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제의 비극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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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제의 비극을 넘어
  • 임승관
  • 승인 2021.05.1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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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 임승관 /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사람들은 지원 예산을 눈먼 돈이라고 보는 것 같다.”

“무조건 따내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떨어진 사람들은 실력이 아니라 내가 사회적 권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잘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지원 사업 담당자들이 느끼는 문제점이며, 실제로 극복해야할 과제다. 문제는 공모 선정에 대한 낮은 신뢰와 지원받은 예산은 일단 내 것이라는 배타적 소유의식이다. 경제학에서도 공모 사업 예산은 지원자를 구분하는 배제성은 없으나 경쟁을 통해 선정하므로 경합성은 있는 ‘공유자원’이다. 하지만 공모에 선정된 사람은 사업 예산을 배제성과 경합성이 모두 있는 ‘사적 재화’로 생각한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사 제도와 정산 제도를 계속 바꾸고 발전시켰다. 심사위원 심사 결과는 타당한 이유를 들어 기록하고 원하는 지원자에게 공개해야한다. 또한 지원 예산 집행은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에 맞게 사용해야 하며 이는 사업 종료 후 온라인 시스템과 문서로 증명해야 한다. 행정학에서 공유자원의 배분 문제는 정부가 이용을 적절히 제한하는 정부규제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재인 지원 예산을 이기적인 소유 자원으로 인식하는 문제는 극복되지 않고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2005년 콜롬비아 안데스 대학의 후안 카밀로 카르데나스(Juan Camilo Cardenas)는 이에 관한 의미 있는 실험을 했다. 우선 참가자 5명을 한 팀으로 구성하고 팀 구성원은 각자 1~8g의 자원을 매 회(20회)에 걸쳐 자유롭게 취할 수 있다. 만약 나를 포함한 구성원 5명 모두가 매 회 자원을 1g씩만 취한다면 게임 후 팀원은 모두 700g의 높은 이득이 돌아갈 수 있게 설계했고 팀원 5명이 모두 욕심을 내어 각자 8g씩 최대 자원을 취한다면 마지막에 모두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300g에 그치게 설계했다. 그리고 확률은 좀 낮지만, 만약 나는 이기적으로 8g을 나머지 4명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1g씩을 취한다면 나는 게임 후 800g이라는 최고의 이득을 갖는 것도 가능하다.

이 실험은 5명을 한 팀으로 세 팀을 구성했다. 세 팀은 각각 조금 다른 규칙으로 총 20회 게임을 반복 했다. 우선 ‘기본’ 방식은 매회 개별 채취량은 서로에게 비밀로 하되 팀 구성원 모두가 취한 총채취량은 공유하며 20회를 반복 진행하는 것이다. 다음은 ‘일 회 토론’방식으로 20회 중 10회를 마치고 난 후 모두 모여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놓고 단 한 번만 토론을 진행하였으며, 마지막 ‘매회 토론’ 팀은 10회 후부터 20회까지 매회 토론을 진행했다. 세 방식 모두 개인 채취량은 서로에게 비밀이다.

결과는 ‘기본’ 방식의 경우 개별 채취량은 평균(4~5g)을 취했다. ‘일회 토론’ 팀은 1회부터 10회까지는 평균을 유지하던 채취량이 10회를 마친 토론 후에는 뚝 떨어졌다. 하지만 20회 까지 다시 점차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10회를 마치고 ‘매회 토론’을 한 팀은 10회를 마친 토론 후 ‘일회 토론’과 같이 개인 채취량이 뚝 떨어져 감소했으며 20회까지 그 상태를 유지했다.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에서의 의사소통이 전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 간의 갈등을 줄인 것으로 해석하는 대목이다.

이 실험의 핵심은 실험 참가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과 게임이 반복한다는 것이다. 게임이 반복한다는 의미는 상대방이 나에게 한 행위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상대방의 협력이나 배신에 대응할 수 없거나, 대응이 가능하더라도 그 기회가 1회에 그친다면 누구한테나 배신과 무임승차 전략은 최선의 대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공모 제도의 예산은 공유자원이다. 하지만 공모에 지원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지원자들과 관계없이 심사위원이 모두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팀원 5명 모두가 공유자원을 아껴서 1g만 취해도 모두가 700g이라는 최선의 공익은 도모할 수 없다. 이는 모든 사람이 이기적인 선택으로 각자 320g이라도 취하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인 선택이며 공유재의 경합성은 협동이 아니라 경쟁을 유도하는 동기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무조건 따내고 보자는 마음은 신청자들의 시민의식이나 이타적 감수성 문제가 아니라 행동 선택을 설계한 시스템이 원인이다.

2019년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지원 공모의 선정 시스템을 바꿔 실행한 적이 있다. 그 결과에 대해 참여한 지원자들이 작성한 평가다.

“너무 좋았습니다. 처음에 다른 사람의 사업 내용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평가할지 의아했는데 소그룹, 대표 PPT를 통해,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팀의 사업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우리 사업 내용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게 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평가 너무 좋네요. 발전하는 모습입니다. 뭔가 달라지고 있는 세상까지 느껴집니다.”

“작년 생활문화활성화지원 사업에 동참하여 다른 팀들은 어떻게 하나 너무나도 궁금하고 또 교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업의 심사를 다 같이 함께하면서 즐겁고 유쾌하게 교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경쟁이 아닌 협력과 크게 보았을 때 연대까지 이뤄질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합니다.”

“신청자가 심사에 직접 참여하다니 놀랍습니다.

“10년간 지원사업 신청 중 최고의 심사 방법! 제안자 누군지 상 줍시다.”

독일 사회학자 짐멜(Simmel)은 신뢰는 앎과 모름 사이에 위치하는 어떤 상태로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도를 포함한다고 했다. 위험을 감수하며 신뢰 실험을 이해하고 시도한 지역문화진흥원 담당자의 용기에 감사드린다. 그동안 공유재의 이용을 적절히 제한하는 정부규제 방식의 지원정책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선정 방식으로 바뀌면 연대에 대한 기대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권장해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지역 문화단체 간 수평적이고 호혜적인 네트워크 형성이다. 수평적 네트워크는 그동안 선정된 단체에게 느낀 질투나 시기심이 적어도 호기심이나 응원으로 바뀌어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심사위원들에 의해 선정 발표하는 방식이 아닌 문화단체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 기회가 반복될 수 있는 선정 제도가 모색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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