기에 합의안을 찾았을 것이다. 쉽지 않은 정책을 결정하려면 시끄러워야 한다. 시끄러운 논의를 충분하게 진행한 이후의 합의는 단단하다. 상대 의견을 존중하며 논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양보와 타협하며 결정하기 때문인데, 그런 시끄러움은 그 사회에 신뢰를 쌓게 한다. 신뢰는 막무가내 시끄러움을 회피하게 만든다.

인천시청 앞 푸른 광장은 시끄러운 잔디마당이어야 한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물러난 이후 잔디광장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광장은 민주주의에서 훨씬 빛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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