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랬듯이, 봄이 오고 봄비가 세상을 적시면, 꽃잎들이 피어나고 나비와 새와 개구리, 토끼들이 봄맞이 하러 나온다. 물고기들의 헤엄이 힘차다. 생동감이 넘치는 계절이다. 곰 가족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어슬렁 숲을 거닐어야 하는데.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반드시 그럴까? 오늘의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는 지금까지 당연히 그래왔던 대자연의 섭리에 의문을 품게 한다.
정유진 작가의 글·그림으로 엮어낸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거야’(「고래뱃속」 4월12일 펴냄)는 18장의 그림과 몇마디씩 독백을 통해 이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다.
그림책의 초반 - 생명체에 대한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화폭에 두 눈이 쏠린다. 풍성한 꽃잎과 나무, 둥근 알을 품은 파랑새 한쌍, 개구리와 귀여운 토끼들, 웃음 짓는 다람쥐, 화목한 어미과 아기 곰...
그러나 내리는 봄비, 꽃잎들은 점차 쓰레기로 변모한다. 내린 비는 그냥 비가 아니라 우리가 버린 오염물질이 되어 주변을 숨조여 온다. 이젠 추운 겨울이 지나도 따뜻한 봄이 찾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림 한켠에 써내려가는 독백들은 따뜻한 봄을 맞이하러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도 봄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도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거야’ 라고 태연한데, 그림은 오염물질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 오염물질들은 우리가 버린 익숙한 것들 – 플라스틱컵과 빨대, 일회용 숟가락, 칫솔, 타이어, 물통, 1회용 옷걸이 – 그러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것들이다.
'잠에서 깨어난 곰 가족은 살랑살랑 떨어지는 꽃잎 사이로 나들이를 갈거야' - 그림 속 독백은 봄에 대한 기대를 품는데, 정작 그림은 끝내 쓰레기 더미들로 가득 덮히고 만다.
작가는 그림과 독백을 통해 환경의 위기에 안일하고 둔감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일깨워준다.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독백을 따라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그림의 의미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독백이 그러하듯, 환경의 위기에 무관심하고 안일한, 바로 우리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섬뜩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림책은 재생용지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