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지 말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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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지 말해 볼까?"
  • 이정숙
  • 승인 2021.05.06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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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 동그라미들]
(5) 소중한 것 알아가기 - 이정숙 / 구산초등학교, 인천교육연구소

 

아이들에게 ‘내게 가장 소중한 것(사람)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장난감, 강아지, 인형, 엄마, 아빠, 혹은 가족이 될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그 속내를 찾아보면 면면히 그 답들이 다름에 아이들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샘은 해마다 아이들 자존감 활동으로 내게 소중한 것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마침 ‘소중한 나’ 라는 진로 시간이 있어 올 3학년 아이들과도 활동을 진행했다. 마침 몇 개의 자료가 있어 천둥과 번갯소리를 동반한 난파선 상황으로 실감나게 이야기를 전개하며 상황에 대한 몰입을 유도했다.

김샘: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났어요. 겨우 비좁은 배 하나에 내게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올라탔지요..... 나는 어떤 것들을 가지고 탔을까요? 자, 나눠준 카드 하나하나에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걸 적어 보세요.

아이들: 동물도 돼요?

김샘: 물론이지.

아이들: 물건은 요?

김샘: 물론 돼요. 여기 적혀 있지? 이 세상 모든 것, 다 돼요.

영훈: 난 닌텐도 할 거야.

성찬: 그래? 그것도 되는 거야? 나도 해야지.

김샘: 아니 남의 것 보지 말고 내 생각을 찾아 써야 되는 거야.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아이들: 가족이요. 동물, 음식......

김샘: 아니 아니, 자세히 이름을 적어야지 동물, 그러지 말고 코끼리, 고양이(고양이 이름도 써요? 그래그래), 음식, 하지말고 짜장면, 친구, 하지 말고 친구 이름을 써야지. 가족도 이름을 써 봐 동생 영민이 이렇게......

아이들: 엄마, 강아지, 돈, 친구 찬희, 내 동생, 음식, 게임기, 할머니, 우리 선생님(상이는 슬쩍 김샘에게 보여주며 헤헤거린다), 할아버지, 자연, 우주, 공기...

아이들이 카드에 적은 단어들은 이유가 있었다. ‘자연’이라고 쓴 윤건이는 천식으로 조금만 공기가 나빠도 결석을 하는 아이다. 코로나 때문에 하루에 한 두 시간만 수업에 참여한다. 아마도 지구의 오염과 자기의 병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일 듯했다. 김샘은 그 생각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면서 나중에 기후변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윤건이가 든든한 지원군이 될 듯도 했다.

 

 

김샘: 자! 이제 잔뜩 타서 풍랑으로 배가 가라 앉을 것 같아요. 배 위에 식량도 떨어져가서 뭔가를 줄여야 해요. 두 가지를 버리세요.(아이들이 카드에 적은 두 가지를 버린다.) 버렸지? 이제 다시 두 가지를 버려요(망설이다 둘을 버린다). 배가 점점 가라앉아요. 다시 버려야겠어요. 두 가지를 다시 버려요... (아이들은 아~~ 안돼! 소리를 지른다.) 최후로 둘이 남았지요? 마지막 하나를 버려요. (아, 어떡해, 안돼! 소리를 더 크게 지르며 고민한다. )

김샘: 하나가 남았지요? 뭐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지 말해 볼까?

영수: 엄마요. 난 아빠를 버렸어.

진우: 난 엄마를 버렸어. 어떡해.

해마다 이 활동을 하면 대부분 엄마가 끝까지 살아남는다. 하지만 올해는 엄마가 살아남은 경우는 반이 넘지 않았다. 종전보다 아빠가 더 많이 살아남았다. 엄마가 학교생활에 관심이 많고 잘 챙겨준다고 생각되었던 아이들이 오히려 아빠를 택했다는 게 좀 의외였다. 가족도 아니고 강아지나 게임기, 돈, 자연 등이 가장 끝까지 남아있는 경우도 많았다. ‘나’를 남긴 아이들도 몇 있었다.

영남: 돈이 제일 소중해요.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해요.

미례: 난 내가 제일 소중해요. ‘내’가 없으면 안 돼요.

민우: 난 내 동생 찬우요. 어리잖아요. 할머니도 중요한데... 근데 곧 죽을 거니까 버렸어요.

아이들은 나름 논리를 편다. 이때 건우가 울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김샘: 어? 건우야, 왜 울고 있어?

건우: (눈물을 닦으며) 엉엉 슬퍼요. 저는 버릴 수가 없어요. 할아버지가 ......!#$%%

김샘: (당황) 그래, 건우가 공부를 하면서 이 활동에 몰입했구나.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건우 마음이 예쁘네. 그래 아주 실감나게 잘 공부했어요. 할아버지도 건우 마음을 아시고 기특해 하실 거야.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이제 그만 울까?

건우: 예(뚝!).

김샘은 실감나게 상황을 받아들인 건우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정을 듬뿍 나누고 있는 손자의 모습이 어여쁘기도 했다. 몇 년 전 2학년 아이들이 떠올랐다. 국어시간에 토론을 하는 활동이었는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 에 대한 내용이었다.

김샘: 그런데 누가 방울을 달지?

지율: 할아버지요.

김샘: 왜 할아버지지?

지율 : 할아버지가 희생하면 돼요.

김샘: 왜 할아버지가 희생을 해야하지? 다른 사람은 안되나?

수빈: 할아버지는 금방 죽을 꺼니까요.

김샘: 그으래? 그렇구나. 할아버지들은 금방 돌아가실 꺼니까 희생해서 빨리 죽어도 되는구나.

현민: (급히) 아니요 안돼요. 저는 할아버지가 없으면 안돼요. 목숨은 다 소중해요.

김샘: 와 멋진 걸. 목숨은 다 소중하다는 말을 하다니! 근데 현민이는 할아버지가 돌봐주시지 않니? 그래서 할아버지의 소중함을 아는구나.

현민: 맞아요.

지난 국어 토론 수업에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오갔었다. 하지만 현민이의 할아버지 사랑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나에게 소중한 것’ 수업에서도 현민이는 할아버지를 끝까지 남겼다.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엄마가 가장 소중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엄마에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그 소중한 자리를 바꾸는 아이들이 많아져 간다. 그리고 엄마의 지나친 애착에 힘겨워하는 아이들도 슬쩍 엿보인다.

어린 시절 코가 비뚤어진 인형도, 때가 잔뜩 탄 낡은 담요도 소중했다. 그런데 점점 자라면서 그 소중한 것들이 보태어 많아지기보다는 어느덧 소중함이 옅어지거나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긴 기억들이 아이들 삶에 자양분이 되어갈 것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이지, 그리고 타자에 대한 소중함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이들과 함께 김샘도 잠깐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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