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스는 무슨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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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스는 무슨 죄인가?
  • 전영우
  • 승인 2021.04.22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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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의 미디어 읽기]
(70)언론이 일으킨 불가리스 소동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중인데, 이제 불가리스까지 등장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제조사인 남양유업이 불가리스가 코로나 억제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이를 검증없이 받아 쓴 언론에 의해 불가리스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주가가 요동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식약처에서는 남양유업을 식품표시광고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남양유업 측에서는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세종시는 남양유업 세종공장에 식품표시광고법 위반으로 2개월의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사전 통보했으며, 남양유업 측의 의견을 검토한 뒤 이르면 다음달 초 세종공장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소동 끝에 미디어 오늘은 “불가리스는 죄가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까지 했다.

남양유업의 마케팅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기는 하지만, 이 소동의 가장 큰 책임은 단연코 언론에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검증없이 보도자료를 관행적으로 그대로 받아쓰기 한 언론들이, 이번에도 응당 했어야할 검증을 하지 않고 남양유업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자극적 기사를 내보냈고, 이 난리가 나게 된 것이다. 일단 한 언론에서 불가리스가 코로나를 억제한다고 기사화를 시작하자 다른 언론들도 경쟁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사실 확인부터 하려고 했을 불가리스의 코로나 억제 효과는 기정 사실이 되어버렸다.

마트에서 불가리스가 품귀현상을 빚었고, 남양유업의 주가는 치솟았다. 식약처의 고발조치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스의 매출은 2배 이상 올랐다고 하니, 비록 비난은 받을지언정, 기업 입장에서는 성공한 마케팅이었다고 자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비싼 제품도 아니고 부담없이 사서 마실 수 있는 유제품이니, 설령 사실이 아닐지라도 이왕이면 혹시 억제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제법 성공한 마케팅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이제 언론은 일제히 불가리스를 비난하고 나섰고 남양유업 주가는 폭등했을 때 만큼이나 빠르게 폭락했다. 남양유업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은 바로해야지, 사실 불가리스가 무슨 죄인가? 애초에 검증없이 무책임한 보도를 이어간 언론이 죄이다. 불가리스로 코로나를 막을 수 있다면 이것은 전 세계적인 톱 뉴스이고 엄청난 사건인데, 이런 어마어마한 자료를 언론이 접하게 되었다면,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당연히 취해야 할 수순은 우선적으로 사실 확인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언론은 응당 해야할 검증을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보도하여 이런 사태를 일으켰다. 이번 사태는 한국 언론이 얼마나 함량미달이고 문제가 심각한지 잘 보여준다.

오죽 답답했으면 미디어오늘에서 "불가리스는 죄가 없다"라는 제목을 뽑았겠는가. 한국 언론의 문제는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지적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보도자료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는 문제는 불가리스 사태로 잘 드러난 사안으로, 언론의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규칙을 지키지 않는 우리네 언론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업에서 보도자료는 일상적으로 돌리고 있고, 그런 자료는 자사 홍보를  위한 내용으로 작성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당연히 보도자료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사실관계를 학인한 후에 보도해야 한다. 우리 언론은 검증에 소홀한 정도가 아니라, 특정 기업과 유착관계를 의심할 정도로 아예 무성의하다. 똑같은 기사가 여러 언론에 동시에 나오는 경우는 100% 대기업의 보도자료를 충실하게 받아적어서 기사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더나아가서 광고주의 입장을 고려해서 윤색하고 포장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 불가리스 정도의 사례는 차라리 애교라고 하겠다.

언론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너무 오랫동안 아무런 개선없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과연 이 땅의 언론이 바로 세워지고 제 자리를 찾아가서 본연의 모습, 즉 건전한 감시와 비판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인지, 그런 기대를 해도 될지 의문이다. 그러니 김어준 같이 B급을 표방한 인물이 영향력 2위 언론인으로 대접받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불가리스 사태를 통해 다시 또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 언론의 미래는 오늘도 여전히 암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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