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록하는 사진'이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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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하는 사진'이란 없어요
  • 최종규
  • 승인 2011.06.06 0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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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젠융빈·한정선 엮음, 《장차이》

 지난날 ‘열화당 사진문고’는 ‘프랑스 photo poche’를 그대로 옮겨서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열화당 사진문고’는 ‘영국 phaidon’을 고스란히 옮겨서 내놓습니다. 사진문화나 사진예술이 거의 자리잡지 못하는 한국 사진밭을 헤아린다면, 포토 포쉐이든 페이돈이든 옮겨서 내놓는 일이란 무척 고맙습니다. 한 발 나아가 ‘taschen’이라든지 ‘朝日カメラ’를 옮겨서 내놓을 수 있어요. 사진책을 팔아 돈을 벌기 힘든 한국땅에서, 돈있는 출판사가 선뜻 프랑스나 영국이나 독일이나 일본에서 만든 손꼽히는 사진책을 펴낼 수 있다면 참으로 반갑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름난 사진쟁이라 하든 이름 안 난 사진쟁이라 하든, 사진책을 낼 때에는 으레 제살깎기를 하듯 내놓기 마련입니다. 아주 이름난 사진쟁이가 아니고서는 제살깎기 아닌 ‘사진책 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지난날이든 오늘날이든, 이러구러 나라밖 사진문고를 한국말로 옮겨서 낸다 할 때에는, 이러한 사진책을 내면서 저작권삯을 치렀든 안 치렀든 조금 더 바지런히 옮겼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몇몇 아주 이름난 사진쟁이 사진책뿐 아니라, 한국에 거의 안 알려졌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사진’이나 ‘사랑스러운 사진’이나 ‘믿음직한 사진’을 펼쳐 보인 사람들 따사로우면서 넉넉한 손길을 느끼도록 했다면 얼마나 고마웠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2008년을 끝으로 더는 안 나오는 ‘새 열화당 사진문고’ 가운데 하나인 《장차이》(열화당,2008)를 읽습니다. 장차이 님 사진은 “서양 문물이 유입되던 시기의 상하이 풍경, 정치사회적 격변기의 타이완 사람들과 원주민들의 생활상 등을 관찰과 탐구의 열정으로 기록한 타이완의 선구적인 사진가”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사진은 ‘역사를 기록한다’는 노릇을 톡톡히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처럼 지난 한삶을 고이 보여주는 사진을 요즈음 들어 높이 사곤 합니다. 틀림없이 사진은 ‘본 대로 찍어서 남깁’니다. 내가 보는 모습이든 네가 보는 모습이든, 저마다 보는 모습을 고스란히 찍어서 남깁니다.

 다만, 사진은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하되, ‘내가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합니다. 사진은 내가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하되, ‘내가 생각하면서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합니다. 사진은 내가 생각하면서 본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하되, ‘내가 살아가며 내가 생각하는 동안 내가 보는 대로’ 찍어서 남기도록 합니다.

 사진으로 담기는 ‘역사를 기록한다’는 모습이란, 어느 한 나라나 한 겨레 역사라 할 수 없습니다. 사진으로 담기는 ‘역사를 기록한다’는 모습이란, 어느 한 사람이 한 곳에서 부대끼는 만큼 바라보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담는 모습입니다.

 사진은 더 담아내지 않습니다. 사진은 덜 담아내지 않습니다. 사진은 오직 사진기를 쥔 사람 삶 깜냥과 무게와 깊이와 너비와 속살만큼 담아냅니다.

 사진기를 쥔 한 사람이 타이완 어느 도시에서 어느 한 동네 사람들하고 깊이 사귀거나 어울렸다면 바로 이 어느 한 동네 사람들 삶자락만을 아주 깊으면서 살갑게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이 타이완 토박이하고 멧자락 깊이 들어가 조용히 살아갔다면 바로 이 멧자락 깊은 터전 토박이들 여느 삶(토속 생활)을 사랑스레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진기를 쥔 한 사람이 집에서 아이를 도맡아 키웠다면, 어느 한때(1920년대이든 1950년대이든 1970년대이든) 여느 살림집 아이 하나 자라는 동안 입거나 걸친 옷자락을 비롯해 생김새와 놀잇감이나 집살림을 요모조모 들여다볼 만한 사진을 남깁니다.

 ‘사진은 역사를 기록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담는다’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1980년대 민주운동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때에도 ‘역사를 기록한 사진’이라 할 수 없습니다. ‘1980년대 민주운동하고 살아온 내 발자취’를 담는 사진일 뿐입니다.

 1980년대 민주운동 언저리에서 구경꾼으로 지냈는지, 그저 보도사진기자로만 머물렀는지, 민주운동을 ‘거친 폭력 시위대 몹쓸 짓’으로 여기며 지냈는지, 민주운동 한복판에서 온몸을 던지며 ‘독재정권 몰아내기’에 힘을 기울였는지 하는 내 삶자락이 담기는 사진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사진으로 담던 사람들도 매한가지입니다. 축구경기를 마음껏 즐긴 사람인지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언저리에서 구경꾼으로 머물렀는지, 또는 이무렵 일어난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을 살피는 한 사람으로 지냈는지 하는 ‘내 삶 한 자락 발자취’를 담는 사진이 됩니다.

 장차이 님 사진을 담은 《장차이》는 ‘1940∼50년대 현대 타이완 사회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장차이가 살았던 1940∼50년대 타이완 어느 한켠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기록이란 없습니다. 사진기록이란 없습니다. 글기록이든 그림기록이든 따로 없습니다. 모두 내 삶이면서 내 이야기가 되고, 내 모습이면서 내 얼굴이 됩니다. 더 뜻있는 사진이란 없고, 더 뜻없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더 좋은 사진이나 더 나쁜 사진은 없습니다. 2050년이나 2100년쯤 될 때에는, 이들 2050년이나 2100년 뒷사람은 2000년대나 2010년대 오늘 이야기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려나요. 앞으로 2050년대 뒷사람이나 2100년대 뒷사람 또한 ‘2000년대 한국 사회 모습’이나 ‘2010년대 한국 서민 생활 모습’ 같은 이름을 붙이는 ‘사진기록’을 이야기하려나요.

― 장차이 (젠융빈·한정선 엮음,열화당 펴냄,2008.11.1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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